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8 "눈물 파티."

by 만년산마녀


Miracle #8

2022. 08. 07. 일요일

Taize 15일 차 (1) : 눈물 파티



나는 사실 어제 마을 C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고 싶었다. 수도원에서 주는 급식 말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우리의 마지막 저녁을 멋지게 먹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밥을 먹으면서 근처에 괜찮은 숙소가 있으면 마지막 밤은 편하게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떨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섹슈얼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심한 생리통으로 약이 없으면 잠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상상은 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함께 별 보러 가서 너무 피곤해서 내가 잠이 든 적도 있었으니 말 다했다. 다만, 정말 나는 그저 “따듯하고 편안한 곳에서 둘이 편안하게 마지막 밤을 보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상상했었다. 그의 품에 안겨서 조용히 잠드는 그런 밤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을 바꾸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는 계좌 잔액이 얼마인지 알고 싶어서 그 도시에 있는 모든 ATM기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든 은행에서는 벨기에 은행의 잔고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유창한 불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문의했지만 결과는 “알 수 없음.”이었다.



그가 그렇게 곤란해하는 사이 나는 내 신용카드를 쓸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해서 나의 좋은 모습만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듯이, 그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돈이라는 것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누가 돈을 쓰든 그것은 더 이상 내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그가 정말 나를 아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단 한 번도 그는 정식으로 우리 사이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제안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남자의 장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라며 슬픈 생각에 빠지곤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식사와 숙소를 제안한다는 것은, 나한테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혼자 고민만 하다가 다가오는 이별에 눈물이 났고 결국 수도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잘 된 일이었다. 우리는 저녁식사 시간에 게스트 하우스 앞에서 wifi를 당겨 받아서 사진을 공유했다. 덕분에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오랜 시간 망설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서 진솔한 답변을 해주었기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그처럼 바르고 정직한 남자가 왜 정석으로 사귀자고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고 나면 감정이라는 것은 내 예상 밖의 속도로 자라난다. 본인도 본인의 그런 모습에 당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계속 그랬듯이. 그리고 그 역시도 외국인 여자 친구는 사귀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아마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에게 물어봐야겠다. 하하) 그는 본인의 감정에 대해서 신중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감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그랬듯이 그 역시도 미래가 걱정 됐을 것이다.



내가 <벨기에>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듯이, 그 역시도 <한국>에 대해서 몰랐다고 한다.




<트윈 플레임 : twin flame>에 관한 전설. 그 전설은 사실이었다.




하나의 영혼에서 두 개의 몸으로 나뉘어 나온 사람은 평생을 걸쳐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만나기는 힘들다고 한다. 보통 대부분 다른 성별로 태어나고, 다른 국적, 많은 나이 차이를 두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기적적으로 한 인생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게 되면 첫 만남에 본능적으로 서로 끌리게 된다고 한다. 여지 것 경험한 감정들과는 너무나 다른 끌림이기 때문에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다고. 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 자체만으로 많은 대화나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평온함을 느끼며 행복하고 충만하다고 한다. 그리고 만남 초창기 때 둘 다 몸이 아프다고 한다. (나는 그가 고국으로 돌아간 날부터 4주 동안 독한 감기에 걸렸었다.) 서로를 너무 갈망한 나머지, 본인도 모르게 강력한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번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하며 그 역경을 견디고 둘이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평생 행복하다고 한다.



<소울 메이트>는 한 인생에서 여러 명일 수 있지만 <트윈 플레임 : twin flame>은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서로를 가르치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평생 알고 지내온 것처럼 느끼고, 마치 “집”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트윈 플레임 : twin flame>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여정은 그저 전설로 내려올 뿐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었던 8일 동안은 내가 너무나 미숙했다. 그래서 그가 <트윈 플레임 :twin flame>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 오고 나서 나는 많은 글들을 접했고, 많은 감정들을 경험했고,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구 반 바퀴를 날아서 만난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으며, 동시에 같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트윈 플레임 :twin flame>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트윈 플레임 : twin flame>이라는 것.



