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1
전생
첫 만남
신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인간’이었다.
숫자가 작았을 때는 그들이 말을 잘 듣든 안 듣든, 하여간 관리는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체수가 너무 늘어나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처음 이 땅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다. 신분보다는 직업의 차이가 있었다고 보는 게 옳겠다. 기술자, 의사, 비행사, 식물학자, 기록관, 군인, 건축가 등등.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있었다. 전문성이 없는 이들은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역할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만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되는 노동이 지속된다면?
노동자 계층은 지쳤다.
‘내가 이렇게 살려고 고향을 떠났던가?’
고향에서도 하층민이었던 그들은 새 세계에서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노동 끝에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고 여겼었다. 아니었다. 피로와 분노가 만년 어치 꽉꽉 쌓여 있었다. 그들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것이 인간이 탄생하게 된 연원이다. 노동자들이 거부한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졌다.
이 땅에 의식 있는 존재가 그들뿐이었을 때는 자신들을 ‘신’이라 하지는 않았다. 인간을 창조한 후에야 스스로를 ‘신’이라 칭했다. 창조자인 그들과 피조물인 인간들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인간세계에 견학(?) 보내기도 했다. 방문이라고 해 두자.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은 신이 존재함을 인간들에게 재차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아……, 인간들은 수명도 짧은데 툭하면 잊어버린다. 대대손손 신을 경배해야 하는데, 이 인간들은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신의 존재를 잊었다. 머리가 나쁜가? 그럴 리는 없다.
신들은 인간을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창조했다. 두뇌 수준도 땅 위의 어떤 동물보다 월등하게 만들어 놓았다. 인간들이 신을 잊는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교만 때문이 분명했다.
인간세계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두 번째 이유가 그것이었다.
‘인간들의 교만’
신을 잊은 인간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막 산다. 막 산다는 건, 예의도 없고, 문명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야만적으로 산다는 의미이다.
늘 발정기라 출산율은 또 어찌나 높은지. 허나 그 부분은 신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노동력 보충을 위해 유전자를 그렇게 조작했다. 계산 착오였다. 이렇게나 빨리, 이렇게나 많이 번성하게 될 줄 몰랐다.
하여간, 인간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해는 한다. 땅 위의 어떤 동물이 인간의 지능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인간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게 느껴질 만하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존재(신)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겸손해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그들은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 번째 이유는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가르침은 신들의 배려라 할 수 있다. 신들의 의중을 알아야 눈치껏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두엽’의 용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전두엽의 용량이 커져야 생각이란 것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들의 유전자를 투입했다. 덕분에 인간들은 수준 높은 이성을 갖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눈에 인간은 여전히 지적 장애아처럼 보였다. 괜찮다. 어차피
‘허드렛일이나 시키려고 창조한 존재들이니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불편한 신족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유전자가 인간들 안에 있으니, 엄밀히 말하면 자식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신족들은 인간이 생각을 동물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들은 인간이 좀 더 우아하게 발전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인간들이 문명사회를 일구도록 도우려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 교육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들을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종교라는 문화가 성립해야, 신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을 숭배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인간이 우리를 숭배해야한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세라이아(만삼천년 후의 안이서)는 부모 세대들에게 위와 같은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인간들은 세심하게 잘 다루어야 해. 잘해주면 오만해지고, 신경을 덜 써주면 원망으로 저주를 퍼 붓는 존재들이야. 변덕은 또 어찌나 심한지 하루에 마음이 만 번도 더 바뀔걸? 다루기 쉽지 않아. 그래도 어쩌겠니? 우리가 만들었으니 책임은 져야지.”
그리고 부모 세대는 세라이아 일행을 우주선에 태웠다. 물론 그들은 육체를 벗어난 존재들이라 기계의 힘없이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우리를 처음 보았을 때가 우리가 우주선에서 내릴 때였거든. 그 때의 충격과 경이로움이 그들 무의식에 깊게 각인 돼 있어. 그래서 신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다.’고 아예 프로그램이 된 거야. 때문에 너희도 신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하늘에서 내려와야 해. 아마 인간들 눈에 너희는 하늘에서 내려 온 알을 깨고 태어나는 존재처럼 보일 거야. 얼마나 식겁할까? 너희를 본 인간들 말이야.”
