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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이아

인간에 대한 신들의 견해 차이

by 안이서

“인간들에게 마음 주지 마. 인간은 우리가 가르치고 다스리는 존재이지, 서로 소통하는 존재가 아니야.”

달이 말했다. 달은 지금이 세 번째 임무였다. 동료 모두 그녀의 말을 따르지만, 세라이아는 그녀의 말 중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간은 문명이 늦었다 뿐이지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다.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그들의 영혼 안에 성령이 있다는 말이다. 성령이 있다는 것은 인간도 양심을 따르는 삶을 키우면 신성이 발현된다는 의미가 된다.

스스로 신족이라고 하는 자신들과 인간들의 본질은 같다고 세라이아는 생각했다.

신성을 좀 더 잘 드러낼 뿐,

‘우리도 신은 아니야.’

세라이아의 눈에 인간을 하등한 존재로 보는 달은 오만해 보였다. 그런 그녀와 소통할 때마다 기분이 어두워져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달은 세라이아를 혼자 두지 않으려는 듯 늘 옆에 있었다.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세라이아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은밀한 무언가를.


육체……. 육체를 취한 후 세라이아는 처음 겪는 경험들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배고픔은 그의 몸과 마음에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음식으로 배고픔을 채우면 불쾌함은 사라진다. 음식이 입 안에서 맛을 풍기면 삶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그 느낌에 취해 너무 많이 먹으면 역으로 기분이 나빠진다. ‘왜지?’

음식이 다 소화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배가 아프다. 안에서 뭔가가 나오려고 해 마음이 급해진다. 불편하다. 변을 밖으로 빼내면 홀가분하다. 대변이 눈에 보이면 불쾌하다. 맛있는 음식의 향이 소화 후 밖으로 나오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아침이면 남성성이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깬다. 이유를 모르니 당황스러울 밖에.

손으로 부드러움, 거침, 딱딱함, 매끈함을 느낀다.

눈으로 들어온 어떤 것은 아름답고 동시에 황홀함을 느끼기도 한다. 흉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오감을 통해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판단한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판단은 본성에서 나오는 게 맞다.

이 모든 경험이 어찌나 신기한지! 세라이아는 풍요로운 경험에 매 번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달은 인간들의 경험을 이미 세 번이나 했다. 그녀는 세라이아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감각을 요구하는 기색이 흘렀다. 다른 신족에게는 보내지 않는 눈빛이다. 불편했다.

그때 세라이아는 서루의 시선을 느꼈다. 이상도 하지? 세라이아는 서루가 근처에 있으면 반드시 그녀의 존재를 느꼈다. 그래서 그곳을 보면 ‘어쩌지?’라는 표정으로 세라이아를 바라보는 서루가 있었다. 그녀를 보면 세라이아의 얼굴엔 일단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어쩌지?’라는 표정은 상당히 복잡 미묘해, 그 표정이 눈에 들어오면 세라이아의 미소는 같은 ‘어쩌지?’ 표정으로 바뀌고 만다.

‘왜 그렇게 아픈 눈이지? 무엇이 너를 슬프게 하는 거지? 그런 눈으로 왜 나를 바라보는 거지?’

“서루? 거기서 뭐해?”

역시나 그날도 서루는 세라이아의 시선을 피해 어디론가 달려갔다. 세라이아는 그녀의 뒤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달이 그의 팔을 잡았다.

“인간에게 마음 주지 말라는 말 그 새 잊은 거야?”

세라이아는 달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치며 물었다.

“왜 마음을 주지 말라는 거야? 너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어? 나는 인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예쁘기만 한데?”

세라이아의 말에 달은 피식 웃었다.

“인간들도 개를 사랑하지. 소도 사랑해. 그렇다고 인간이 개는 아니잖아? 지켜야 할 선이 있어. 우리는 신이야. 우리도 인간을 사랑하지. 거기까지야.”

잠시 말을 멈춘 달은 진심으로 세라이아를 걱정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누가 들을까봐 겁난다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저 작은 여자아이만 보면 설레어 한다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우리에게 인간은 개나 소와 같은 존재야. 제발, 신의 존엄을 지켜.”

그 말에 세라이아의 가슴에서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야. 그 안에 엄연히 신성이 존재한다고.”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지. 난 우리 선조들의 최대 실수라고 봐. 그 신성 때문에 언젠가는 인간이 우리 자리를 넘보려고 할 거야. 난 그 꼴을 죽어도 못 봐. 네가 저 여자애를 너와 동급으로 여기는 꼴도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우리 선조가 어떤 의도로 인간을 만들었든, 인간 안의 신성은 우리 의도와는 상관없는 거야. 오직 완전하신 분의 뜻인 거지.”

달은 세라이아의 말을 하건 인정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표정이었다. 세라이아는 한숨을 쉬었다.

“난 네가 인간들에게 ‘우리는 신이고, 인간들은 신을 경배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져.”

“지금 네가 한 그 말에 내 몸서리가 쳐진다! 우리가 인간을 창조했어. 인간 안에 신성이 존재하게 된 것도 우리의 유전자를 주었기 때문이고. 우리는 엄연히 인간에게 신이야. 네가 우리의 존엄을 더럽히는 행동을 하면! 난 선조들에게 널 회부하라고 요청할 수밖에. 그럼 인간계에서 네 이름이 신으로 불릴 일은 결코 없겠지.”

달은 더 이상의 논쟁은 피하려고 자신의 거처로 갔다.


에너지계에 있을 때는 음과 양의 에너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갈등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물질계로 내려오니 음과 양, 선과 악, 남자와 여자 등등 극과 극이 분리돼 매 순간 갈등의 씨앗이 생겼다.

둘의 생각은 ‘인간’이라는 출발점에서 정반대로 달려갔다. 교차되는 부분도 없다. 서로 만날 일은 영원히 없을 지도 모르겠다.

혼자 남은 세라이아는 서루가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늘 저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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