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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블루밍 Sep 10. 2021

마음이 예쁜 거리

관계없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살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대강 파악이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오래된 지인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연인에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친구에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처럼 반복되는 상황들 속에 '나'는 어느 정도 루틴한 모습을 보인다.


첫째, 무뚝뚝하다. 이렇게 소개하기 싫었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교나 콧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부담스러운 사람이다. 그런 행동을 보는 것도 오글거려한다. 오죽하면 '결혼은 오글거려서 할 수 있겠냐.'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무뚝뚝의 대명사는 우리 아빠였는데,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더니 외모부터 성격까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만나 많이 좋아지고 있다. 다정한 모습을 자주 따라 하면서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러링 효과의 장점인 것 같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스크래치를 준 적도 있다. 상대가 나를 소유하려 하거나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거리를 자꾸 넘어오려 하면 잔뜩 경계한다. 표정에 티가 많이 난다. 기억이 맞다면 열다섯 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영화를 보는데, 내 자리가 너무 가까워 뒤쪽에 가서 봤다. 나는 그저 좀 멀리서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당시 친하지만 자주 싸웠던 한 친구는 내가 애들을 다 데리고 뒤로 갔다며 화를 냈다. 나는 주동자 스타일이 아닌데, 그 친구가 나를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한 친구는 내가 다른 사람이랑 친해지는 걸 불편해했다. 사춘기를 겪는 십 대의 소녀라면 질투가 활활 타오를 때긴 하지만, 당시 난 질투라는 감정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무덤덤한 사람이라서 오히려 나랑 친했던 사람들의 질투심이 커진 걸까? 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와 다르게 행동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냥 나랑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생각한다.    


둘째, 눈물이 많다. 무뚝뚝하면서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니, 반전 매력이지 않은가.(하하) 드라마나 영화에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왔다 하면 눈물샘이 폭발한다. 주룩주룩. 친구가 힘들었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할 때도 눈물은 내가 다 흘린다. 친구는 뭐 힘든 일 있냐고 도리어 내게 묻는데, 나는 되게 행복한 때였다. 순간적으로 감정이입을 깊게 하는 것 같다. 혹여나 내 지인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내 잦은 눈물을 오해하지 말기를. '나 지금 행복한데!'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안 행복해 보인다고 하니 뭐라 표현도 못하겠고. 내 행복을 이렇다 증명할 방법은 아직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슬플 때만이 아니라 억울할 때에도 눈물이 난다. 문제는 일하다가 억울한 감정을 느낄 때다. 어떤 상황이 해결되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건 프로답지 않다.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문제를 처리해야 하니까. 억울한 상황을 무작정 참는다는  아니다. 정당하게 할 말은 하되, 감정적인 해소는 일이 다 끝난 후에 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억울함에 좀 더 강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단단한 내가 되기 위해.   


셋째, 책임감이 강하다. 살짝 완벽주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내가 한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 다른 사람이 건드는 게 싫다. 대신 다른 사람의 일은 터치하지 않는다. 나의 의무와 권리에 집중한다. (스스로 정이 없는 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는 욕심이 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해도 크게 상관없다는 마인드다.






무뚝뚝하지만 눈물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 이번 글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나는 이렇다. 세 가지 특성 모두 장단점이 있다. 양날의 검처럼 긍정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고 부정적으로 발현될 때도 있다. 누구나 바뀌지 않는 본인만의 성격이 있고, 살아가면서 그 특성의 양면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이 단점으로 나타나는 때가 있다. 그저 그런 사소한 순간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나조차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창피한 일로 기억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 단점이 보이기 전까지의 거리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면 대판 싸워도 보고 서로 못난 모습도 다 감싸주는 그런 사이여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굳이'였다. 사람은 평생 자신만 알고 싶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친하다고 해서 꼭 나를 완벽히 다 드러낼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내가 상대 앞에서 솔직해지는 대로, '그 정도의 나'를 공유해도 충분히 따뜻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마음이 예쁜 거리'이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하나의 인격체니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부로 대하기 쉬우니 더 조심해야 한다. 돌아서면 바로 후회할 행동은, 그 순간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던 것이라는 변변찮은 핑계 따위로 덮어지지 않는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수록 마음이 예쁜 거리도 측정하기 쉬워진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과 마음이 예쁜 거리는 어느 정도인 것 같은가? 잘 모르겠다면 먼저 자신을 떠올려 봐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고,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는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기를.


때로는 관심을 끊고 관찰을 멈추고 관계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나만의 세계에 파묻혀 살 필요도 있다. 관찰하는 대상은 이미 있는 것이고, 남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것, 나만의 것을 만들기 위해선 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 관계없음도 필요하다. 고독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이어야 한다. 스스로 왕따가 되고 독불장군이 되어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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