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by 사해

희망이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나는 희망이란 걸 겪어본 적도, 쫓아본 적도 없기에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희망을 삶의 원동력이라 말했다. 글쎄. 꼭 무언가 삶을 지탱할 요소가 있지 않아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나처럼 부모가 없고, 일가 친척도 없으며, 고아원에서 쫓겨난 처지라 하더라도 일단 숨은 붙어 있으니까. 아. 오래간만에 머리를 썼더니 배고픈데. 먹을 게 없나 주변을 둘러봤지만 눈에 띈 건 곰팡이 가득한 벽지를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뿐이었다.


"개 같은 인생."


보증금 200에 20짜리 단칸방. 답답한 고시원을 벗어나 옮긴 나의 첫 번째 보금자리는 흔히 말해 거지소굴이었다. 누렇게 변질된 벽지는 이미 제 색을 잃었고, 뜯겨나간 장판은 차가운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고시원에 비하면 한결 나은 거다. 2평도 되지 않는 그 좁은 공간에 하루 종일 누워있다 보면 아무리 멘탈이 좋은 사람이라도 정신병 걸리기 딱 좋으니까.


이 근방에 이 집보다 싼 곳은 없었다. 서울에서 이 정도 조건이면 나쁘지 않은 편이지. 들어 보니 뭐 전에 살던 사람이 천장에 목을 매달아 죽었다고 하던가. 근 1년간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집값을 더 내렸다고 그랬었다. 바닥의 중앙, 유독 검게 물든 장판을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 입장에는 딱히 상관없었다. 소문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방법도 없고,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이 죽은 게 뭐 어때서.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시체는 어딘가에 묻히거나 화장을 했을 거고, 이 공간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사람이 죽은 방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잔고도 바닥인데."


당장 그런 자질구레한 것보다 중요한 건 다음 달 월세다. 일단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고시원을 뛰쳐나왔지만, 지금 통장에 남은 돈은 밥 한 끼 때울 만한 적은 액수뿐이었다. 14780원. 이 돈이면 어디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도 못한다. 요새 최소 배달 금액이 15000원은 가뿐히 넘어가니까. 또 빌어먹을 삼각김밥에 라면으로 때워야 되나. 항상 그랬듯 쓸데없는 고민은 짧았다. 돈이 없다면 선택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해야 할 건 나약한 몸뚱이를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알약 같은 거 안 나오려나."


누더기 같은 옷을 걸쳐 입은 나는 현관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가난의 가장 큰 적은 배고픔이다. 가성비 박살 난 이 엿 같은 몸은 그냥 움직이는 것도 버거운 주제에 계속해서 밥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가난이 죄다. 아니, 어쩌면 태어난 게 죄일 수도. 밥 대신 알약. 얼마나 좋은가. 지구에서 굶어 죽는 인간이 되게 많다고 들었는데, 밥 대신 먹는 알약 같은 거 하나 개발하면 싼 값에 포만감도 채우고 얼마나 좋아. 잠깐. 그런 거 하나 만들면 떼돈을 벌 거 같은데. 내가 한 번 만들어봐?


"병신. 되겠냐."


나는 입가를 비틀며 고개를 저었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멍청이가 뭔 알약을 만들어. 마약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사실 가끔 마약을 하고 싶단 생각도 했었다. 근데 그것도 패스. 뭐 밥 먹을 돈도 없는데 무슨 마약이야. 그거 한 번 하는데 몇십만 원이라 그러던데. 가난은 선택권을 앗아간다. 뉴스에 나오는 마약 중독자 얘기는 전부 허풍일 게 분명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마약을 한다면 다 돈이 썩어난다는 얘기인데. 왜 신문엔 항상 불경기라는 말이 나오는 건데. 선진국? 엿이나 먹으라지. 세계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나라에만 선진국이란 타이틀을 붙여야 한다고.


"얘도 곧 가겠네."


뜯어지기 직전의 운동화를 구겨 신으며 발을 굴렀다. 현관에 무슨 먼지가 이렇게 많아. 나중에 갔다 와서 좀 치워야겠다. 이러고 다시 까먹을 걸 알지만 일단 생각은 해놔야 한다. 그래야 덜 떨어진 뇌가 조금이라도 작동을 할 테니까.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고 습하고 끈적한 반지하방을 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눈부신 태양 빛이 나를 괴롭혔다. 언뜻 고통스럽다는 감각까지 느껴진다. 나는 전생에 흡혈귀였던 게 아닐까? 이렇게 밝은 곳보단 어둡고 축축한 반지하가 익숙하기에.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미친 건 아니겠지?"


미친 사람은 본인이 미쳤다는 자각을 못 한다고 들었다. 그런 인지 능력조차 떨어져서 알 수가 없다는 거 같던데. 몸 이곳저곳을 뜯어봤지만 딱히 이상한 곳은 없다. 유리문에 비친 얼굴이 무척 초췌할 뿐이었다. 와.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운동도 좀 하고 그래야겠다. 이 참에 일이나 구할까? 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중졸이라며 입구에서 문전 박대 당한 기억이 새록새록하기에. 그럴 거면 경력 무관이라는 말은 왜 붙여 놓은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도 다 거짓말이다. 개처럼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겠지. 이 정도 사고력이면 미친 건 아닐 거다. 적어도 모르는 사람한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진 않으니까. 정상이라는 걸 확인하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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