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7 "너에게 영상을 남기고 싶어."

by 만년산마녀


Miracle #7

2022. 08. 06. 토요일

Taize 14일차 : "너에게 영상을 남기고 싶어."





잠들고 1시간 30분 후 나는 저절로 잠에서 깼다. 불면증.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사정들로 깊이 잠들지 못했다. 평일에는 1~5시간 정도 잤다. 대신 토요일과 일요일에 10시간 넘게 잤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빨리 뛰는 ‘카페인 민감자’였다. 때문에 일부러 잠을 안 들게 할 수 없었다. 단지 나의 고단한 어린 시절은 나를 일하는 로봇으로 키웠고, 그것이 습관이 돼서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깼다. 심리적인 것들이 무의식에 남아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리를 시작하거나 감기에 걸리는 등 너무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잠을 안자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친구들은 나를 많이 걱정했다. 그래도 이곳에 와서는 생리를 시작했고 하루하루 모험이 많았다. 그래서 비교적 잠을 좀 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또다시 잠이 안 오는 새벽이었다. 하지만 오늘을 위해서 억지로 잠을 다시 청했다.



Henri에게서는 아직도 답장이 없었다. 내가 너무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일까? 오늘은 우리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은 언제나 너무 아프다. 이별은 싫다. 나는 다시 5살 짜리 꼬마아이가 돼서 침낭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 또 1시간 50분 뒤 나는 잠이 깨버렸다. 근데 아직도 그에게서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알았다.




Henri는 휴대폰 인터넷을 다 썼구나.




한국사람들은 이해를 못할 문장이다. 성격 급하고 인터넷에 취해사는 한국인답게 우리는 모두 인터넷 무제한을 쓴다. 심지어 8살짜리 아이도 무제한 인터넷 데이터 요금제를 쓴다.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하지만 유럽이나 다른 외국권에서는 한국처럼 인터넷 무제한 요금제는 잘 쓰지 않는다. wifi의 속도도 굉장히 느린 편이고 많이 있지도 않다. 이럴때는 성격급한 한국인이 좋다. 하하. 아무튼 나는 이 문제를 눈치 챘다. 어쩌면 그가 아직도 자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Oyak에 일하러 오전 출근을 해야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안 되지? 결국 나는 아침 7시까지 기다려보고, 그래도 답이 없으면 Henri를 깨우러 가보기로 했다.




아침 7시.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의 방 앞에 서있었다. 이런 건 난생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우선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Henri~~~?”




두 번 정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 어쩌면 그는 이미 씻으러 간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다시 나의 방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의 직감은 그가 계속 방에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에 그가 아직도 잠들어 있는 것이라면 그를 도울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그의 방으로 향했다.




“Henri~~~~??”




아까보다 큰 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내서 문을 두드리며 그를 불러 보았다.




“Henri~~~~??”




그러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Henri’s sleep now.”




자다 깨서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나는 부드럽게 부탁했다.



“oh sorry. Could you wake up him? because he have to go to Oyak this morning.”



그러자 그가 Henri를 깨우는 소리가 났다.



“Henri someone fine you. run~run~run~”



아니.. 나는 그를 밖으로 보내 달라는게 아니라 깨워만 달라는 거였는데.. 내가 “no no no”를 외쳤지만 이미 잠이 덜깬 Henri는 웃통을 벗을 체로 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나는 부끄러워서 인사만 건넨 후 내 방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가 맨발로 나를 따라왔다.



“Henri its ok~~ I just worry about you. that's why..”



