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중국어 진짜 좋아하니?

(싱가포르 사립 초등학교)

by 서소시

막내의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지원 시기가 되었을 때 내심 기대했었다. 혹시 입학 허가가 나지 않을까 하고.. 외국인도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신청은 가능해서 운좋게 배정된다면 어려운 AEIS 시험을 치지 않고도 로컬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으니..

우리 아인 OO 학교로 가./ 우린 XX 학교로 가. 축하해~ 다 탑텐 스쿨이구나!

어느 학교로 지원해야 하나 고민 중일때 막내 유치원 엄마들 단체 채팅방에선 이미 배정받은 학교를 알리며 서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벌써 발표가 난건지 물어보니 탑텐 스쿨의 경우 부모가 그 학교를 졸업했으면 입학 우선 순위를 준단다. 막내반 부모들 대부분이 좋은 학교를 졸업한 경우라 이미 아이들도 좋은 초등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었다.


싱가포르에는 초등학교부터 탑텐(Top 10) 스쿨로 불리며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인기 학교들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 시험인 PSLE (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란 시험을 통해 성적별로 중학교를 지원하는 싱가포르라, 초등학교 입학부터가 매우 중요하단 걸 나중에야 알았다. 좋은 초등학교는 부모가 그 학교를 졸업한 경우 일순위로 입학 자격이 주어지기에, 지원 하자마자 이미 정원이 다 채워진다고 했다. (좋은 초등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이유는 시설이나 좋은 환경 등의 장점 외에도 같은 재단의 좋은 중학교 지원 시 PSLE 점수가 조금 부족해도 입학이 가능한 Affiliation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집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도 싱가포르인들도 못 들어가는 탑텐 스쿨 중 한 곳이라 우린 당연히 지원이 불가능했다. 조금 외곽의 초등학교들은 빈자리가 있을 거란 조언을 듣고 집에서 멀면 이사라도 갈 마음으로 먼 외곽 지역 초등학교로 입학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정말 오랜 시간 기다려 받은 안내장엔 자리가 없으니 국제학교를 알아보라고 씌여있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학비 지원이 없어 세 아이의 국제학교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어째야 하나 고민하며 학교를 찾아보다 우연히 싱가포르에 딱 하나 있는 사립 로컬 초등학교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곳도 생겼다. 당시엔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사립 로컬학교는 이곳 한 곳뿐이었다.)


싱가포르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가르친다는 학교는 싱가포르 초등학교처럼 이미 1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정원이 다 차서 자리가 없다고 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결원이 생겼을 때 연락준다고 했다. 이제 영어 단어 하나씩 배우는 아이가 시험을 칠 수 있을까?


사실 난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시키는 엄마가 아니었다. 필요할 때가 되면 아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할 거라 믿는 편이었다. 싱가포르 갈지 모르니 우리 영어 공부 시작해볼까 했을 때, 막내가 말했다.

엄마, 보세요. 문! 어! 두 글자죠. 그런데 영어는 옥! 토! 퍼! 스! 네 글자예요. 왜 이걸 공부해야 하죠?”

막내의 엉뚱함에 많이 웃었다.


학교를 선택할 때도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 로컬학교 공부를 따라가기엔 아직 영어가 많이 부족하니 우리 한국 국제학교에 가서 공부할까 하고.. 그때 아이의 대답은,

“엄마, 로컬학교 가면 영어, 중국어 2개 공부해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한국 국제학교 가면 한국어, 영어 그리고 중국어 3개 공부해야 하는 거잖아요.”라며 사립 로컬학교로 가고 싶다고 했다.

(돌아보니 막내는 숫자로 상황 판단하길 좋아하는 아이였나 보다.)


입학을 위해 영어와 수학 시험을 치던 날, 한시간 정도면 끝날 거란 학교 측 설명과 다르게 아이는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나온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한 말,

엄마 저 하나는 확실하게 맞혔어요! B. o. l. l ~ 볼이요!”

