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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연 Apr 05. 2023

잠깐


  쌀쌀한 공기와 쌩한 바람이 제동을 걸었지만 꽃들은 동시에 큐 사인을 받은 것처럼 서둘러 피어났다. 봄이 반가운 친구처럼 달려와 와락 내 어깨를 감쌌다. 널뛰는 기온만큼 옷도 천차만별이다. 나도 한때 흰 셔츠와 청 스커트, 얇은 카디건 하나로 이 계절을 통과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림없다. 더우면 벗어 들고 다니더라도 두툼하게 입고 가방 속에 스카프까지 야무지게 챙겨 넣어야 한다.      


  이토록 화사한 봄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의기투합한 친구와 만나 전시회를 보고, 그 근처를 걸었다. 커피를 마신 후에도 멋진 카페가 있으면 기웃거렸고 봄옷과 가방, 액세서리도 구경했다. 딱 한 번 정말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는데, 고심 끝에 두고 왔다. 마음을 비우는 게 쉬워진 건지, 건망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물건에 대한 잔상도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일 년 간 당뇨 때문에 식습관을 철저히 바꿨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적응해서 괜찮다. 그전까지 나는 식사를 하고 난 후 케이크, 마카롱, 아이스크림, 과자, 떡, 과일 등등을 촘촘히 채워 넣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탄수화물은 감탄하며 눈을 깜박이는 동안 나를 천국에 데려다 놓곤 했다. 요즘은 심심하고 거친 식사가 끝이다. 그 후엔 나른한 몸을 일으켜 걸어야 한다. 그래도 살은 빠졌으니

  “좋지?”

  하고 물으면

  “허전하다니까 그러네.”

  가 답이다. 살 빠져서 예쁠 나이는 오래전에 지났다.      


  먹는 것에 따라 나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긴 하다. 군더더기가 걷히는 느낌.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었고,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가졌다. 하지만 그런 게 잔재미였다는 걸 나는 안다. 아직 그걸 대체할 만한 걸 찾지 못해서 마음이 휑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싹이 돋아난 가지가 꺾여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가져와 빈 병에 꽃처럼 꽂아두었다.      

  잠깐,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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