이 이야기는 너무나 영적이고 때로는 세상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그건 내 첫 번째 목표인 “책 출판”이 거의 달성 됐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순간이 거의 가까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Henri한테 잘 자라고 인사하고 잠이 오지 않던 밤, 나는 혼자 아침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밤을 새 버렸다. 몹시 피곤했지만 예민한 나는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잠들지 못한 그날 오전 6시, 나는 생리통이 시작됐고 약을 먹고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에게는 잠을 잘 잤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의 메시지를 읽자 아픈데도 기분이 좋았다. 정말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트윈 플레임 : twin flame> 임을 증명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처음으로 그 보다 먼저 준비를 마친 나는(왜냐하면 잠을 아예 못 잤으므로) 아침 식사를 위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자갈밭에서 발이 미끄러졌고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심하게 넘어져서 주변사람들이 다 걱정을 해주었다. 그리고 한 남성이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솔직히 엄청 아팠지만 창피함에 괜찮다고 하고 나왔다. 오른손 손바닥 아래 부분이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혼자 쓱 피를 닦고, 약을 발랐을 테지만, Henri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넘어졌다고 사진 찍어서 Henri에게 보고를 올렸다. 역시나 그는 짐을 정리하다가 내 다친 사진을 보고 당황해서 바로 온다고 했다. 나는 짐정리를 하고 천천히 오라고 했지만 그는 이미 길 위라며 사진을 찍어 보냈다. 손바닥이 너무 아픈데 그의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났다. 그와 함께 있다면 우주 전쟁이 일어나도 두렵지 않을 거 같았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다. 그리고 함께 행복할 자신이 있었다. 만난 지 고작 8일 차인 남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그때 당시에는 너무 두려웠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그저 평온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 때문에.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실 Henri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 Taize에 일주일 더 머무른 것이라는 것을. 이제 막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된 그가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곳에 남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전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1. 그는 뽑혔던 파트타임 일도 못하게 됐다.



이 사실은 Taize에 있을 때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시 메시지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이 말을 다시 듣고 싶어서 “내용을 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의 영어 실력은 5살짜리 꼬마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끔 그가 빠르게 말하면 이해를 못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그의 긴 설명 문자를 읽고 나서, 다행히도 내가 이해한 것과 대부분의 내용이 일치한 것을 알았다.



경영학에서 말해주듯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스무 살 때 나는 대학교에 바로 가지 않고 은행에 취업해서 돈을 벌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은 나를 성장시키고 더 좋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는 <Henri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방학 동안 파트타임에 합격했지만 그 돈을 포기하고 도리어 돈을 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



2. 가족들과 있었으면 편하게 무료로 차를 타고 돌아갔을 테지만, 일주일 더 머묾으로 인해서 100유로가 넘는 버스비와 교통비를 지불해야 했다. 내 생각인데, 그는 Taize에서 벨기에 집까지 혼자 돌아가는 것을 처음 해봤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전에 그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처음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가 아무리 슈퍼 똑똑이 일지라도.



3. 아마도 그는 그의 가족들을 설득해야 했을 것이다. 이유 없이 어린 아들이 혼자 남는 것을 반대했을 가족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4. 나를 다시 만날 확률은 100%가 아니었다. 내가 계속 머물지 떠났을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그것에 용기를 내어 도전한 것이다. 이것 사실 거의 미친 짓에 가깝다. (Just like Mia)



5. 그는 아침 달리기를 위해서 Taize에 남았다고 했었지만, 나와 시간을 보내느라 “단 두 번” 아침 달리기를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8일 내내 평균 4.5시간 이하의 수면시간, 19시간 이상의 활동시간(평균 아침 7시부터 ~ 그다음 날 새벽 2~5시까지 활동했다)을 유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침 운동을 할 수 있는 괴물은 없을 것이다.



6. 그는 다음 여행이 예정 돼 있었다. 친구들과 벨기에에 있는 <Namur>에 가기로 했다. 그 여행 경비와 시간을 맞추려면 그에게는 휴식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산을 더 쓰면서 까지 그것을 희생했다.