'아이고 아들아, Ball 이거늘..'

왜 이리 늦게 나왔냐는 질문에 몰라서 빈칸이 너무 많아 못 나왔다고.. 뭐라도 더 해보려 애썼을 아이의 마음이 안타깝고 고마워 찡해진 나는 눈물이 났다. 그런 아이의 노력이 통했던 건지 3월 중순이 되어서야 아이는 초등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선 영어와 모국어 ( Mother Tongue Language)를 제2 외국어를 배운다.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는 영어 외에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를 국가 공용 언어로 사용하고 학교에서도 그 중 하나를 제2 외국어로 배우게 한다. 지하철 표지판 같은 안내문에도 4가지 언어로 안내가 되어 있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안내문도 4가지 언어로 나온다.


입학시험 후 주어진 인터뷰는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됐다. 결과는 중국어 수업이 불가능하니 이 수업을 포기 (Drop Off )하라고 했다. 그럼 그 수업 시간에 아이는 무얼 하냐 물었더니 도서관에 가서 혼자 있다 다음 수업에 참석하면 된다고 했다. 같은 반에 중국어를 포기 (Drop Off )한 아이가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했다. 아직 시계도 볼 줄 모르는 아이가 혼자 중국어 시간이면 도서관에 갔다가 다음 수업 시간에 맞춰 교실로 온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로컬 공립 초등학교에는 중국어도 수준별 반 구분이 있는데, 이 학교는 기초반이 없었고 중국계 학생 비율이 높아 중국어 수업 난이도가 높은 학교였다. 그걸 몰랐던 거다.)


매 순간이 처음인 이 못난 엄마는 아이의 싱가포르 생활 적응이 우선이라 믿고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영어,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기에 학교 측의 판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하루 3시간 잠시 다닌 유치원 생활이었지만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재미있었다는 아이의 말!


그래서 학교 측에 부탁했다.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 1학년 학생이니 집에서 열심히 따라갈 수 있게 돕겠다고.. 그러니 한 텀만 수업 들을 기회를 달라고 했다. 어차피 이 학교 교육과정엔 교과 성적이 부족하면 유급이란 제도가 있었고 성적이 50%를 넘지 못하면 2학년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막내의 로컬 사립초등학교 생활.

그때까지만 해도 초등 1학년의 학습량이 뭐 그리 많겠어 싶었다. 로컬 엄마들이 초등 1학년 땐 만들기 하고 좀 자유롭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쉽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초가 많이 부족한 데다가 1월부터 시작한 학기를 3월에 뒤늦게 들어간 아이는 따라가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았다.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나는 모든 과목 선생님들께 불려 다녀야 했다. 수학 담당이었던 담임 선생님은 우리 막내가 문제를 잘 풀어서 걱정 안 해도 된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큰일이라고 했다. 아이가 소년 (BOY)과 소녀(GIRL)는 아는데 모두( ALTOGETHER, 더하기 개념의 영어 표현)는 모른다고.. 영어로 된 문제를 읽고 푸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 풀었던 거 같다고 했다. 얼른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안 그럼 2학년 되기 어렵다고 했다.


아..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쉽게 생각한 내 잘못도 있지만, 모르면 가르쳐주고 알아갈 기회를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의견은 이 학교의 학습 속도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중국어였다. 등교하자마자 시험을 쳤다더니 아이가 들고 온 시험지엔 70점 만점에 15점이 적혀 있었다. 중국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시험 쳤나 들여다보니 빈칸이 안 보이게 무어라도 열심히 따라 쓴 자국이 보였다. 사실은 따라 그린 것이었다. 작은 고사리 손으로 무언가 해보려 애쓴 마음이 짠해서 칭찬을 열심히 해 줬는데 바로 중국어 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중국어 선생님은 다른 교과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우리 아이가 영어도 많이 부족하다 들었다고 한꺼번에 두 가지 언어를 따라잡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니 중국어를 포기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다. 중국계 학생 비율이 공립학교보다 높아 중국어 진도도 빠르고 시험 수준도 더 어렵다고 했다.


