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by 아는개산책
한 짝


거의 천장에 달린 듯한 창문에서 뛰어나온 남자는 벽을 등지고 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아주 느리게 문 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딜 도망가려고? 쪼그만 게. 저기 앉아봐. “


그가 뾰족한 턱 끝으로 가죽소파를 가리켰다. 앉으면 먼지가 먼저 풀썩 일어날 것 같은 가죽소파였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턱을 당기고 눈을 크게 떴다.


-귀... 귀엽게...


그러자 그는 짧은 한숨 한 번에 다시 한번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니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죽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잠김이 풀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문은 도대체 왜 잠근 거야. 너 뭐냐. 어디서 왔어?"


-고향?


"여기 가져갈 것도 없는데. 뭐, 컴퓨터 훔치러 왔어?"


나는 다시 한 번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채팅하고 있었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어디 계세요.


그 순간 문쪽이 잠깐 어두워지나 싶더니 안경 낀 남자 하나가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까맣고 동그란 얼굴에 만성피로가 보였다.


"도진, 혼자? 어? 아니네."


"형. 아,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형이라 불린 사람이 문을 활짝 열며 들어오자 볼록 튀어나온 배가 먼저 보였다. 아니다, 열린 문이 보였다.


"누구?"


뛰었다.

두 손으로 코까지 묶은 후드를 꼭 쥐고서 앞 발가락에 힘을 주고 힘껏 뛰어나갔다.


그런데 생각 외로 조용했다.


우다다 달리던 나는 정문 계단 앞에서 우뚝 섰다.

갑자기 바닥에 붙은 것처럼.


컴퓨터 화면만 끄고 전원을 끄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몇 마디 나누지 않은 채팅 내용 중에 마지막 한 줄.


-전 남자가 더 좋아요!


남자로 로그인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꾸 여자들만 말을 걸어왔다.


"으아! 다시 갈까?"


그때 뒤통수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어디가? 일로와!"


으아악!


나는 다시 급하게 뛰려고 뒤로 돌던 발을 앞으로 돌리다가 자빠져 버렸고, 어제 산 슬리퍼 한쪽은 날아가버렸다. 그 방 문에 가까운 쪽으로.


-아 몰라.


한 짝만 지키고

뛰었다.



기숙사


터덜터덜 입구를 들어갈 때는 절뚝이는 걸음이 보이지 않게 앞 발끝을 세워 걸었다. 곧장 샤워실로 향해 발을 씻었다.


"와우. 나 맨발로도 뛸 수 있네. 미쳤네."

혼자 중얼거렸다.


아직 사람이 다 채워지지 않은 기숙사 복도도 조용하긴 매한가지였다. 끝에서 두 번째인 방까지 긴 길목이 이어졌다. 가는 길에 매점에 들러 슬리퍼를 샀다. 또다시.


방 앞에서 열쇠를 넣었지만 헛돌았다. 문고리를 확 돌리니 확 돌아간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난 들고 있던 봉투를 놓치고 말았다.


"헉"


"헉?"


두 침대사이의 한 가운데서 긴 머리를 앞으로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한 손에는 커다란 가위를 들고 머리 밑에는 쓰레기통 하나가 놓여있었다. 나는 밝은 노랑의 머리칼과 쓰레기통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내 발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쪽은 어제 산 분홍슬리퍼, 한쪽은 방금 산 남색슬리퍼를 신고 있는 내 발.


"어, 안녕."


"......"


"우리 룸메야. 같은 학년. 새내기."


"아... 지금 뭐…”


궁금한 걸 먼저 물었다.


"아, 이거. 금방 할게, 잠시만. “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무릎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싹둑, 싹둑 잘라냈다. 한 번에 잘리지 않자 여러 번 가위질을 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몸을 틀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가위질이 끝나자 바로 옆 책상에 가위를 가볍게 던지더니 고개를 들었다. 삐뚤빼뚤한 머리는 귀밑에서 잘린 단발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미인이다.


"정보름. 내 이름"


"어?"


"넌 고우리지?"


"어?"


입이 어 라고 작게 벌어지고서는 다물어지지 못한 지 한참이다.


- 내 이름...


"악!"


떠올랐다.

어제 산 분홍슬리퍼 구석에 조그맣게 이름을 쓰던 내 모습.


-아, 오른쪽만 썼으니까.


나는 발을 내려다봤다.


왼쪽에는 분홍슬리퍼. 오른쪽에는 남색슬리퍼. 그리고 떨어진 봉투에서 삐져나온 남색슬리퍼.


모두

한 짝이다.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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