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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Aug 22. 2022

여름, 하루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번쩍번쩍 방 안이 환해지도록 번개가 치는 장면이었다. 곧이어 천둥이 울렸다. 그중 몇 개는 소리가 커서 ‘아이고 깜짝이야!’하며 몸을 일으킬 정도였다. 열어둔 창문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아침이 되었고, 다행히 주변에 비나 번개로 인해 큰 피해가 있다는 소식 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주변인이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밀접 접촉자가 되어 코로나 검사를 하고 들어오는 딸에게 물었다.

  “음성이래.”

  “다행이다. 밖에 비 와?”

  “비…… 와.”

  딸이 대답했다.

  “비 안 온다고?”

  “많이 온다고.”

  “응.”


  딸이 제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없었다. 빗속을 좀 걷다가 버스정류장으로 막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에는 물뿌리개로 물을 흩뿌리는 것처럼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우산을 끄고 버스에 오르는 동안 맞은 빗방울을 털어내며 “어휴……” 하고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낯설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아주 다르지 않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최근 휴가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크고나서 휴가철에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북적이고 비싸고 무엇보다 너무 더우면 돌아다니는 게 힘이 들었다. 폭염이 지나가고 휴가의 열기가 가라앉으면 어디든 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여행은 어떤 걸까?

  관광지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고층 빌딩 숲이나 화려한 야경을 보고 황홀해한 적도 없다. 맛있는 음식은 이제 당뇨 때문에 함부로 먹을 수도 없다. 

  여행을 간다면…….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천천히 걷다가 의자에 앉아 접어둔 귀퉁이를 펼치고 가만히 책을 읽고 싶다. 도시여도 똑같이 느리게 걷다가 카페에 앉아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차를 마시며 가끔 생각나면 책을 읽고 싶다. 숙소나 그 근처에 물이 있다면 구명조끼나 튜브(수영을 못한다)에 의지해 물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커다랗고 보송보송한 타월을 뒤집어쓴 채 클라이맥스가 없는 잔잔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


 “그건 여행이 아니고 휴양인데.”

  언젠가 그런 나의 바람을 들은 남편이 말했다.


  다음 정거장은 지하철역이라는 안내방송을 듣고 하자벨을 눌렀다. 버스에 탄 지 40분 만이었다. 돌아올 때는 지하철을 탔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상가 1층에는 앞뒤로 커피숍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앞쪽은 프랜차이즈 카페이고 뒤쪽은 아주 작은 개인 카페이다. 개인 카페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항상 잘 버텨내기를 바랐지만 한 번도 들어간 적은 없었다. 혼자 앉아 있기에 너무 작은 곳은 좀 눈치가 보일 것 같아서였다. 우산을 접어 문 앞의 우산꽂이에 두고 유리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보리색의 담담한 공간을 채우고 있던 커피 향이 조용히 다가왔다. 예상만큼 작은 곳이었으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디귿자로 꺾인 공간이 더 있었다. 주문한 드립 커피는 진했고 뒷맛이 깔끔했다.

  “여기, 생긴 지 얼마나 됐어요?”

  카페를 나오기 전 내가 물었다.

  “10년이요.”

  주인이 대답했다.

  “네? 10년이라고요?”

  화들짝 놀라며 내가 되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속으로만 응원했다니 너무 했다 싶었다.

  “아니요. 2015년에 시작했고, 7년 됐어요.”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이며 주인이 미소 지었다.

  한 3년 정도 된 줄 알았는데……, 요즘은 누가 시간을 뭉텅 잘라내고 대충 이어 붙여 놓은 것만 같다.


  그건 그렇고

  맙소사, 이제 귀도 안 들리나 봐.


  

(전에 써두고 위협적인 폭우로인해 이제 올립니다. 더 이상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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