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9 "Blood Kiss."

by 만년산마녀


Miracle #9

2022. 08. 07. 일요일

Taize 15일차 (2) : Blood Kiss.




"Henri, We'll meet again soon, I'm sure."


“yeah, who knows, we'll get married, have kids, and live happily ever after.”




그의 말은 또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Henri가 저런 말을 하다니. 나는 아직까지도 그가 <꽃반지 장난>친 것도 안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라고 물어보지 않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잘해주고 있었지만 내가 본 외국영화 들이 문제였다. 대부분의 미국 영화에서는 남녀가 잠자리까지 하고도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라고 말을 안하면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내 기준에서는 너무 복잡하고 이상했다. 근데 그것을 내가 하고 있다니. (아 물론 Henri와 나는 키스만 한 사이였다.)너무 혼란스러웠다.




“우리 부모님도 Taize에서 만나서 결혼했어.”


“What??? that’s beautiful story!! I didn't know that!!!”


“because I didn't tell you. ha ha.”


“정말이야? 정말 Taize에서 만나서 결혼하셨어?”


“응 정말이야.”





그의 대답은 수 천 마리의 분홍 나비가 되어 내 마음속을 날아다녔다. 우리는 달콤하게 입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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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는 오전에 나를 위해서 안내데스크에 가서 스페인가는 버스 티켓을 물어봤었다. 게다가 직접 스페인 버스기사를 찾아가 빈자리가 있는지, 나를 마드리드로 태워다 줄 수 있는지 물어봐 주기까지 했다. 낮잠을 자다가 일어난 불친절한 버스기사는 이미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Henri의 적극성, 진취성, 용기, 도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나와 같은 영혼이 틀림없었다. 어떠한 위기 상황이 와도 선택하는 방식이 나와 너무 닮아있었다. 아니, 행동 자체가 그냥 똑같았다.



사실 그때까지도 Henri를 따라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를 말렸다. 내가 잘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의료센터 앞에서의 달콤한 시간들을 갖는 동안 반나절 동안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마침내 나는 오늘 이별을 맞이하기로 결심 했고 애써 밝은 척 했다.



“Noey”가 오고 나서 그녀에게도 우리의 커플 목걸이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녀가 Henri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처음으로 물어봤다. Henri는 벨기에라는 아주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그가 그의 모국을 낮추어서 표현하는 게 싫었다. 물론 그는 겸손과 유머의 의미로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싫었다. 그래서 바로 말했다.



“But I think Belgium is a cool country, I'll definitely go.”



그 말을 한 후 Henri에게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친구들 앞에서 입맞춤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유럽 사람들 앞에서는 내가 부끄러워서 피하면 다들 좋아한다고 하더니!! 아시아 사람들이 보수적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길거리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입맞춤 정도는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달랐다.


나중에 Henri가 한국에 오면 소개 시켜줄 친구들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이 설렜다. 때마침 Noey가 질문했다.



“Have you been to Korea?”


“No. Not yet. But it's on my bucket list now.”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몰라서 내게 물어봤었던 Henri의, 응용력 만점인 답변이었다. 그는 무슨 인터뷰를 해도 합격 할 것 같은 인재였다.



잠시 후 우리는 얼마 안남은 시간동안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Noey에게 인사하고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그는 일요일 저녁 식사는 구매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 식사 티켓을 사기위해 안내데스크로 갔다. 곧이어 담당자는 분홍색 식사 티켓을 두 개를 주었는데 얼마라고 가격제안을 했다. 이 가격이 괜찮냐고 우리에게 물었지만 Henri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저 어깨를 으쓱 해보일 뿐이었다. 나는 사실 그 티켓이 얼마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I got this.” 하고 계산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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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을 C에서 근사한 식사를 못한 대신 그에게 밥을 사주고 싶었다. 우리의 마지막 식사를. 그리고 그는 그의 계좌 잔고를 확인 할 수 없어서 불안해 보였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내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 이후 나는 세 번째로 같은 계시를 받았다. 계산을 하고 걸어가는데 한 아시아계 형제님께서 내게 인사하며 “신한열 형제”를 꼭 만나보라고 제안한 것이다.