하지만 그는 내게 입맞추었고 어깨동무 하더니 나와 같이 내 숙소에 왔다. 그리고 핸드폰의 원인을 알아냈다. 내 핸드폰이 안 됐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해서 얼마간의 데이터가 남은지 알고 싶어했고, 요금제를 미리 조금 더 연장하고자 했다. 그리고 내 번호를 몰라서 내 번호를 알아내려 했는데 그는 Oyak에 가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내 lycar 유심을 인터넷으로 가입시킨 후 요금제 연장을 알아봐 주려고 하고 있었다. 아무리 말려도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또 나는 졌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시도해도 인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를 얼른 출근하라고 강하게 독촉했다. 결국 그는 3~4번의 시도 끝에 나중에 해보자는 말을 남기고 씻으러 갔다. 다행이 내 숙소에는 다른 룸메이트들은 퇴실하고 없었고 한 명은 며칠 전부터 안 보였다. (알고보니 그녀는 코로나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었다. 정말 천운이었다.)Henri가 출근을 하러 간 후 나도 샤워를 하고 밀린 빨래를 했다. 산티아고에 갈 생각으로 옷과 속옷을 3벌씩만 가져왔었다. 빨래 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후기에서 봤기 때문이다. 다들 짐을 7kg미만으로 메고 다녀야 된다고 했다. 그것도 나중에는 엄청 무겁게 느껴질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짐을 줄였다. 물론 결국 못가게 돼서 캐리어를 샀지만. 하하. 아무든 그 덕분에 나는 빨랫감이 많았다. 땀 흘린 옷을 또 입기도 싫었고 잠옷이랑 속옷은 매일 갈아입고 싶었기 때문이다. Henri를 매일 기다리게 만드는 원인중 하나였다. 오늘은 그가 갔으니 최대한 빨리 해치우리라. 비닐 봉투에 물을 담아서 빨래를 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빨래를 하고 나면 허리랑 팔이 너무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다. Henri가 “게스트 하우스에 세탁기가 있다고 물어봐 줄까?” 라고 나를 위해서 물어봐 주었었지만, 생리혈이 묻은 옷을 세탁기에 돌릴 순 없었다. 나는 속옷은 내 손으로 직접 세탁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둘러댔다. 그는 내가 피부가 상한 것을 속상해 하자 본인이 쓰고있는 알로에가 들어간 선크림을 주고갔다. 그는 정말이지 자상함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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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침내 그의 집 주소를 받았고, 어제 친구들의 엽서는 이미 다 보냈다.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우편함에 넣은 엽서는 재밌게도 제일 처음 쓴 Henri의 엽서였다. 하하. 하지만 몇 줄의 한국어는 번역하지 않은채 그냥 보냈다. 칸이 모자라기도 했고 그날 더운데 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가 걱정돼서 두서없이 썼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번역해 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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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우리는 성경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틀전에 아픈 Henri에게 물티슈를 가져다 대며 간호했던 곳이었다. 우리가 간호했던 휴지가 바닥에 한 개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휴지를 보자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서 갑자기 눈물이 났다. Henri는 물을 뜨러가서 나 혼자 있는 상황이었다. 그 장면을 나는 기억해 두고 싶어서 사진으로 남겼다. 시간이...흐르고 있었다. 곧이어 Henri가 들어왔고 나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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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C에 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 없었다. 배차간격도 길어서 우리에겐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Henri의 제안대로 교회의 지하실과 기도실 기타 성가대 연습실 등을 구경했다. 나는 그런 공간이 있는 줄도 몰랐다. Henri 덕분에 나는 수도원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서로 무슨 기로를 올렸는지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아마도 서로를 위해서 같은 기도를 했으리라.



그리고 Henri는 나한테 편한 옷차림 그대로 갈것인지, 아니면 옷을 갈아입고 갈 것인지 물었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것은 후자였다. 그는 내가 패션 피플인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갈 생각이 아니었다면 나는 옷을 10벌 넘게 가져왔을 것이다.





때마침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그것을 영상으로 온전하게 담고 싶어 했다. 그러자 Henri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본인 핸드폰으로 촬영해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중얼거렸다.



“진짜 왕자 같다. 진짜 왕자님이었네 Henri.”



그의 신사도가 너무 멋있어서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곧이어 나는 동영상 찍는 그의 무릎 꿇은 뒷모습을 몰래 찍었다. 나중에 그가 보고는 맨살이 들어난 것이 싫다고 했다. 보수적인 그 부분까지도 너무 내 이상형에 맞는 왕자님 이였다.



마지막으로 유실물 센터에 가서 나의 “선글라스”가 들어왔는지 확인했지만 없었다. 유실물 센터 흑인 봉사자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PTSD로 인해서 남자들 이름을 잘 못 외우기 때문에 Henri에게 세 번이나 그의 이름을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나도 이런 내가 싫었다. 하지만 Henri는 나의 속마음도 모르고, 상대방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재치 있는 해결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또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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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우리는 마을 C에 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한국인 “동민”과 태국친구 “Noey”를 우연히 만났다. 그 둘은 비밀리에 사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마을 C로 데이트를 나간 다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반가웠다. 그리고 태국 친구 “Noey”는 내게 줄것이 있다면서 선물을 주었다. 태국 코끼리 마그넷과 직접 만든 팔찌였다. 내 영어 이름 XIA가 들어간 팔찌였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 귀여운 선물을 Noey에게 직접 내 팔에 채워주라고 부탁했다. Noey는 굉장히 수줍어 하면서 내게 팔찌를 채워줬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서 그녀에게 기쁜 모습을 보여주고 안아주었다. 뒤늦게 도착한 “동민”이 나와 Henri가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젯밤에 물어본 질문들에 Henri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단 한 번도 내게



“내 여자 친구가 되어주겠어?”



