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6 "똑같이 흐르는 시간과.."

똑같이 흐르는 시간과 오래된 교회에 남겨진 진심.

by 만년산마녀


Miracle #6

2022.08.05. 금요일

Taize 13일 차 : 똑같이 흐르는 시간과 오래된 교회에 남겨진 진심.










“Yes?”








그는 내가 무엇을 궁금해하거나 질문이 있다고 하면 늘 긍정의 언어인 “Yes”로 응대해 주었다. 대부분 “What?”또는 “Why?”라고 말하는데 그는 늘 부드럽게 “Yes?”라고 응대해 주었다. 그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의 그 “섬세한” 언어 선택이 좋았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가도, 나보다 어른스러운 그의 말투와 행동들은 나도 모르게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단 한 번도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의 “Yes?”라는 말이 참 좋았다. 그의 모국어는 프랑스어고 나의 모국어는 한국어기 때문에, 우리는 영어로 대화하긴 하지만 그 특유의 느낌이나 뉘앙스를 전달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특히나 나의 부족한 어휘력은 그에게 더 많은 혼란을 안겨줬으리라. 예를 들어 “hang on.”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오해가 있었다. 나는 이것을 "Wait a minute."의 의미로 배웠었고 실제로 만난 대만 친구가 늘 저 말을 썼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서 썼다. 근데 나중에 내가 "Wait a minute."이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가 “좋아요”표시를 누르는 것을 보고 알았다. “hang on.”이 우리나라 말로는 같은 뜻일지 몰라도, 유럽에서는 좀 더 차가운 표현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그 뒤로는 안 쓰려고 노력했다. 이 외에도 우리는 “miss you.”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의 말에 의하면 “missed you.”가 맞다는 것이다. 내가 너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니.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보고 싶다는 말을 영어로 표현할 때 대부분 “miss you”라고 했다. 혼란스러워서 찾아보았지만 번역기도 miss you가 말하는 그 순간까지도 보고 싶다는 의미 같았다. 뭔가 이것을 프랑스어로 하면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가 벨기에로 돌아가고 한참 후 보내준 귀여운 캐릭터토끼 동영상이었다. 거기에서도 토끼가 “I missed you”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나를 배려해서 그냥 “I miss you.”라고 말해주었다. 감동받는 순간이었다.






그는 다행히 감기가 나아졌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100%는 아닌 것 같았다. 98% 정도 회복한 것 같아 보였다.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보기로 했다.




어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아침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가 또 소리쳤다.




“What happen?”




내 오른발 발가락에 피가 났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생리혈이 묻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몰랐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했다.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건네준 소독스왑으로 잘 닦아 냈다. 그가 ‘무슨 일이야?’라고 다시 물어봤지만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미소 짓더니 나를 배려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생리 중에 외부 활동을 하는 것은 정말 신경 쓸게 너무 많아서, 여자에게 피곤한 일이다. 괜히 ‘생리증후군’이 생긴 것이 아니다. 나는 그래도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비교적 안 예민한 편이다. 다만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는 나보고 나중에 또 더 쓰라며 AlcoholSwap을 주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것도 있고, 그도 써야 될 것 같아서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입구가 벌어져 있는 나의 가방으로 (농구골대에 농구공을 넣듯이) 던져서 골인시켜 버렸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나는 웃어버렸다. 그리고 역시나 나는 그에게 졌다. 그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나도 기쁜 일이니까. 나는 매번 그가 나를 기다려주고 식판을 날라주는 것이 고마웠기 때문에 오늘 만큼은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는 기꺼이 내가 나를 수 있게 양보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위해서 다 먹은 쟁반을 치우는 것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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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무더위의 연속이었다. 유럽에는 최고 43도가 넘는 온도가 계속 됐다. 나는 정말 더운 것이 싫었다. 내 피부가 쉽게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람들은 다들 폭염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라고 했다. 산불이 났고, 사람 한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산티아고에 못 가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랐다. “이클립스라는 캔디 통”속에 전날 받은 초콜릿을 넣어두었는데 다 녹아서 꺼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는 일을 하러 갔고 나는 오늘에야 말로 남은 엽서들을 다 써버릴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려 6장의 엽서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전에 써두었던 엽서들도 주소를 정확하게 영어로 번역해서 넣는 작업을 했다. 엽서를 쓰는 와중에 어디선가 호른인지 트럼펫을 부는 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매주 일요일에 성스러운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연주하기 위해 연습 중인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열어놓고, 그 음악소리를 음미했다. 나는 음악소리가 감미로워서 녹화를 했다. 나중에 보니 내가 엽서 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녹음돼서 연주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렇게 모든 엽서를 다 쓰자 점심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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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이후 그는 나의 손목시계와 그의 손목시계를 똑같은 시간으로 맞추었다. 시간, 분, 초까지 모두 일치하게 맞추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그렇게 시간을 똑같이 맞춰본 것은. 그 의미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나는 단 한 번도 그 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또다시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Henri와의 추억이 담긴 그 시계를 또 잃어버린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대신 나는 다른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 손목시계는 영원히 우리의 사랑을 담고 전시 돼 있었다,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과 함께.