내게 두 번째 주를 머물도록 허락해준 심사원 “미카엘”


그리고 마을 C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국 여인



다음으로 세 번 째 같은 제안이었다. “신한열 형제님”은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됐고, 곧 다시 떠난다고 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용기내어 그를 찾아 <라모도라>에 갔고 그들은 사정을 들은 뒤 “신한열” 형제님과 통화를 하게 해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나의 소개를 했다. 스무 살 때 수녀가 되려고 했다가 못 됐다는 이야기. 소설책을 보고 어렵게 이곳에 온 이야기. 그리고 세 명의 사람들에게 꼭 만나볼 것을 제안 받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오늘 저녁에 이곳을 떠단다는 이야기.(그때는 그럴 생각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잘 만나주지 않는다고했다. 특히 지금은 번역하고 있는 책이 있어서 더 더욱이 바쁘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만나는 시간을 내주셨다.



우리는 30분 정도 기다렸고, 40~5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곳에 Henri도 함께 데려갔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순간을 그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한국 형제님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Henri에게 한국 인사법을 다시 알려주게 됐다.



“An-Nyeong.”은 친구끼리 혹은 편한 사이에 하는 말.


“An-Nyeong-Ha-Se-Yo.”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하는 말.


조금 더 예의가 있는 인사. 라고 알려주었다.



그 순간 바로 한국 형제님이 내려오셨다.



우리는 모두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반갑게 인사했다. 형제님의 얼굴은 굉장히 맑고 순수해 보였다. 그 순간 Henri는 또 특기를 발휘해서 내 심장을 두근대게 했다.




바로 “An-Nyeong-Ha-Se-Yo.”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굉장히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것이다.



슈퍼 천재가 분명했다. 보통 외국인들은 발음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 있었던 나의 크고 작은 사정들을 이야기 했다.


사업이야기, MBA이야기, 삶에 대한 허무, 스무 살 때 수녀가 되려고 했었던 이야기, 이 곳에 오게 된 경위 등등.



형제님은 내게 여러 질문들을 하셨는데 그 중 이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 와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나는 이곳에 와서 <내 자신이 너무 작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주변환경에 쉽게 흔들리는 강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너무 여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이어 <사랑이 무엇인지도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형제님은 미소 지으시면서 좋은 곳에 왔으니 평안하고 행복해야한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게 명함을 주면서 한국에서 같이 일할 것을 제안하셨다. 나와 같은 인재라면 같이 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본 소설의 작가님과도 아시는 사이이신데 <북 콘서트>도 9월에 할 예정이라며 날짜를 알려주셨다.



내가 연락처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묻자. 명함에는 본인의 오리지널 핸드폰 번호가 적혀져 있어서 잘 주지 않으신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그가 나를 좋게 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왠지 계속 만나게 될 관계인 것 같았다.



뒤이어 Henri에게도 한국어로만 길게 대화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영어로 대화를 좀 이어나가셨다. 내가 알기로는 형제님은 프랑스어를 제일 잘 하신다고 하는데 나를 위해서 영어로 대화해주신 것 같기도 하다. 헨리는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마도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인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이 흡사 <상견례> 중 <장인어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신랑> 같아서 웃음이 났다. Henri는 똑 부러지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멋있었다.



그렇게 꿈만 같았던 성스러운 시간을 지나서 아쉬움을 뒤로한 체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내가 다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제안했고, 형제님은 흔쾌히 받아주셨다.



형제님이 가운데에 서시고 양 옆에 나와 Henri가 섰다. 그 어느 때보다 바른 자세로 서있는 Henri의 반듯함이 나를 웃게 만들었다. 그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잊어보려해도 그 사실은 자꾸만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교회 종소리가 슬프게 울려 퍼졌다.



나는 입맛을 잃었다. 먹고싶지 않았다. 슬픔의 늪에 나는 본격적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Henri는 밥을 먹지 않고 핸드폰으로 이것 저것을 보여주는 내게 식사중에는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아빠처럼 말했다. 내가 바로 시무룩해지자 농담이라고 하며 대신에 밥을 좀 먹으라고 너무 안먹는다고 했다. 그의 걱정이 듣기 좋았지만, 정말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배가 안 고프다고 하자 그가 어린아이 다루듯이 나에게 밥을 떠서 먹여주었다. 나는 무척이나 수줍었지만 그가 주는 것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그리고 곧이어 눈물이 뚝뚝 흘렀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한계치였다. 그는 울지 말라며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내가 울면 그도 따라 울게 된다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안 운다고 거짓말 하면서도 계속 밥을 먹으면서 울었다. 내 마음은 내 것 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는 우는 아이를 웃길 때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너무 귀엽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웃어버렸다. 아이 같은 그의 모습들을 다 녹화했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래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와 있는 7일 동안 촬영한 것들의 용량이 10GB가 넘었다. 사랑이 넘쳐흘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피곤한 그는 긴 나무의자 위에 누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난 7일간 그는 거의 매일 4~5시간 자고 17시간 이상 활동을 했다. 일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나랑 놀기까지 했으니 피로가 많이 누적 됐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 한 시간 가까이 울기까지 했으니.. 나는 그가 또 아플까봐 너무 걱정이 됐다. 그가 잠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곧이어 새로 온 사람들을 안내하는 봉사자 분들과 사람들이 들이 닥쳤고 우리는 결국 그렇게 두 번이나 옆 교실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때 나는 벽에 꼽아둔 충전기를 까먹고 그냥 갈 뻔 했는데 졸린 눈을 한 Henri가 내 핸드폰 충전기를 챙겨주었다.