라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는 그냥 가벼운 관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안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빠르게 내리고 싶어서 뒷문 바로 앞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버스가 커브를 돌거나 급정차 했을 때 몸이 앞으로 쏠려서 넘어질 뻔하였다. 그걸 본 Henri가 뒷자리로 옮기자고 말했다. 그리고 좌석을 옮겨서 앉더니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시외버스 (장거리 운전 버스)를 탈 때만 벨트를 매는데, 유럽 버스를 탈 때도 벨트를 메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원래 이렇게 버스 탈 때 안전벨트를 매야 해?”



그러자 그는 위험해 보일 때는 무조건 벨트를 맨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를 따라서 벨트를 맸다. 나는 안전에 관해서는 원칙을 지키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나의 신념과도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늘 나는 “유난스럽다”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었다. 어쩌면 Henri로 유럽에서 혼자 원리원칙을 지키느라 놀림을 받았을지도 모를일 이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서, 함께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우리가 서로 사랑에 빠졌을까? 혼자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마을 C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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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동민”과 태국여자“Noey”가 비밀연애 중인 것을 말하자 Henri는 무척이나 놀랐다. 겉보기에는 그냥 친구 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 이유는 비밀 연애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내가 알려주었다. 우리는 다 같이 버스에서 내렸고, 처음에는 길을 헤매서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동민”의 실수를 놀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부탁해서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이제 각자 돌아다니기로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때 나는 몰랐었는데 “Noey”가 우리의 뒷모습을 사진 찍어 주었다. 총 세 장정도 찍어준 이 사진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 이유는, Henri가 걸어가는 나에게 손을 뻗어서 왼손을 잡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세 장의 사진을 연속해서 보면 영상같이 느껴지고 마음이 포근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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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는 어쩌면 마을C가 지루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수도 없이 와본 곳이니까. 하지만 나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주었다. 거울에 비춘 모습을 함께 찍기도 하고, 달콤하게 입맞춤 해주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러 갔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프랑스산 샴푸를 많이 샀다. 나도 사고 싶었지만 캐리어에 공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다음번에 프랑스에 오면 사야지.’하면서. 대신에 최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의 생일선물로 위스키를 샀다. 그 친구의 생일이 2주 전이었는데 아무것도 챙겨주지 못한데다가 최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그 친구는 나의 대학원 시절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렇게 위스키와 생리대를 샀다. 그리고 같이 나눠 먹을 아이스크림을 고르는데 정말 나는 뭐가 맛있는지 몰랐다. 그때 Henri가 리더쉽 있게 카라멜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이후 Henri가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샴푸 사진을 찍었는데, 계산대 같이 올려두었던 내 생리대도 같이 찍혔다. 나는 “내 생리대 빼고 다시 찍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계산이 시작돼서 그 말을 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봉투 대신에 그는 들고 갈 수 있는 큰 가방을 샀고 거기에 모든 것을 담았다. 그 가방의 겉에 그려진 메시지와 유리병은 굉장히 로멘틱 했다.



쇼핑가방이 꽤 무거웠기 때문에 나는 같이 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나게 무서운 목소리로 안 된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예전에 장봐왔을 때 멍든 것이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정말 아껴주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위스키를 산 것이 그에게 미안했다. 위스키가 제일 무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Henri가 아는 테이블에 앉아서 사온 카라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스푼이 따로 없었지만 빵집에 들어가서 넉살 좋게 얻어왔다. 그의 이런 사교성과 재치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항상 이런 역할은 내가 맡아왔는데,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나랑 똑같은 행동을 하니까 할 말을 잃었었다. 그는 정말 나랑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여 주었다. 마치 아기새 처럼 나는 입을 벌려서 그가 주는 것을 받아먹었다. 보통 평소의 나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놓고 싶었다. 핸드폰의 어플을 몇 개 더 지운 후 녹화를 하기 시작했다. 용량부족으로 10초 남짓 밖에 저장이 안 됐다. 그래도 나는 좋은 영상들을 많이 남겨서 좋았다.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그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주는 이 비디오를.