아마 지금은 서머타임이 끝났기 때문에 그의 손목시계와 나의 손목시계는 시간이 다르게 흐를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 시간을 그가 맞추어 주었고 난 그 시계를 만질 때면 다시 함께했던 그 순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너무 그가 보고 싶어질 때면, 가만히 시계를 손에 들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다시 그때 그 순간이 재생된다.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그립지만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되뇌면서 내 마음을 달랜다.






미친 사랑일지도 모른다.

미친 생각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미치지 않고 살기 힘들다.


나는 미친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늘에 구름이 많아졌다. 그는 내일 날씨가 좋을 것 같으니, 마을 C에 는 내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도 그것에 동의했다. 그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대신에 마을 A에 가기로 했다. 나는 그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는 이곳에 많이 와봤고 오전에 아침 달리기를 하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했다. 그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 준 것이 고마웠다. 대신 나는 샤워를 하고 싶었다. 무더위에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우리는 마을 A로 향했다.




가는 길에 우리는 틈틈이 서로의 나라 노래를 소개하면서 알게 된 우리의 “상징 노래”를 틀었다. 그것은 바로 가수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였다. 그는 노래의 첫 멜로디를 듣는 순간부터 따라 부르면서 좋아했다. 내가 가사를 해석해서 알려주자




“that’s My story!!!!!”




라고 해서 나를 웃게 했다. 어째서 이게 네 이야기냐라고 묻자. 그는 내 볼펜을 주워주기 전 나를 본 이야기를 했다. 올리브색 원피스를 입고, 모자를 쓰고 교회로 걸어가는 나를 보았다고 했다. 첫눈에 반한 그는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곧 나는 사라져서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다고 했다.




첫 입맞춤을 한 날 들려준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나의 영어실력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영어 수준은 5살 어린아이 수준이라 그가 가끔 음성으로 메시지를 남기면 못 알아들을 때도 있어서 여러 번 재생을 해야 했다. (T_T 창피한 이야기이다.) 아무튼 난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한 게 아닐까 봐 묻지 못했었다. 근데 그가 다시 정확하게 말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이후 나의 볼펜을 주워준 날, 나를 멀리서 보고는 다른 외국인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오, 그녀는 다른 외국인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있어!’하고 내게 다가온 것이라고 했다. 말을 걸기 전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가 용기를 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나는 시력도 나빠서 주변을 주의 깊게 볼 수 없었다. 안경을 끼면 코가 아파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프트렌즈를 빼다가 왼쪽 각막이 뜯어져서 실명할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기 때문에 나는 다시는 렌즈를 안 끼기로 결심했었다. (나는 이것을 그의 누나의 눈동자 이야기를 했을 때 나와 같은 이야기인 줄 알고 오해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그때 당시에 매일 악몽과 여러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웃고 다녔지만, 속으로는 늘 울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인 그 상황에서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기적이었다.






수십 년간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신의 응답.


이게 바로 ‘기적’이 아닐까?






