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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Feb 25. 2022

넷이 함께



  가족과 함께 속초에 갔다. 미세먼지가 조금 있었지만 맑은 날이었다. 2월의 햇살은 1월과 달랐다. 좀 더 환하고 따사로웠다. 햇빛이 달라진 걸 느낀 순간, 둥실 마음이 1센티미터쯤 떠올랐다. 헐벗은 회갈색 나무와 침엽수가 있는 산과 들의 모습은 그대로였고 먼 산꼭대기엔 눈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서 조용히 꿈틀대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작고 여린 것들이 먼저 땅을 뚫고 나오고 빈 나뭇가지 끝으로 꽃이나 이파리가 돋아날 터였다. 공기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추웠다. 딸들은 내 기준에서 얇은 옷을 입고 왔다. 더 두꺼운 옷을 가져오지 그랬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성화를 부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딸들은 그런 옷을 입고 짙푸른 늦겨울 바닷가를 5분 정도 거닐다가 아빠에게 키를 받아 후다닥 차로 달려갔다. 미리 찾아둔 카페로 간 우리는 창가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각자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유난히 푸른 바다를 흘깃거리며 큰 사이즈의 스무디를 쪽쪽 빨아먹고 모양도 색도 다른 조각 케이크를 끼적거렸다. 그게 마지막 스무디와 케이크인 줄도 모르고.


  저녁은 회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먹었다. 근처의 브루어리에서 산 수제 맥주도 마셨다. 왕년에 술이 셌던 남편은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소파에서 잠들었다가 먹은 걸 다 치운 후에 일어났다. 

  “후식으로 딸기 씻어줄까?”

  얼굴에 붉은 기가 사라진 남편이 물었다. 

  “좋지.”

  딸기를 좋아하는 나는 항상 두 박스를 사서 가족들이 몇 개씩 먹고 남은 딸기를 모두 먹곤 했다. 그날도 자러 들어갈 때까지 기쁜 마음으로 딸기를 먹었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 가족여행은 항상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간다. 모두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친구들과의 여행이 더 좋을 나이니까. 딸들에게 연인이나 가족이 생긴다면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고 트러블이 있어도 매 순간이 아쉬울 정도로 좋다. 절대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 녀석들이라 몰래 찍은 스냅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면 각자 찍은 다른 사진들이 주르륵 올라왔다. 뒷모습, 옆모습, 다른 사람 사이로 얼굴을 내민 모습 속에 마스크를 쓰고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속초에서 새로 생긴 대관람차를 보고, 서퍼들이 없는 서피 비치를 추워서 종종거리며 걷고, 실내 취식이 안 돼서 테이크 아웃한 다음 낯선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먹었던 맛있는 홍게 살 샌드위치, 어떤 카페에서 먹었던 생크림과 팥 앙금이 잔뜩 든 연탄 모양의 빵, 몇 년 만에 일찍 잠들었다가 숙소에서 얼결에 본 일출, 그 외에도 별 거 아닌 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예민하고 과묵한 가족들을 어르고 달래(? 사실은 내가 제일 신경질적이다)가며 함께 자연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추억을 만드는 게 좋다. 피로와 빨랫감을 달고 오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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