본인 물병은 열다섯 번 이상 잃어버리는 남자.


그러나


잠에 취해있어도, 내 충전기는 기억해서 챙겨주는 남자.





내가 어떻게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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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머물렀던 13번방을 나올 때 그는 내 모자를 쓰고 내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나오자마자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달렸다. 문 밖에 나오니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곧이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마치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았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쳐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두려웠고, 동시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한국 친구가 보자마자 내가 생각났다며 보내준 그림이 있었다. 그 사진에는 Miracle이라는 문구와 오로라 위로 남녀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모습이 Henri와 나 같았다. 그래서 Henri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Henri가 바탕화면에 설치했다. 우리는 그 배경을 커플로 해두었다. 그리고 수십 장의 예쁜 사진들을 남겼다. 그때 어김없이 우리의 친구가 나타났다.



the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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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챙겨 와서 그의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우연히 다른 한국인 봉사자를 만났다. 그는 “동민”과 같은 교회에서 온 봉사자였다. 나는 그에게 Henri와 나의 휴대폰 커플 배경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폰은 “아이폰”이라서 airdrop이 됐기 때문이다. 그 앞전에 이미 두 세명의 사람들에게 부탁했지만 그가 유일한 “아이폰” 소유자였다. 그렇게 우리는 내 핸드폰 배터리를 3%로 남기고 아슬아슬하게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었고. 감사하게 사진을 받았다. 나는 “Henri”가 사진을 받은 후 그 한국인 봉사자의 폰에서 우리들의 사진을 빠르게 삭제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정말 야무진 친구였다. 그 성격마저 나랑 똑같아서 속으로 또 놀라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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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Henri의 폰으로 sunset을 배경으로 한 멋진 사진도 부탁해서 찍었다. 그 부탁을 하기 직전에 나는 필요시 Henri의 클론을 만들겠다는 핑계로 그의 머리카락 한 개를 잘라서 들고 있었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손에 꽉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진을 찍게 되어서 엉거주춤 한 손에는 Henri의 머리카락을 들고 다정하게 그와 입 맞추며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어준 한국 봉사자분께 Henri와 나의 결혼 <청첩장>을 꼭 보내겠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즐겁게 웃었다.



이 사진은 구도와 배경 모델들이 모두 완벽했다.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 중 베스트 커플 사진이었다. 나는 정말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고 사진을 찍고 나서 그 장면을 아주 오래전에 꿈에서 본 것이 기억이 났다.



누군가는 믿지 않겠지만 나는 자주 예지몽을 꾸곤 했었다. 어렸을 때는 그것으로 놀림을 받거나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잘 말하지 않았다. 어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믿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오해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나의 예지몽은 정말 꽤나 디테일하고 정확도가 높았다. 이곳에 와서 친한 친구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날, 그 친구가 엉엉 우는 꿈을 꾼 것도 그러하다.



예전에 꿈에서 이곳에 온 것이 확실했다. 사진을 찍은 것도 똑같았고 저 건물의 아치형도 기억이 났다. 너무 오래전이라 몇 가지 장면만 생각이 났다. 그때 함께 있었던 것이 Henri 였다니! 너무 애틋하고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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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우린 또 우연히“동민”을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 “동민”이 떠나고 나의 제안으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미친듯한 그림자 사진을 찍었다.



기쁨

미침

만남

키스



컨셉의 사진이었다.



Henri는 똑똑하게 한쪽 손으로 잡아서 그 그림자 사진을 찍는 것을 멋지게 성공했다. 역시 내 남자였다.