그리고 그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줘서 내가 받아먹고 나서 소녀처럼 수줍어하는 표정을 보았다. 나는 사실 그 순간 엄청 수줍었다. 하지만 들킬까봐 먼 산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Henri도 수줍어하는 게 보였다. 우리 둘 다 수줍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영상이 너무 순수했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영상이 너무 좋아서 수백번 반복해서 보았다.



그 이후 우리는 아이스크림 한 통이 너무 커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아마 이별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둘 다 입맛을 많이 잃은 것 일수도 있다. 그는 나에게 말을 보여주고 싶어서 경기장으로 데려갔지만 오늘은 말 공연이 없어서 말이 없었다. Henri는 크게 상심했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Henri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내가 무거운 짐가방을 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매순간 나를 위해서 배려했다. 우린 서로에게 쓸 편지를 위해서 기념품 샵에서 엽서를 샀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여러 장소들을 방문했다. 절벽같은 벽돌위에 올라가서 뛰어 내리며 녹화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대형 기념품 샵에 들어가서 둘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보라색으로 칠해진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삼켜야했다.



오늘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날 인 것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엔 그는 벨기에도 돌아간다. 나 역시도 Paris로 갔다가 마드리드로 넘어갈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의 진심이 어떻든 간에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난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내 등에 업힐 것을 요청했다.

그는 키가 나보다 엄청 컸지만 그래도 업어주고 싶었다.


그는 당황스러워 하더니 나보고 먼저 업히라는 것이 아닌가. 아니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결국 나는 그에게 또 졌다. 하하.



그래서 그가 원하는 대로 그에게 먼저 업혔다. 그리고 입맞춤 하는 비디오를 남겼다. (이때 나는 정말 피부가 엉망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나를 그는 사랑했을까? 신기할 따름이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됐다. 나는 그를 업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Henri는 절반은 믿고, 절반은 못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는 성인이 되고 나서 여자에게 업혀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당연하지. 하하) 그래서 나는 그를 업고 꽤 걸었다. 그는 엄청 마른편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는 무거웠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키도 너무 커서 다리가 끌릴 것 같았다. 그래도 무사히 잘 해냈다.



그렇게 마을에 있는 옷가게를 구경하고 멋진 공간이 나오면 사진들을 남겼다. 그거 아는가? 사진은 그날의 기분을 반영한 다는 것? 포토그래퍼와 피사체 모두의 기분이 사진속에 녹아든다. 그날 우리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아닌 척 했지만 우리는 너무 슬펐고 힘들었다. 그래서 그날 찍은 사진들은 전부 엉망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구경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가 싶더니만 갑자기 시계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알고보니 내 손목시계가 조금 헐렁해서 돌아가는 것을 기억하고 시계의 가죽 부분에 구멍을 하나더 뚫으러 온 것이다. 그는 특유의 사교성으로 주인 아저씨과 시계 관련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어라서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대화 나누는 그 장면들이 너무 멋있어서 녹화해 두었다.



새로 구멍을 뚫은 시계는 사실 너무 조여서 불편했다. 하하하.



하지만, 그가 나를 위해서 사소한 것 하나 하나까지 기억해 두었다가 도움을 주려는 그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이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리라 하고 결심했다.



그 마을에서 나는 무려 세 번이나 Henri에게 영상편지를 남기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전부 무산 됐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말로 “안녕, Henri 나 시아야.”이후부터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안간힘을 다해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중간 중간 걸어가다가 결국 기념품 샵에서 울긴 했지만. 얼른 수습하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서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정말.


시간에 맞춰서 우리는 수도원에 돌아왔고 Henri는 많은 친구들과 이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역시 그것도 슬퍼 보였다. 이별은 쉽지 않으니까. 나는 오히려 깊게 친해진 친구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만약 Oyak에서 일해서 많은 친구를 사겼더라면 나는 지금쯤 오열하고 있을테니까. 나는 Henri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사진을 공유할겸 우리는 수도원앞의 게스트 하우스로 모였다. 와이파이를 당겨서 서로 사진을 공유했다. 식판에 음식을 받아왔지만, 나는 입맛이 없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다.



결국 나는 용기내서 그에게 물어봤다. 어제 메시지로 물어봤던 질문들. 내 영어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만 이것이 알고 싶었다. 벨기에 에서는 사귀기 전에 키스부터 하는지?


