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냥 앉아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by 주소영

방과 후였다.

복도는 조용했고 교실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다.

도서관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말은 없었다.

가방을 멘 채였다.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천천히 안쪽 자리로 걸어갔다.


책장을 한번 스치고 지나갔다.

책은 고르지 않았다.

책상 앞에 도착하더니 가방을 의자에 걸지도 않고 그대로 앉았다.


나는 책을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책 안 빌려?"


고개만 살짝 저었다.

표정도 말도 없었다.

책상 위에 팔을 올리고 손끝으로 모서리를 천천히 건드렸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방과 후의 도서관은 원래 그런 곳이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누구는 숙제를 한다.

누구는 친구를 기다린다.

누구는 조용히 머물다 간다.

누구는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다.


그 아이는 그냥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가방을 메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나는 무심히 인사를 건넸다.

"잘 가."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 나갔다.


책도 안 빌렸다.

대화도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 그 아이는 도서관에 다녀갔다.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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