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들판에 내려앉았던 거대한 알은 몇 날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루를 비롯해 동네 사람들은 돌아가며 감시를 했다. 규칙을 정해서 감시를 한 건 아니다. 다들 호기심에 시간만 나면 이곳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은 그 웅장함에 압도돼 나무 뒤든 바위 뒤든 자기 몸을 숨기고 몰래 감시했는데, 서루는 겁도 없이 바로 앞까지 가서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 알에는 안이 훤히 보이는 구역이 있었는데, 잠시 잠깐 사이 그 구역이 없어졌다. 이제는 밖에서 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서루는 계속 알에 눈을 들이대고 안을 보려고 애썼다. 갑자기 나타났던 그 소년이 보고 싶었다.
‘너는 뭐야? 이 큰 알에서 태어난 거야? 사람이야? 새야? 뱀이야? 이 큰 알을 낳은 새는 어디에 있어?’
묻고 싶은 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물어볼 새도 없이 소년은 알 속으로 가 버렸다. 그가 직접 걸어 들어간 건 아니었다. 알 안에서 소년과 비슷한 외형의 존재들이 몇 명 나와 소년을 끌고 들어가 버렸다.
그들은 피부가 지나치게 희고 맑았다. 몸에 걸친 것도 피부처럼 흰색이었다. 서루와 같은 존재는 아닌 게 분명했다.
서루는 알의 표면을 만져 보았다. 진동하고 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녀는 조심스럽게 알에 귀를 댔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였다. ‘어?’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뭐지?’ 뭐랄까, 마음에 젖어 드는, 황홀하게? 감미롭게? 차분하게? 신비롭게?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는 서루의 마음이 안달을 냈다. 그 소리는……,
“음악 인가봐. 그들의 음악!”
서루는 언제 왔는지 모를 족장 할배한테 속삭였다. 족장 할배의 얼굴에 퍼진 주름도 놀라움에 하나하나 씰룩거리는 중이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음악은 그들의 귀로 듣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음악을 들은 마을 사람들도 이끌리듯 알 앞에 모여들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 두려울 듯도 한데, 천상의 화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전함을 느끼게 했다.
서루와 족장 할배도 뒤로 물러나 사람들의 무리 앞에 섰다. 마치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는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은 어떤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그들에게 나긋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음악이 멈췄을 때, ‘징~’소리를 내며 알 하단에서 입구가 열렸다. 그리고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개의 계절이 세 번 지나갈 때까지도 그들은 인간과 함께 했다.
그들은 친절했다. 농사짓는 법, 수수의 껍질을 벗기는 법, 식물 줄기를 연하게 해 얇게 가르고 서로 엮어 천을 만드는 법 같은, 인간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술들을 가르쳐 주었다. 동물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는 사냥을 하러 나갈 일이 없어졌다.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신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왜 우리에게 이 모든 걸 가르쳐 주는 겁니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게 신의 일이니까.”
그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했다.
“신이 무엇인가요?”
“네가 우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아름답고, 깨끗하고, 세상 모든 일을 알고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
“너희와는 다른 게 느껴져?”
“우리는……. 네.”
“너희는 너무 약하기 때문에 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어. 그럴 때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면 우리는 너희를 도울 거야. 하지만, 아무나 돕지는 않아. 신을 미워하는 인간에게까지 도움을 주지는 않겠지. 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간은 우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니?”
‘달’이라는 여신에게 종종 그들의 세계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족장할배는 부족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원래 신은 저~ 하늘에 사는 분들이야. 땅에서 사는 우리가 힘든 모습을 보고 도와주려고 일부러 내려 오신거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와주시기로 한 거지. 얼마나 감사하냐? 그런데 신의 사랑을 그냥 받아쳐먹기만 하겠다면 그건 썩을 인간인 거지. 도둑놈인거야. 우리를 도와주시는 신에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우리는 당연히 그분들을 숭배하고 따라야 하는 거야. 신의 말씀을 거역해서는 절대 안 돼.”
거기까지 말한 족장할배는 자기가 한 말을 깊게 생각하느라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짓더니 남은 말을 이었다.
“신의 말씀을 거역하면 그 분들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다시 가져갈 지도 몰라. 그럼 우리는 배고프던 시절로 돌아가겠지.”
사람들은 신을 섬기고 풍요롭게 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서루는……,
멀리서 달과 함께 걸어오는 세라이아를 보고 있었다.
세라이아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서루 자신과 같이 천진한 아이로 느껴졌었다. 처음 보았지만 영원토록 가장 친한 존재임이 분명한 아이. 어색함도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무언가 숨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그런 사이인 게 분명했다. 서루는 그렇게 느꼈었다.
그런데, 거대한 알 안에서 다른 일행과 함께 나타난 세라이아는, 너무 멀었다. 그들은 감히 다가갈 수도 없고,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짧은 순간이나마 세라이아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감정을 그들이 알게 되면 혹독한 눈초리가 서루에게 닥칠 것만 같았다.
세라이아는 그들에게 속한 존재였다.
세라이아가 혼자 있을 모습을 보는 건 좋았다. 좋은 것을 넘어서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는데, 처음에는 죽을병에 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태 살아있는 걸 보면 병은 아닌가 보다. 세라이아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도 반드시 서루에게 시선을 주었는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세라이라는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이것도 죽을병 같기는 한데)그 환한 얼굴을 보면 서루의 얼굴 안쪽에서부터 열기가 확 퍼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들 특히 달과 함께 있는 세라이아를 볼 때는 [다름]이 너무 확연하게 느껴져 자신이 초라해졌다. 슬프고 화가 나고 세라이아가 미워졌다. 이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는데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서루? 거기에서 뭐해?”
때문에 세라이아가 아는 척을 해도, 그 아는 척마저 감당할 수 없어 도망칠 수밖에 없다. 서루는 대답도 못하고 그들에게서 냅다 도망쳤다. 자신의 등에 꽂히는 두 사람 아니, 두 신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