고립과의 공존
'고립'(孤立)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
섬유근육통
메니에르
이명
성대부종
불면증
공황장애
식이장애
이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의 공식적 병명들이다. 눈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것만 가지고 열거를 해 놓았으니, 알게 모르게 숨어있는 질환들까지 하나하나 다 찾아내려 들자면 가진 병만 해도 족히 열 개는 넘고도 남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랜 기간 고립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 편히 웃고 떠들며 따뜻한 밥 한 끼 나눠본 기억이 이토록 아련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오랫동안 난, 혼자 그 무거운 시간들을 버텨내 왔던 것 같다.
비범치 않은 병의 징후로 계절에 민감하고, 기온에 민감하다 보니 그나마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하나뿐인 나의 목소리뿐이다. 어딘가를 마음대로 다닐 수도, 누군가를 마음대로 만날 수도 없는 내게 가끔 지인들과 나누는 전화 통화란 내겐 유일한 숨 쉴 통로와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1년 전쯤부터는 그마저도 녹록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말을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던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성대근육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단순 폴립이나 결절 같으면 차라리 수술적 조치라도 취해볼 텐데 내 경우엔 그런 방법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원인 불명'
3년 전, 나를 기어코 수술대에 눕게 만들었던 그 단어가 이번에도 내 앞을 가로막았다. 약물과 음성치료에도 내 성대는 항상 부어 있었고, 말을 할 때마다 늘 날카로운 통증이 들고일어났다. 더 이상은 해줄 게 없다는 의사의 태연한 반응에 그 길로 나는 3개월간의 병원 투어를 미련 없이 떨쳐버렸다. 대신에 어찌 됐든 일은 계속 이어나가야 했기에, 그러려면 계속해서 목을 써야 했기에, 성대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모두들 진단은 같았고, 약 값은 일반 한약보다도 훨씬 웃돌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비싼 약에 거금을 투자했다. 그것은 적어도 내 증상과 고통에 귀 기울여주는 한의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누군가가 나의 답답한 상황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을 때였으니, 치료효과란 그다음의 문제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지금까지도 1년째 같은 상황을 맴돌고 있다. 진행하던 업무는 이전의 1/2로 줄였고, 그나마 답답한 일상에 단비처럼 나누던 벗들과의 정다운 통화는 그날 이후부터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oo야, 잘 지내? 목소리 들은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언제쯤 통화 가능하니?"
나를 찾는 지인들의 부름에 나는 그때마다 구구절절 현재 나의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는 이런 상황에 놓인 스스로에게 지쳐갔다.
'왜 나는 누군가에게 늘 나를 변명해야만 할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둘러싸고 맴돌던 이 질문이 순간 내 가슴속에서 화산 분출하듯 폭발하더니만 어느 순간엔 그만 나를 잠식해 버렸다. 그리고, 끝내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몇 년 전부터 급격히 몸이 나빠지게 되면서 점차 진행되어 가던 사회로부터의, 관계로부터의 고립이 목소리의 상실로 인해 비로소 더욱 구체적이고 견고한 모습으로 내 앞에 들이닥친 것이다.
내 스스로 불편한 게 싫어서,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것이 싫어서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게 싫어서 택한 길이지만 때때로 고립이란 길은 나를 한없이 어둡고 침울한 길로 몰아넣는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삶이었던가. 어린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거칠게 오고 가는 부모의 부부싸움에 밀려서, 어쩌다 친척집에 놀러 가면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나만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 같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 모인 수가 3명만 넘어가도 나만 관심 밖의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만 같아서 등등... 그 밖에도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들로 자발적 고립을 택하며 사회의 변두리 자리를 선점하며 성장해 온 나였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내가 정말 원하던 삶이 지금의 이 완전한 고립이었던 것일까.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어쩌면. 나는 누구보다도 내 생을 둘러쌌던 그 고립의 늪으로부터 벗어나 어엿한 공동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지금 이 자리로 데려다 놓았고, 나는 지금 내 생애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지점에 다다라있다.
엄마의 배를 가르고 이 세상의 빛을 본 게 내 의지가 아니었듯. 삶에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단 하나. 그것이 지금 나에겐 유일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끝내 혼자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척에게 유일한 친구 윌슨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겐 저마다 윌슨이란 존재가 너무나도 간절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나의 윌슨을 찾아 고립무원의 황량한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