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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Feb 18. 2022

다음엔 곰 두 마리


빵 (카스텔라, 식빵, 바게트, 단팥빵, 케이크, 마카롱……)

고구마, 감자, 단호박, 옥수수

과자, 탄산음료, 주스

과일(나는 딸기를 한 소쿠리씩 먹는 사람이었다)

튀김

찬 우유를 부어 먹던 바삭바삭한 시리얼

라면, 칼국수, 짜장면, 잡채

……     


어쩜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못 먹게 됐을까. 함께 가야 할 예민한 친구가 생겼다. 가족력이 없는데도 당뇨 진단을 받았다. 혈당 수치가 심각했다. 징조는 곳곳에 있었지만, 열심히 모른척했다가 비로소 그 존재를 확인하고 제대로 절망했다. 알다시피 나는 오직 먹는 것만으로 세상과 화해하던 사람이니까.      


마치 알았던 것처럼 지난주 가족여행을 다니는 동안 차 안에서 젤리와 콜라를 맘껏 먹었다. 카페에 가면 추운 날에도 스무디를 마다하지 않았고, 순두부 아이스크림과 유명하다는 젤라또를 종류별로 시켰다가 가족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먹지 않는 것까지 모두 먹었다. 그래도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기엔 첨가하지 못한 메뉴가 너무 많다.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마켓에 갔다. 몇 바퀴 돌아도 살 게 별로 없었다. 결국 무와 양배추, 두부, 곤약 정도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신발을 벗고, 중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드러운 온기가 나를 감쌌다. 블라인드를 반쯤 내린 거실에는 오후의 빛이 머물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인 길리안 초콜릿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발렌타인데이에 가족들이 먹다 남은 것이었다. 스윽 밀어놓고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엄마, 갖고 다니다가 아주 힘들 때 지렁이 한 마리라도 먹어요. 다음엔 곰 두 마리 채워줄게…….”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둘째가 지우개 반만 한 플라스틱 통을 내밀었다. 꿈틀이(지렁이 젤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히히히 웃으며 받고 컴퓨터로 고개를 돌렸다. 

히잉,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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