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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쫄보 Oct 14. 2022

어른의 말소리

너는 가장 빛나는 아이야

캐나다 할머니의 말소리


우중충한 날이다.

밖에 나가기 딱 좋은 날 중 하나. 캐나다에 오니 비만안 오면 괜찮은 날씨가 아닐까 싶다.


이런 날은 야외 좌석이 있는 카페에서 고독한 분위기를 즐겨보고자 한다. 이미 나의 지도 어플에는 수많은 맛집과 카페들이 여러 색깔로 저장되어 있다. 이것 또한 타지에서 살아남는 소소한 나만의 방법이다.


지난날 혼자 동네 산책을 하다 빵 냄새에 이끌려 저장해두었던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이름은 핫초코이지만 미지근한 온도의 초코 음료 한 잔과 맛있는 냄새의 주인공인듯한 시나몬롤 한 조각을 데워서 밖으로 나갔다. 비록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앉아보았다. 무슨 용기가 필요한가 싶을 수 있겠지만 쫄보에겐 이 또한 처음이라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야외 좌석 카페에서 처음으로 혼자 자리 차지해보기' 임무 완수.


한 명이 4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으니 애석하게도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당당히 에어팟을 귀에 끼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키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쳐 들었다.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2가지 옵션. 그렇게 책장을 몇 페이지 넘겼을까. 조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어린이 2명과 어른 2명이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에어팟을 타고 넘어오는 소리에 시선이 책에서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손녀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찾아온 듯 싶었다. 계속되는 소리에 에어팟을 빼자 조잘거리는 소리가 말이 되었고 그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할머니는 손녀들에게 이번 주말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아빠의 생일 축하 겸 추수감사절 기념으로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예정이란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음식들은 정말 푸짐하고 맛있을 것만 같은 느낌. 할머니의 이 멋들어진 계획에도 아이들은 별 관심이없어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계속 일어나려 했고 앞에 있는 물잔으로 장난을 치곤 했다. 그 부산스러움은 자신들이 하나씩 고른 베이글과 스콘이 나오자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드디어 할머니의 이야기에 두 명 모두 귀를 기울였다. 아니, 낯선이인 나까지하면 세명인가.


할머니가 친구들과의 생활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두아이들 모두 제일 친한 친구 이야기를 했고 (아무래도 남자인 친구인가 보다) 할머니는 물었다.

"그 친구는 좋은 친구인 것 같니?"

그에 대한 대답으로 아이는 "저랑 제일 친한 친구니깐 좋은 친구죠!"


그리고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

"맞아, 넌 내가 아는 5살 중에 가장 멋진 아이야. 그러니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 것은 당연하단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빵을 먹던 또 다른 아이가 재촉했다.

"할머니, 그럼 저는요?"

할머니는 몇 초의 머뭇거림 없이 스윗한 목소리로 답했다.

"You are the most colorful three years old I know." (이 부분은 영어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보다. 건너편 할머니랑 눈이 마주쳐 버렸다. 피하기엔 늦어 그냥 웃었다. 그 웃음에 대한 답변으로 또 다른 웃음과 엄지척을 보답받았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귀엽기만 했던 아이들은 정말 할머니의 말처럼 빛나고 귀해 보였다. 한국에서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어른들의 말소리를 떠올려본다. 그리곤 한참을 생각했다. 갑자기 오글거림이 느껴졌다면 우리네 식탁에선 익숙하지 않은 말들인 걸까.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영어로 해석이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익숙한 분위기가 좋다. 그냥 항상 그래 왔던 것들이 편하기 때문에. 하지만 카페에서 만난 캐나다 할머니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분위기의 식탁이있다면 오글거림을 넘어선 또 다른 분위기가 생겨날거라 예상해본다. 적어도 우리 가족의 식탁에서는. 어른의 한 마디로, 내가 오늘 봤던 두 아이들은 분명 더 좋은 친구들과 colorful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울리지 않게 여러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날이 더 쌀쌀해졌다. 고독을 즐기기엔 핫초코가 차가운 초코맛이 되어서 남은 빵조각들을 입으로 털어놓고 홀로 차지하던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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