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장소에 30분 일찍 도착했다. 날이 좋아서 좀 걸을까 하다가, 늘 지나치며 보기만 했던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라테를 주문하고 빈자리에 앉았다. 싱그러운 초록 잎으로 덮인 가로수가 어둑한 통유리 너머에서 옅은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크로스백을 메고 쇼핑백을 몇 개씩 겹쳐 든 외국인들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끝나기만 하면 어디든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딱 요즘 같은 온도와 습도의 이국적인 장소에 있었다. 떠들썩한 축제나 꼭 가봐야 할 명소가 아닌 평범하지만 색다른 곳에서 카페에 앉아 커피나 차를 마셨다.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음식을 먹는 타인의 일상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흔적 없이 즐기다 오고 싶었다. 그러니까 포인트는 낯선 곳, 나의 터전을 벗어나 멀리멀리.
막상 문이 열리고 모두가 앞 다투어 여행을 다니는 지금, 나는 이제야 겨우 새장 속의 생활에 적응한 부엉이처럼 눈만 끔벅이며 익숙한 것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있다. 하지만 섣부른 반성은 금물. 언젠가 가겠지. 난 좀 느리니까. 내 속도대로 천천히.
거품이 촘촘하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5분쯤 더 있다가 일어나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