7. 그가 나중에 말하길 그는 Taize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100% 동의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산골에 있는 인터넷도 잘 안 터지는 지루하고 평범한, 그리고 모든 것이 똑같은 시골 마을인 것이다. 나 같은 외국인들이나 처음 오니 신기해서 모든 것이 아름답지. 매년 그곳에 10년 넘게 방문한 그로써는 그것이 그저 지루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 막 성인이 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답답하고 불편한 시골이었을 것이다.



8. 그가 Taize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전까지는 근처 숙소에 머물며 가족들과 편하고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다가 돌아갔을 것이다. 공용 화장실과 공용 욕실은 누구나 불편하다. 그리고 매주 3천 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아무리 청소를 해도 더럽다. 식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봉사와 성경공부까지 하면 자유시간도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험을 그는 나를 만나기 위해 선택했던 것이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그의 선택들이 나를 진심으로 감동시켰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모든 것을 내가 짐작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를.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나를 다시 만나기를 바랐는지를.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운 좋게도 나의 <오로라 지구본 볼펜>이 땅에 떨어졌고, 그가 그것을 주웠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은 하늘이 우리를 이어 주기 위한 아름다운 장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는 나를 위해서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특별한 선물을 사주었다. 그리고 한 번은 잔돈이 없는 나를 위해 생리대 값을 내주려고 했었다. 본인의 어려운 상황을 내게 말하지 않고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의 친절함과 따스함은 나는 한국에 와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그는 그 또래의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Taize에서 생활하는 순간순간 그의 선택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내가 여러 생각들이 겹쳐지는 동안 그가 알코올스왑으로 상처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었다. 근데 매우 거칠었다. 그래서 다친 것보다도 더 아팠다. 너무너무 엄격한 의사 같았다. 하하. 다음부턴 더 부드럽게 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물론 안 다치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그는 굉장히 부드럽게 치료해 주었었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상처가 깊어서 살짝만 닿아도 아팠던 것 같다.



이것은 마음의 상처도 같은 원리로 작용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영상 속 <그의 티셔츠의 단추>가 두 개 다 풀어져있었다. 그는 단정한 옷차림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때문에 나는 그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가 엄청 급하게 나온 것이라는 것을. 그는 내가 걱정돼서 대충 옷을 입고 급하게 나온 것이다. 그 이후 모든 사진 속에서 그의 단추는 단정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런 사소한 발견은 나를 감동받게 만들어서 코끝이 찡해진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우리는 일요일의 첫 예배이자 함께 하는 마지막 예배에 집중했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바로 앞과 옆에 성가대가 있었다. 내가 엽서를 쓰던 순간 들었던 호른과 트럼펫 소리도 들려왔다. 그 성스러운 음악과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성가를 부르다가 울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잘 참아왔었는데. 그 순간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울었고.

우리는 성가를 부르면서도 울었다.



그렇게 슬픈 와중에도 나는 Henri가 코푸는 소리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게 휴지가 얼마 없어서 우리는 휴지를 아껴 써야 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휴지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그 불확실성.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무엇보다도 함께 하고 싶은 그 간절함.



이 모든 것이 폭우처럼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한 차례 그렇게 눈물 파티를 하고 난 후 우리는 서로 울지 말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울지 말라고 하면 더 눈물이 나는 법칙은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복 후 형제님이 나눠 주시는 <성자의 쿠키>도 받아서 먹고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Henri와 나는 같은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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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늦게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원래 오전 11시 30분까지 짐을 빼야 한다. 하지만 아침에는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기력이 다 빠져있었다. 너무 아파서 밥도 먹기 싫었었다. 하지만 Henri를 만나고 싶어서 나갔던 것이었다. 하하. 사실 나는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 만약 먹는다면 바나나 한 개 정도? Henri를 만나기 전, Taize에 있는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아침밥을 먹은 적이 없다. 맨날 새벽 5시에 잠들어서 아침 9시에 일어난 탓도 있다. (게으른 Sia) 근데 이제는 때로는 아침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짐을 챙기는 동안 Henri는 조금 지루해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우리의 “샴푸 송”을 부르며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런 그가 너무 사랑스럽고 섹시해 보였다. 동시에 나는 산악회에서 내가 직접 주문제작한 스포츠 타월과, 내가 디자인한 메모지, 그리고 작은 빗을 그에게 선물했다. 그는 그 모든 선물들을 소중하게 받아주었다. 사실은 헤어드라이기도 그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그것은 짐이 될 것 같아서 참았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면서 메모지에 본인의 시그니처 사인을 적어주었다. 나는 “So should I go to bank now.”라는 농담을 던지며 슬픈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짐을 챙겨서 나오는데 그가 특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Henri Ability: Make Sia's Heart Fl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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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캐리어를 끌고 남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 이끌며 갑자기 말했다.



