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살아남는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지금. 마가 끼였나 싶을 정도로 일은 줄줄이 끊겼고, 뭘 해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이게 말로만 듣던 삼재인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그런 나에게 남은 무기라곤 글 쓰는 일뿐이었다. 내가 잘 쓴다는 자신은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공모전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더 잘 써야겠다는 노력보다 '나는 재능이 없는 걸까?'라며 자책을 하는 것이 더 쉬웠다.
나 자신을 끝없이 의심했다. 자포자기한 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꾸준함을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꾸준함은 성실을 증명하면서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매일 하기란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울타리 밖에서 세상이 붙여준 직함으로 가면을 써야 했기 때문에 글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엔 글쓰기로 돌아왔다. 그럴 때면 오히려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사회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럴 때면 울분을 토하는 심정으로 내 감정을 고스란히 글에 담았다. 그것은 어떠한 미사여구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이었다.
영광스럽지는 않았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록은 내 마음 그 자체였다. 예쁘게 포장된 언어가 아닌 욕망이었다.
돈은 곧 자존심이라 생각한 나는 가까운 이에게 치부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들키기 싫은 게 맞다.
다듬어지지 않은 기록은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이었다.
최근에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아마추어가 영감을 기다릴 때 프로는 일하러 간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글을 쓰는 삶, 어쩌면 내 삶에 필요한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일이 없어 돈이 없는 지금, 하기 싫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쩔 수 없이 찾게 된 단기 알바의 꽃인 물류 알바.
작년에 물류 알바를 처음하고 집에 왔던 날이 생각난다. 가을이 넘어가는 계절이었음에도 땀으로 옷은 젖었고, 다리 이곳저곳에 멍이 들었다.
누가 보면 맞았나 오해할 정도의 멍이었지만, 혼자 해명했다.
멍 자국을 볼 때마다 두 번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결국 현실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 어쩌겠어'라고 애써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아, 가기 싫은데…"라며 피했다. 상반된 두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우연히 핸드폰 메모장을 봤다. 물류 알바 처음 했던 날 썼던 기록이었다. 그중에서 '집 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듦'이라는 문장이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다. 물류 알바를 처음 했던 그날 나는 몸살을 앓았다. 한 편으로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나…?'
답은 없고, 현실은 고달프기만 하다.
어느 것이 정답인 지 알려줄 사람은 없다.
그저 내가 선택하는 것 밖에는.
이 힘든 시기가 언제 지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조차도 알 수 없다.
나의 청춘을 아름답게 포장하기만 한다면 억울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감내하면서 견뎠던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기록을 이렇게나마 글로 남기고 싶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온 너를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