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

열아홉

by 아는개산책

-대학은 나왔니?


신입시절에는 그런 질문을 면전에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긴, 면전이 아니면 어디다 써서 묻겠냐마는. 저 여섯 글자에서 전하고 싶은 것이 무게였다면, 그건 너무 시시했다. 대학으로 기죽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그러다가 연차가 쌓여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이사가 되었을 땐,

나는 직원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했다.


-대학?

기억도 안 나. 어차피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뭣이 중해요?


-스무 살에,

네가 만나게 되는 사람.



어떤 대학에 갈래


"우리 넌 어디 갈 거야?"

현주의 질문에 풀던 문제집에서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춰봤지만, 이미 나의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을 알아차린 표정이다. 잠이 쏟아져 마땅한 야간자율학습 시간이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책상 사이에는 책들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커다란 바구니들도 일렬로 줄지어있다. 이 고등학교 3학년의 교실은 거의가, 아니 모두 이와 같았다.


"몰라. 어디 가지?"

"우리 같은 데 가면 좋겠다."

"진짜."


맞장구를 치고 있지만 이루어지기 힘든, 한 번쯤 그냥 해보는 말이라는 걸 잘 안다. 생각대로 같은 동네라도 갈 수 있는 거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남자친구도 한 번은 사귀었을 텐데.


그렇게 앞 줄에 앉은 두 학생이 쑥덕거리며 의례 하는 대사를 주고받을 때 앞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학생주임이 전등 빛에 반짝하는 이마를 쑥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한 손에 단짝처럼 들고 있어야 할 가느다란 나무막대가 보이질 않는다.


우리는 바로 문제집에 고개를 처박고 볼펜을 끄적거리기 시작했지만 소리도 나지 않는 그 발걸음이 바로 옆으로 와 멈춰 선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문제집에 보이지 않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있었다. 머리칼 없는 머리가 둥근 그림자가.


학주는 검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톡 치더니 천천히 올려다본 나에게 따라오라는 고갯짓을 했다. '내가 제일 시끄러웠나?' 이유 모를 두려움이 앞섰지만 선생의 착오를 확인은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손가락을 들어 내 턱을 가리켰다. 저 말인가요? 선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주임은 말수가 적은 데다 벽을 긁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 자체만으로 공포를 전달하는 선생이었다. 물론 조용히 공부만 하는 학생들에겐 분위기를 정돈해 주는 고마운 선생이기도 하다. 그럼 정작 나에겐 그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접점이 없었다.


"너는 어디, 목표 정했나"


비어있는 상담실의 불이 켜지며 어두웠던 공기만큼 낮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학주가 물었다. 나는 꿈틀하고 목을 세웠지만 그것이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예상치 못한 내용 때문이었는지 헷갈렸다. 목표를 확인할 만큼 학생주임선생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고 더더구나. 그는 나의 담임도 아니었다.


"아직요."


수능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어느 대학을 갈 성적인지 조차 파악하지 않은 상태였다. 전교 1, 2등은커녕 반에서 1, 2등도 아니었고. 더 솔직한 마음은 나에게 대학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설마, 대학을 정하지 않았다고 혼나나.라는 생각까지 미친것은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골고루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거지? 이유를 가늠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우리야, 여기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봐라."

"네?"


내 이름을 아신다. 선생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기도하자."


학생주임 선생은 그렇게 나를 바닥 한가운데에 앉히고 머리에 손을 올려 안수기도를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던 나는 그제사 떠올릴 수 있었다.


-아, 같은 교회시지.


교실로 돌아온 내게 아이들은 눈빛을 모아쏘아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어깨만 으쓱하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기도문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떤 대학이. 중한가?



수능을 겪고


수능날 아침도 어김없이 내가 엄마를 깨웠다. 수능생이라고 하는 고3 시절 내내 아침 기상은 엄마보다 내가 빨랐다. 때로는 정말 내 뱃속에는 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알람이 필요가 없었다.


"어? 나 이거 먹어?"

"응 너 좋아하는 거잖아."

"응..."


평소 좋아하던 미역국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는 미끄러질 수 있다는 속설을 가진 미역국은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도 떠올렸다. 엄마는 모를 수 있지. 하지만 수험생인 나는 알았다. 그리고 언니의 수능날에는 절대 미역국 같은 것은 끓이지 않았다는 것도.


엄마아빠의 응원을 뒤로하고 들어선 수험장에서도 난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언니는 수능날 뭐 먹었더라'


그날의 시험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다. 난 시험하나로 인생이 바뀔 만큼 대단한 머리가 있거나 기대를 받는 학생이 아니었다. 중간만 가자. 중간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내려가게 되더라도 시험으로 달라질 인생은 아니다.


6.25 때도 사람은 살았는 걸.


하지만 그날의 시험에서 나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치렀던 모든 시험보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욱 놀랐다. 나보다 내 대학을 더 궁금해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날 시험을 가장 망친 여자사람 친구들은 조금씩 나를 피해 다녔다. 수능 잘 보라고 엿을 곱게 포장해 건네주던 친구들이. 반면 이제는 더 볼 일 없겠다 생각했던 남자사람 친구는 둘씩이나 같은 대학에 합격했다. 말로는 너 쫓아서 지원했어. 웃겼다. 그런 게 가당키나하나.


나는 혼자인 기분이 싫어 졸업날까지도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한 건물에 층층이 세 들어 살면서 평생 함께 하자던 친구들과 마주치는 일도 없어졌다.


정시전에 입학이 결정되었다.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우리 학교에 지원했어요?"

면접관의 표정이 지쳐 보였다.


면접을 보러 올라가는 서울길에서 아빠의 차 안에는 한 사람의 테이프가 반복재생되었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분명 예상질문으로 생각했었지만 다른 한글은 모두 머릿속에 지워진 듯 하얘졌다.


"낭만이 있을까 하고... 요."


연애할 생각 말고 공부만 하는 거야.라고 또한 반복재생되던 엄마의 목소리.


낭만은.

곧 연애인 걸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동네의 같은 얼굴의 아이들과 지내던 학창 시절이 끝이 났다.


그리고 고우리라는 우물 안 개구리는 열아홉이 되어서야 서울에 힘껏 던져졌다.

새로운 생명체를 품은 깨지기 쉬운 알처럼.


그 알이 갈라지기 시작할 때,

과연

그 앞엔 누가 있을까.


누가 있든.


난,

결국

나겠지만.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