같이 우리의 “샴푸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며 장난을 치다 보니 어느새 교회에 도착했다. 아주 오래된 교회였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글을 쓰기 위해서 검색해 보다가 알았다. 이 교회가 정말 오래된 곳이라는 것을. 무려 1000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유럽에는 오래된 건축양식들이 많아서 아름답다. 한국도 물론 오래된 건물들이 있지만 유럽처럼 많지는 않다. 1000년 전에 지어진 그 교회 안에서는 ‘세례’와 ‘성혼 성사’를 나누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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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곳에서 하트모양 철갑이 예쁘다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이 성스러운 공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곤소곤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예쁘다고 나를 찍었다. 하지만 내 사진들은 전부 이상했다. 머리도 덜 말랐고 얼굴도 화장을 안 해서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그는 예쁘다고 무조건 그 사진들을 달라고 했다. 나는 또 졌다. 그래서 그 못생기게 나온 내 사진들을 전부 줬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진 찍었다. ‘그가 성모마리아를 찍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너무 멋있어서 바로 내 마음을 빼앗겼다. (나는 그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두고두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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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꽃이 놓여있는 공간에 누군가가 남겨놓은 편지가 있었다. 이탈리어로 쓰여 있어서 나는 당연히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 그때 Henri가 소리 내서 읽기 시작하더니 본인도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아이폰 번역기를 켜서 일일이 입력하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그것은 굉장히 성가신 작업이었다. 일일이 이탈리어로 친 다음 다시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내게 들려준다는 것은. 나는 그것이 너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에 그를 말렸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끈기 있게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어로 까지 번역을 해서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솔직히 울 뻔했다. 너무 감동받아서.




이렇게까지 할 것은 아니었는데 그는 정말 자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울면 정말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번역기의 내용을 사진으로 잘 담아두었다. 그 내용은 진정한 사랑과 이별 그렇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편지였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이별했을지는 몰라도 영혼이 이어져있기 때문에 분명 다시 만났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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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31023_033340670.jpg 이 사진은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 이후 Henri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행동을 했는데, 바로 하트 모양의 나무판이 있었는데 그곳에 우리의 이름을 남긴 것이다. 그가 열심히 적어서 내게 그것을 보여준 순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Henri♡미아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의 염원들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연두색 유성펜으로 적은 우리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특히, 그는 내 이름을 손수 한국어로 적어주었다.




한국어!!!


무려 한국어로 말이다!!!




어제 침묵의 숲에서 내 이름 쓰는 것을 연습하더니 바로 외워버린 것이다. 슈퍼 스마트한 남자이자 슈퍼 스위트한 남자였다. 내 심장은 고장 나버린 정도로 뛰고 있었다. 그는 그 하트나무를 분홍색 꽃이 있는 화분 옆에 잘 세워두었다. 그가 앙큼한 짓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복숭아 뼈 근처에 적힌 내 이름을 보았다. 어제 장난의 흔적이었다. 그것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기념으로 내가만든 메모장에 Henri에게 편지를 써서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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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흐렸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운이 너무 좋아서 비는 한 방울도 맞지 않았다. 교회 밖에는 묘지가 있었다. 나는 Paris에 있을 때 비 오는 날 혼자 묘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대형 묘지는 꽤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유럽의 묘지는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하자, Henri는 유럽의 묘지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해줬다.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과 관련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묘지에 가면 평온함을 느끼곤 했다. 한국이랑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그 묘지 앞에서 나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사진을 찍고 우리는 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린 A마을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내서 그들에게 부탁했다. 우리의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느냐고. 저번에 Taize 표지판 앞에서처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었다. 내 모습은 사실 엉망이었지만, 그가 다정하게 내 이마에 입맞춰주며 나란히 서있는 사진이 나는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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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Oyak옆에 양을 보러 갔다. 그가 Oyak에서 일하면서 양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말 그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하하. 동물을 가둬 두는 것을 보면 내가 어린 시절 집에 갇혀서 지냈던 것이 생각나서 동물 학대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동물원을 간 적은 있지만 엄청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동물들은 평온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때 손님이 찾아왔다.



‘노을’이 찾아온 것이다. 그는 내 얼굴에 비친 노을을 보고 "Golden Circle"이라며 사진을 찍어줬다. 하지만 내 얼굴은 정말 이상하게 나왔다. 푸하하. 나는 그 사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추억으로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했다.