“I want buy a small couple things.”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Taize에 온 첫째 날(그를 만나기 전) 전시장을 구경했었는데 목걸이를 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커플 아이템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에게 나의 떨리는 맘을 전달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처음에 나는 연보라색 목걸이를 골랐지만, 그는 다른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은하수를 닮은, 분홍색과 진한 보라색이 칠해진 도자기 목걸이가 어떻냐고 내게 물어봤다. 난 그것이 더 유니크하고 예뻐 보였다. 그래서 바로 동의했다. 그는 그것으로 2개를 구매했다.


그리고 나에게 한 개를 걸어주었다. 물론 커플 아이템이었다.



나는 너무 감동받아서 거의 울 뻔했지만 정말 죽을힘을 다해서 울음을 참았다. 마지막에 그가 더 진한 목걸이를 받으려고 계산원에게 어리광을 부릴 때 그 모습이 너무 나랑 똑같아서 자꾸 웃음이 났다.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설득하는 편이라서. 그니까 항상 모든 선택을 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그런 그의 노력이 내 눈에는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 이후 숙소로 다시 돌아와서 목걸이를 안전하게 끈과 연결하고 서로의 목에 걸어주는 의식을 행했다. 그 의식을 동영상으로 남겨두었는데 이 영상은 <그가 나에게 아이스크림 먹여주는 영상> 다음으로 많이 본 영상이었다. 그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한 영상이다. 그리고 나는 아름다운 그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찍어두었다. 누군가의 눈동자를 그렇게 가까이서 사진 찍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에메랄드 빛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언제 또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고 또 혼자 슬퍼졌다.



우리가 <twin flame>는 증거는 곧이어 일어났다.



그가 신선한 물을 떠 오다가 나무에 걸려서 넘어진 것이다.



<twin flame>은 살면서 비슷한, 혹은 거의 똑같은 경험을 비슷한 시기에 경험한다. 삶의 <희로애락>이나 큰 사건들의 시기가 굉장히 비슷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한국에 와서 내가 아프면 곧이어 그도 아팠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자주 그랬다. 그 기묘한 경험은 나에게 특별했다.



Henri 일부러 어린아이처럼 넘어졌다고 문 앞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뛰어갔지만, 보호자는 마땅히 침착한 모습을 보여야 하므로 (IoI)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소독시켜 주고 약을 발라 주었다. 그는 키가 커서 무릎도 접질린 것 같았다. 아무리 사소한 다침일지라도 그가 다치는 건 싫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는 미룰 수 있는데 까지 최대한 미뤄보겠다는 심정이었는지 버스를 저녁시간 티켓을 구매했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그의 선택 덕분에 우리에겐 몇 시간이 더 남아있었으므로.