나는 그의 버스가 올 시간이 다가오자 오히려 담담해졌다. 이 장면을 꿈에서 본 것이 맞다면, 그 꿈은 정말 오래전에 꾼 꿈이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은 굉장히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결코 가벼운 만남이 될 수 없다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우리는 카르마를 담은 만남이며 반드시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있음을 나는 감지했다. 이것을 단 한 번도 나는 Henri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침내 버스가 왔다.




그는 짐을 싣다가 말고 갑자기 안내데스크로 가서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를 급하게 프린트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의 캐리어에 잘 붙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그는 원리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그대로 한 것이라고 한다. 나랑 성격이 너무 똑같았다. 완벽주의자에 원리원칙주의자. 규정을 지키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지만 피해주는 것은 원치 않는다. 창의적인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만 무례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우리만의 선이 있어서 그 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그와 나는 같은 영혼의 소유자가 맞았다.




나는 Henri에게 “seeya, see you soon!!”이라고 인사했고 그는 내게 가볍게 입 맞추고 정신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내 핸드폰은 배터리도 없고 용량이 없어서 길게 동영상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10초가 지나면 자동으로 종료가 됐다. (나는 이게 아직도 너무 속상하다. 끊기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은 영상을 많이 촬영할 수 있었을텐데. 그 이후 나는 용량이 많이 저장되는 핸드폰으로 바꿨다.)



그래서 계속 떠나는 그의 모습을 10초 간격으로 찍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에 올라타서 계산까지 한 그가 나를 불렀다.



“Mia! Come! come! come!!!!”



나는 당황해서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그는 박력있게 마지막 키스를 내게 날렸다. 그 순간 녹화되던 10초가 지나서 동영상은 꺼졌다. 그 이후 버스는 바로 떠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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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술이 터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푸하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맞춤을 하다가 입술이 터져버렸다. 이럴 수도 있구나. 나는 너무 웃겨서 웃으면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서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다시 그와 만날 것인지.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나는 Henri에게 거짓말 했다.



나는 숙소, 기차, 버스, 비행기 그 어떤 것도 예약하지 않았었다.

그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사실 그를 따라 벨기에에 가려고 했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계획은 틀어져 버렸고, 그 순간 이별을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워서 티케팅을 하다가는 그 앞에서 통곡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그를 떠나보내고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컨트롤 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미친 Mia” 니까.^_^




그 순간부터 내 머리는 명료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위기를 맞이하면 갑자기 머리 회전속도가 빨라진다. 그래서 그 순간 나는 우선 뇌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서 챙겨두었던 초콜릿을 먹었다. 그리고 종이에 빠르게 모든 계획들을 수립하고 변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내 계산이 오차가 없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Henri일 것이고 이 책을 내가 너에게 건네 줬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늘 변수의 연속이다. 그래서 재밌다.


만약 또 다른 변수들이 생겼다 해도, 장담컨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Henri일 것이고 내가 너에게 이 글을 줬을 것이다.







오늘은 2022년 8월 7일 일요일 밤이지만



당신이 이 글을 받는 날은

2023년 8월 2일 우리가 첫 키스 한 날일 것이다.

나는 우리의 1주년을 기념해서 <나의 다이어리>를 전달할 것이고

그때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혹,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 연락하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혹, 네가 지금처럼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무 마음 아프다T_T)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든 변수를 계산해 낼 것이고.

반드시 네가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의지>이고, 내<사랑 법>이다.


이것은 8일이라는 시간동안, 큰 우주를 경험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나의 <진심>이며.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잘 자라준 “또 다른 나”에게 보내는 <찬사>이고,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는 응원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맹세>다.

당신이 나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듯이,

나는 남아있는 생 동안 그대를 위해, 기도 할 것이다.

그대의 맑은 영혼이 다치지 않도록 온 맘 다해 지킬 것이다.

그대가 나를 멀리하고

그대가 나와 대화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한결같이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대를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그 증거가 이 책이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는 내 진심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완벽한 계획이라면 이 순간 우리는 함께 있을 것이고 나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내 책을 당신에게 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입 맞춰 달라.



만약 우리가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데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울지 말아 달라. 당신이 울면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당신이 떠난 그 버스정류장에서 홀로 노트에 이 모든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대여 울지 말라.

사랑한다는 표현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껴진다.

강한 나의 마음을 이 시대의 언어로 남길 방법이 없다.

그대가 나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 심정을 알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I'm who didn't know what love was,

thank you for showing me what love is. Henri.








2023년의 Henri에게_*

2022년의 Mia 가_*








<9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