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뚱그려 말하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화가 난 이유를 들여다보면 나약하고 고통스러운 나를 볼까 봐 흘려보낼 정화가, 필요해.
만족을 몰라 귀에 못이 박히면 어디든 가야지. 두 다리로 움직였다. 왜 이 모양으로 태어나서 이모양일까?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평범한 요일 평범한 해 평범한 사람 평범한 지하철
각진 모양 의자에 앉아 개운치 않은 몸으로 눈을 찌푸리고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봤다. 나의 모양은 한강에 흐르고 있었다. 어지러움이 밀려와 헝클어졌다.
왠, 멀끔하지 않은 아저씨가 말을 걸길래 말할 기운조차 없고 성가셔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저씨는 나보다 헝클어져 있길래 (자기 자신에게는 훨씬 더 관대하고 연민을 가질 테니깐) 뭐야 설마 마약, 나쁜 거래, 별 미친놈. 이상한 상상과 기분에 휩싸여 바로 지하철역으로 갔다.
지금에야 별 미친놈으로 만든 아저씨와, 혼자 한강을 왜 간 건지 가지가지한다며 웃을 일이지만 그날은 무거운 배가 가라앉을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내가 말하는 모양은 각자가 담고 있는 모양에 대한 사실이며,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회의적일 때도 있지만.
나는 비관론자는 아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보탠다면 원래 잘 웃고 낙천적인 사람이니깐.
확실한 정답을 원하지만 내가 아닌 사람이 주는 확신은 위험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상과 판단이 아니기도 하니깐. 절대 희망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재설정
절대적인 건 없다는 게 희망이려니 한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할머니는 누가 낳았어? 엄마 뱃속에 어떻게 들어가? 신기한 것 투성인 아들이 물었다.
엄마가 늙으면 할머니 돼? 할머니 되면 엄마 없어져? 아빠 보다 엄마가 먼저 죽으면? 엄마 죽으면 보고 싶어도 못 보잖아, 엄마랑 같이 갈래. 그 말은 무섭지만 나도 어릴 때 엄마는 비교하거나 상대될 만한 것이 없는 것이었지.
기대를 한다.
확실한 걸 원해
불만족스럽다
재미가 없다
지겹다
지루하다
귀찮다
의미가 없다
뭉뚱그려 말하는 단어와 단순한 방식
나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재설정과 정화가 필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