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방과 후였다.
복도는 조용했고 교실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다.
도서관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아이 하나가 들어왔다.
말은 없었다.
가방을 멘 채였다.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천천히 안쪽 자리로 걸어갔다.
책장을 한번 스치고 지나갔다.
책은 고르지 않았다.
책상 앞에 도착하더니 가방을 의자에 걸지도 않고 그대로 앉았다.
나는 책을 정리하다 말고 물었다.
"책 안 빌려?"
고개만 살짝 저었다.
표정도 말도 없었다.
책상 위에 팔을 올리고 손끝으로 모서리를 천천히 건드렸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다.
방과 후의 도서관은 원래 그런 곳이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누구는 숙제를 한다.
누구는 친구를 기다린다.
누구는 조용히 머물다 간다.
누구는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다.
그 아이는 그냥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가방을 메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나는 무심히 인사를 건넸다.
"잘 가."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 나갔다.
책도 안 빌렸다.
대화도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 그 아이는 도서관에 다녀갔다.
그걸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