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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쫄보 Oct 27. 2022

엄마의 수세미가 캐나다로 온다

메이드 인 코리아

수세미


캐나다에서 워홀러로 정착하면 초반에 가장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기본적인 생활용품, 욕실, 주방용품 등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집 어딘가에 찾아보면 다 있을법한 물건을 여기에선 모두 내가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정말 없어서 안 되는 물건들,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아까워서


캐나다의 다이소 ‘달러라마’



하지만 결국 살면서 필요한 것은 사게 된다.


현재 살고 있는 방은 주방과 화장실을 한 명의 홈메이트와 셰어 하는 중이다. 나보다 먼저 이 집에 짐을 풀어놓고 8개월 간 살고 있는 홈메이트가 하루는 수세미를 선물하며 하나 쓰라고 주었다.

오! 수세미를 얻었다.


일본에서 온 이 친구는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도 처음엔 맨손으로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캐나다의 다이소’라 불리는 달러라마에 가서 고무장갑을 사 왔다. 그리곤 수세미를 선물해준 홈메이트에게 고무장갑을 같이 사용하자고 했지만 필요 없다며 아직까지 맨손으로 설거지 중이다.


고무장갑을 다른 문화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나?


아무튼 친구가 준 수세미를 사용하다 문득 집에 굴러다니던 화려한 색깔의 탄탄한 수세미가 생각이 났다. 생각난 김에 엄마에게 연락을 남겼다.


"엄마, 나중에 짐 부칠 때 집에 굴러다니는 수세미 좀 하나 보내주세요."


엄마는 캐나다에 수세미도 안 파나 생각했겠지만, 이내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캐나다에 수세미 많이 팔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거 다 쓰면 짐 오는 시기와 딱 맞아떨어지니 굳이 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시차로 연락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진 않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중요한 생각거리가 아니었던 수세미는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메신저로 사진이 하나 와 있어 확인해보니 엄마였다.

"하나 골라봐~"라는 자랑과 뿌듯함이 섞인 문자에 뭘 골라보라는 거지? 하며 사진을 확인하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요즘 수세미 만드느라 밤늦게 주무신다는 말을 듣고선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나는 그저 집에 굴러다니는 거 하나 필요했을 뿐인데 말야.


내 말에 엄마는 나름대로 실을 사서 유튜브를 보며 따라 만들기 시작했단다. 그러다가 한두 개 만들게 되고 다른 모양에 욕심이 생겨 또 다른 색의 실을 사서 뜨고 있었던 것이다. 캐나다에서 엄마 작품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제 그만 만들어도 된다고 하니 남은 실을 마저 쓰고 그만하신단다.



이렇게 열정적이지 않아도 되는데 싶었다. 나중에 동생이 말하는 걸 전해 들으니 큰 딸을 캐나다로 보낸 후 내가 말하는 모든 거에 걱정하며 깊게 생각하신다고. 아무래도 타지에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하며 만들다 보니 수세미 하나가 서너 개가 되었나 보다.


그래도 가끔 사진을 보면서 엄마가 주무실 시간을 넘기며 수세미를 뜨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간다. 아마 요즘도 짬짬이 수세미 뜨고 계실 텐데 조만간 마주하게 될 엄마표 수세미 빨리 보고 싶다. 몇 개가 더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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