처음에는 누가 그런거 신경써 라고 가볍게 말하던 그가 나의 표정을 보고 심각성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 이후 그는 엄청 길게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곳도 한국이랑 똑같았다. 하룻밤 섹스를 위한 원나잇을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너에 대한 내 마음은 그게 아니야.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그의 슬픈 표정을 보니 나도 눈물이 날것 같았다.



“나도 알아. 너가 정직한 사람인거. 그냥 잊어버려. 바보같은 질문이었어.”



하지만 그는 계속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자기 여자친구 사진을 보여줄 수도 있다고 나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사생활이기 때문에 내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나는 한국 번역기를 켜서 한국말로 말했다.




“SA RANG HEA.”




그리고 프랑스어 번역기를 돌린 후 그에게 보여줬다.




<Je t'aime.>




그것을 본 그는 마침내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입맞춤 후 길바닥에 앉아 마저 밥을 먹었다. 하지만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입맛이 없어서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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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예배에서는 가느다란 초를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나는 몸이 안 좋아서 저녁 예배에 참석을 안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초를 붙이는 것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초의 초를 밝히는 행사를 Henri와 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좋았다.



그와 하는 많은 것들이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특별했다. 많은 “처음”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의 초에서 불이 밝혀졌다. 우리 앞쪽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 친구도 있었다. 그는 자꾸만 내 발을 손으로 터치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눈인사 했다. 그가 나에게 인사하고 싶어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곤란해 하며 아들을 말렸지만 나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Henri와 나는 코앞에 다가온 이별에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너무나 슬픈 표정으로 우리는 그 순간들을 사진과 비디오로 남겼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Henri가 창고 안쪽에 꼽아둔 우리들의 충전기를 가지러 갔을 때 재미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사랑 고백을 받은 것 이다.





“I LOVE YOU!”




내 신발을 계속 손으로 터치했던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이 친구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아쉽다.)



동시에 그의 엄마는 깜짝놀라며 내게



“Sorry.”라고 사과했다.



나는 동시에



“Thank you.”라고 그 남자에게 말했다.




그가 나를 좋게 봐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그렇게 대해줘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 일을 밖에 나와서 Henri에게 자랑했다.



“He really care abaut you. l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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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너가 있을 때는 아무말도 안 하다가, 너가 가자마자 내게 고백했잖아. 그는 정말 너를 신경쓰고 있었어. 하면서 나는 웃었다. Henri는 아무렇지 않은척 하며 내 손을 세게 잡았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촛불의 초가 꺼져도 마음속에 영혼속에 영원히 빛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Henri와 나의 초를 나는 버리지 않고 한국으로 가져왔다. 금이 가긴 했지만 나는 그날 빈 소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그 이후 그가 Oyak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내가 윙크하는 것을 좋아해서 본인도 윙크하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내가 윙크하는 것을 좋아하나?’



아무렴 어때, 어쨌든 그가 윙크하고 있는 사진들은 전부 귀여웠다.



우리는 양들을 보러가서 함께 보내는 마지막 선셋과 밤공기를 구경했고. 양들도 슬프게 울어댔다. 또 네 명의 십대들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었다. 나는 그들도 기념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할 것 같아서 그들에게 “사진찍어 줄게!” 라고 말했지만 순간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아직도 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하. 한국문화랑 다른 건가? 그때 Henri가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전환시켰고 나도 그냥 그 음악에 취해버렸다. 우리는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지만 슬픔을 잊기 위해서 과도하게 행복한 척, 취한 척, 연기 하는 중이었다.





그 날 밤


마지막 밤



우리는 이틀만에 별을 보러 갔다.



그리고 별보다 더 반짝반짝한 추억들을 남겼다.



아름다운 사진들도.





나중에 봉사자가 와서 Henri는 어둠속에서 깜짝 놀라야만했다. 하지만 그 봉사자는 우리를 숙소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순수하게 별만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별을 보고 늦지 않게 돌아가라고 말해줬다. 우리에게 마지막 밤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해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그는 우리에게 시끄럽게 떠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시간 남짓 더 은하수 이불을 덮고 누워있을 수 있었다. 너무 추워졌기 때문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나중에 샤워장에서 Henri는 그와 마주쳤고 고맙다고 인사했다고 했다.




우리의 마지막 밤에 찍은 밤하늘 사진엔 은하수가 담겨 있었다. 너무나도 슬프고도 행복한 아름다운 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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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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