그래서 우리의 캐리어를 봉사자들의 식당에 부탁해서 놔두었다. 계속 이동하면서 끌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았고 수백 명이 다 같이 있는 텐트에 놔두기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 의견 역시 그와 나는 일치했다. 웬만한 것들은 모두 둘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에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치료실을 가서 그의 무릎상태를 체크하고 얼음 팩을 받았다. 이때 그의 뛰어난 언변과 유창한 프랑스어 실력은 큰 도움이 됐다. 그 치료실 앞 정원에서 우리는 그가 무릎을 치료할 동안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 봉사자 “동민”을 만났다. 때마침 우리는 커플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Henri는 나에게 우리의 목걸이를 그에게 보여주라고 말했다. 그렇다, Henri는 저번에 마을 C에 갔을 때 동민이 질문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동민”이 우리가 무슨 사이냐고 물었을 때 내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Henri도 마음속에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그런 섬세하고 따듯한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나는 다소 수줍어하면서 우리의 커플 목걸이를 자랑했다. 그러자 “동민”은 본인도 “Noey”랑 커플 아이템을 맞춰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이것을 헨리에게 전하자, 다만 우리랑 똑같은 목걸이는 사지 말라고 부탁했다. 하하. 한국 남자 “동민”은 내가 Taize에 오게 된 이야기를 대략 듣고 너무 놀랐다. 그리고 그와 같이 다니던 다른 한국인 봉사자들도 나를 “대단한 여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하. 아무리 미친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도 소설책 보고 Taize를 찾아내서 온 사람은 없기 때문에. 나처럼 미친 여자는 처음 봤다는 뜻이었다. (좋은 의미였다) 그리고 게다가 거기서 사랑에 빠져서 이렇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그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신기한 건 “동민”도 발목을 접질렸다고 하자 Henri는 본인의 얼음 반쪽을 떼어서 그에게 주었다. 내가 볼 때 “동민”의 접질림은 거의 다 나아 보였는데 Henri의 배려가 “동민”을 감동받게 했다. 그 이후 “동민”은 Henri에 대한 모든 경계심을 풀었다. 나에게 Henri <좋은 녀석> 같다고 칭찬할 정도였다.



“동민”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사라지고 곧이어 우리는 우연히 “Noey”를 만났다. 아무래도 우리 넷은 인연이긴 한 것 같았다. 나와 Henri는 태국여인 “Noey”에게 “동민”칭찬을 했다. “동민”이 아무런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 둘의 관계가 잘 이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까지도 스페인에 가는 교통 티켓을 사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밤마다 Henri가 자러 가면, 그와 나눈 대화를 캡처해 두느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 모든 기록들이 나의 실수로 지워질까 봐 최선을 다해서 저장해 두었다.


2. Henri를 따라갈까 하고 고민했었다. 나는 여유자금이 있으니 같이 Paris시티나 벨기에에 따라가서 하루 정도 같이 여유로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 어떨까? 하고 예산을 짜두었었다. 그 시간들을 위해서 숙소와 티켓값을 지불할 능력이 됐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그에게 그 제안을 하기 직전에, 그가 벨기에 도착 후 곧바로 친구들과 <Namur>로 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알게 된 나는 “그를 너무 고단하게 만들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에게 제안하는 것을 포기했다.



사실은, 마지막 날까지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그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이런 나의 속마음을 모르는 Henri는 왜 3일 전에 본인이 버스 티켓 값을 알려줬을 때 티켓팅 하지 않았냐며 속상해했다. 한국남자 “동민”과 “Noey”도 아직까지도 떠나는 버스, 기차, 비행기 그 어느 티켓도 예약하지 않은 나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리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다.



심지어 “동민”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진짜 내 인생 말고는 남의 인생은 걱정 안 하는데, 당신은 너무 걱정이 돼. <Sia>.”



나는 그들에게 천방지축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Henri가 얼음 팩으로 무릎을 찜질하며 정원에서 쉬는 동안 (사실 치료 보다도 우리는 조용히 쉴 곳이 필요해서 그곳에 간 것이지만)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티켓팅을 알아봤다. 하지만 결국 나는 Henri와 이곳에서 이별해야 되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슬픈 마음으로 모든 표사 기를 포기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나도 그를 보고 웃었다.






나는 그 순간 눈물이 차올랐지만,

우리의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만 했다.





티켓을 찾고 있던 나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던 그에게 말했다.







“Henri. I’m finished. We can go anywhere.”







이것은 Taize안의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한 편으론 “어디든 너와 함께 가고 싶다.”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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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