우리고 우리는 노래를 듣다가 이별 가사를 듣고 공감해서 서로 눈물이 고여버렸다. 울것 같은 표정의 나를 보고는 그는 애써 웃으며 내 두 팔을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오래된 옛날 프랑스 음악에 맞춰서 그럴 듯하게 무도회장 귀족들 흉내를 내다가 결국에는 미친듯이 춤췄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리가 핸드폰에 담고 있을 때 저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서로 일부러 말하고 있지 않지만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1분 1초가 너무 소중했다. 야속한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땅거미가 내리도록 우리는 음악을 들었다. 하염없이.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를 부르다가 가사 내용이 너무 슬픈 것을 알고 내가 울려고 하자, 그가 그 노래 그만 들으라며 중단시켰다. 그리고 밝은 노래를 틀었다. 우리의 “샴푸 노래” 하하. 그는 내가 슬퍼할까 봐 일부러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무척이나 슬프다는 것을.


몇 번 남지 않은 저녁을 먹으러 줄을 서고 있는데 음식을 배급해 주는 봉사를 하는 소년이 내게 소리쳤다.




“you are stunning!!!”




나는 stunning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서 처음엔 스탈린으로 들었다. 푸하하. 그래서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묻자. 그 소년이 다시 말했다.




“you are beautifull!!!”




나는 수줍었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얼른 다음 음식을 배급받았다. 음식을 다 받고 이동하면서 Henri에게 스탈린이 뭐냐고 물어봤다. 왜냐하면 저 소년의 말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Henri가 말했다.




“that’s pretty.”




나는 스펠링이 궁금했지만 그의 표정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나에게 “you are Stunning!”이라고 문자를 보내줘서 나는 비로소 스펠링을 익힐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Sterling인 줄 알고 있었다. 푸하하)






밤에 내린 비로 잔디가 다 젖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을 보러 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몸도 내 느낌에는 완전히 회복된 것 같지 않았다. 오늘 푹 쉬어야지 내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자러 갈 것을 권했다.




들어가기 전 별 보러 가는 길의 중간에서 우리는 담요를 같이 두르고 하늘을 잠시 같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의 비밀 이야기 중 하나인 ‘심장’ 이야기를 했다. 이 이야기는 나의 가족들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그는 서툰 내 영어를 알아들었고. 듣자마자 놀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스토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장 관련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 협심증인줄 알았지만 사실은 수술할 수 없는 희귀병이었다는 것. 엄청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격한 운동이나 달리기를 할 수 없다는 것. 만약 하게 된다면 나는 숨을 쉴 수 없는 심장어택이 올 것이라는 것. 나는 너와 달리고 싶지만 달릴 수 없어서 슬프다고 말하자 그는 러닝머신을 두고 같이 뛰자고 했다. 하하하. 그는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를 웃게 만드는 남자였다. 나는 눈물이 고였고 그는 나를 세게 안아주었다.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그의 심장은 정말 튼튼해서 어찌나 세게 뛰던지 내 볼을 그의 심장이 터치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심장을 강하게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를 방 입구까지 데려다준 그는, 부드럽게 입 맞추고 내가 들어가는 것을 지켜봐 주었다. 다른 룸메이트들이 자고 있었기 때문에 늘 그랬듯이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나는 내 침대로 들어갔는데 그가 총 3번이나




“Good night Mia~!”라고 문에다 대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수줍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기분은 정말 좋았다. 그래서 그에게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에게 남은 날은 이제 금, 토 이틀뿐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에게 나는 단지 타지에서 만난 <한 여름밤의 꿈> 같은 가벼운 관계일까? 한국에서는 사귀지 않으면 대부분 키스하지 않는데, 벨기에에서는 어떨까? 사랑한다는 말도 외국에서는 쉽게 하지 않는다고 영화에서 봤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일까? 어떻게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가 좋아졌을까? 나는 그전까지 제대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그에게 솔직하게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나는 잠이 들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답이 오지 않는 그를 향한 의문점이 깊어져 가면서 잠이 들었다.








“I suddenly want to eat a Chicken Burger from Korea KFC.”








정말 전부 다 바보 같은 문자들이었다.








<6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