드디어 인간들의 세계로 간다! 다른 일행은 어떤지 몰라도 세라이아는 이날을 내심 기다려왔었다. 물질세계이기 때문에 물체가 한 번 형성되면 바꾸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세라이아가 존재하는 세계는 생각만으로 무엇이든 만들고, 허물고, 변화시킬 수 있다.
‘고정된다는 건 뭘까?’
‘신들은 인간을 왜 그렇게 하찮게 여길까?’
‘하찮게 여기면서도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뭐지?’
‘하늘에서 내려가야 한다고 했는데, ’하늘‘이라는 게 뭘까?’
어느 새 물질세계의 상공에 도착했다. 물질세계에 도착하자 에너지로 이루어졌던 우주선이 단단한 재질로 뭉쳐졌다. 세라이라는 그 신기함에 압도돼 이성이 마비됐다.
너무 흥분이 됐다.
‘흥분’된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사실 당시 본인은 그 느낌이 ‘흥분’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의 심장은 늘 평온하기만 했다. 신들은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뭔가 찡한 울림이 있다.
‘이거 뭐지?’
하지만, 내면의 생소한 느낌에 집중할 새는 없었다.
“인간의 눈은 우리 같은 에너지 몸을 볼 수 없어. 너희가 그들의 눈에 보이려면 몸에 에너지를 최대한 모아야 해. 그럼, 인간들처럼 물질화 될 거야.”
세라이라는 배운 대로 에너지를 모았다.
같은 시간, 여느 때처럼 서루(후의 나다니엘)는 동굴 안에 있었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동생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를 벽에 그리고 있었다. 그리기를 멈추고 그림을 바라보던 서루는 낙담했다. 엄마에 비해 아기가 너무 크게 그려졌다. 아기를 다시 그릴까, 엄마를 다시 그릴까 생각하던 중 입구에서 들어오던 빛이 사라졌다.
서루는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비가 오나?’ 날씨를 확인하려고 일어나 동굴을 나섰다.
날씨는 더 없이 화창했다. 다만, 허허벌판에 거대한 원형 그림자가 동굴 입구까지 걸쳐서 드리워있었다.
서루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입도 같이 벌어졌다.
하늘에, 하, 하늘에 서루의 마을만큼이나 큰 돌덩이가 떠 있다!
돌덩이는 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벌판에 내려앉았다. 서루의 눈과 입은 여전히 벌어진 채였다.
돌덩이에서 네모난 공간이 갑자기 생기더니 한 사람이 그 안에서 나왔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존재였다. 서루는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이끌려 다가갔다.
그 존재는 모든 것을 생전 처음 본 사람마냥 사방을 둘러보고, 풀을 쓰다듬고, 꽃에 눈을 들이대고, 여기저기 코를 박고 냄새를 맡으며, 드러누웠다, 일어나 앉았다, 다시 드러누웠다, 깔깔 거리고 웃다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를 보고 서루는 생각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가 보다.’
서루와 세라이아는 나무줄기 하나 정도의 거리만 두고 마주보고 섰다.
서루, ‘인간이야? 아닌가봐. 어떻게 피부가 이리 하얗고 곱지?’
세라이아, ‘인간이야? 어쩜 이렇게 맑은 눈을 갖고 있지?’
둘은 각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상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둘 다 이성은 바람에 날려 보냈는지, 호기심이 시키는 대로 무작정 따르고 있었다.
매끈한 피부를 확인한 서루는 손을 내리고 세라이아 뒤에 있는 둥근 바위(?)를 바라보았다.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알처럼 생겼다. 그럼, 이 남자는 알에서 태어난 건가?
서루의 뺨에서 손을 뗀 세라이아도 자신의 팔을 만졌다. 촉감이 같았다. 촉감? 세라이아는 환하게 웃었다. 피부로 무언가를 느끼는 거, 처음이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세라이아는 가슴이 벅차올라 말했다.
“너, 사람이구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세라이라를 보며 서루가 말했다.
“넌, 사람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