아이의 부담을 고려해준 조언이니 사실 그게 맞는 거 같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험지에 모르는 글이라도 따라 써 보려 애쓴 막내의 마음을 생각하니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안 배운 부분을 시험 친 거고, 아이가 정말 중국어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고 그러니 한 텀은 배울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방과 후에 중국어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주는 보충수업( REMEDIAL CLASS)이 있었는데 그 기회도 주지 않아서, 왜 기회도 안주냐고 문의하니 들어봐야 아이가 모를 거라고 의미가 없어 보인다는 답이 왔다.


미리 공부시키고 준비시키지 않은 엄마 탓에 아이가 배울 기회도 못 가져 보고 포기부터 해야 하나 싶어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쯤 되자 나는 아이에게 다시 물어봤다. 생각보다 로컬 커리큘럼이 많이 어렵고 수준이 높아 따라가기 어려우니, 중국어를 포기하거나 한국 국제학교로 갈까 하고.. 아이는 해 보지도 않고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입학시험에 인터뷰에 고생한 탓도 있지만 학교가 재밌다고 했다. 중국어도 좋다고 했다.


늦게 들어온 탓에 배우지도 않은 부분을 시험 치고 평가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매주마다 18개 정도의 중국어 단어와 병음을 쪽지시험처럼 봤는데, 아이는 중국어 듣고 싶다며 열심히 공부하더니 그 주의 시험에서 16개를 맞혔고, 그걸 본 중국어 선생님은 바로 보충수업에 참석하게 해 줬다.


아이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서였을까.. 영어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밥 먹고 교무실로 올라오면 오랄(ORAL) 시험을 대비해서 책 읽기 도와주겠다고 하셨단다. 가면 선생님이 책 읽어 주시고 따라 읽으라고 한다고. 너무나 감사한 이야기였다.


며칠 뒤 중국어 선생님이 자길 불러 물어보셨단다.

" 너 중국어 진짜 좋아하니?"

아이가 정말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럼 영어 선생님이랑 책 읽고 나면 자기에게 오라고 하셨단다. 중국어도 그렇게 따라 읽기 하자고..

포기하라던 선생님이 아이의 노력을 알아봐 주신 거 같아 너무도 기뻤다. 노력한 아이 스스로 길을 찾은 거 같아 대견하고 고마웠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다. 영어야 당연하고 중국어(타밀어, 말레이어 등) 같은 경우도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섞어 쓰며 배우기에, 초등학교 언어 교과의 평가는 Oral, Comprehension, Essay, Listening 등 4가지 방법으로 평가하며 수준이 높은 편인걸 알게 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중국어 선생님의 요구는 아이 수준에선 당연한 것이었는데, 알고 나선 죄송한 마음도 많았다. (실제로 포기하는 외국인 학생이 많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며 아이는 공부하고 아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고, 배우고 싶어 하는 진심에 도움을 준 선생님들에게 잊지 못할 고마움을 갖게 되었다.




2년 후 아이는 AEIS란 시험을 치르고 로컬 공립학교로 옮겨간 후, 4학년 때 혼자 중국어 시험 100점을 받았다. 싱가포르 아이들도 받기 어려운 점수를 받았기에 이 기쁜 소식을 아이의 첫 중국어 선생님과 나누고 싶었다. 선생님께 찾아가 그때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갑자기 선생님이 우셨다. 나에게 우리 아이에게 그때 포기하지 않아 줘서 정말 고맙다고, 가르친 보람을 느끼게 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참 고마운 말씀이었다.


매 순간 준비되지 않았고 정보도 없이 부딪혔지만, 몰랐기에 용감할 수 있었고 준비해 본 적 없었기에 늦어도 도전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어 배우기를 좋아해 준 아이가 이룬 작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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