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결혼의 실상
“40대 이상 미혼 여성분, 결혼시장에서 이렇습니다”
제목만 봐도 부정적 뉘앙스일 듯한 영상을 무심코 누르고 시청했다. 한 결혼정보업체 중견 커플매니저의 영상이었는데, 정말 간만에 이런 류의 영상을 본 후 든 생각은 ‘세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평균 결혼연령이 20대였을 때나 남자 34세, 여자 31세가 된 지금이나 결혼시장에서 나이든 여성의 지위는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결혼정보업체 커플메니저들은 하나같이 여자 40대와 남자 40대는 결혼시장에서 전혀 다른 신분이라며 남성은 40세가 넘어도 경제력(직업)만 있으면 무한대로 매칭할 여성이 존재하는 것에 비해 40세 넘은 여성은 아무리 잘났어도 미혼남성만을 고집할 경우 매칭해줄 남자가 없어서 횟수제한을 걸며, 성사 확률도 매우 낮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재혼남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훈계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능력있는 40대 남성들은 40이 안된 여성들을 고집하는데 그 이유가 외모적 매력과 출산능력 때문이란다. 사실 본인들도 40이 넘어서 애 아빠 되는 것이 부담스러울텐데 출산능력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사실 대부분 그냥 하는 말이고 속내는 젊고 이쁜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을 눈치 못채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앞서 밝혔듯 50에 결혼을 한 나에 비해 남편은 재혼남이다. 재혼남을 특별히 선호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차라리 재혼남이 나을 듯하다고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다만 자녀의 여부, 자녀의 나잇대가 현실적 문제여서 이 역시 쉬운 결정은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재혼남을 고려하게 된 것은 내 나이에 대한 현실적 인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40대 초반 했던 몇 번의 노총각들과의 소개팅 이후부터이다. 직업 괜찮고 외모도 괜찮은 40대 미혼남들은 하나같이 결혼에 대한 열의도 없어 보였고 선보러 나온 여성에 대한 예의 자체가 없었다. 언젠가 남편에게 그 시절 선본 얘기를 했는데, 남편이 너무 재수없는 인간들만 만난 것 같다며 더 분해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소개팅 후기는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좀더 최악의 케이스이긴 했지만 사실 주위에 나보다 몇 살 어린 후배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모두 선을 보면 볼수록 자존감이 팍팍 낮아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그때 우리 노처녀들은 알았다. 직업 괜찮은 노총각들이 결혼 못한 이유를....
당시 이런 사정을 공감하던 노처녀 선후배들은 7~8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한 후배는 영어를 가르쳐주던 아주 많이 연하의 외국인 남자와 결혼했고, 또 한 후배는 직장 동료가 가볍게 술자리에 불러내 소개해준 이혼남과, 그리고 한살 위의 선배는 성당 지인이 소개해준 이혼남과 결혼해서 모두 잘 살고 있다. 특히 후배 두명은 40초반에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를 낳아 그네들이 꿈꿨던 가정을 이루고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혼남과 결혼한 선배는 특히 가장 행복해하는 케이스인데 그동안 가정을 이루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어 같이 실행하면서 누가 봐도 부러워할만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가 된 후배들 역시 가끔 안부전화에서 이러저러한 푸념을 늘어놓다가도 늘 말미엔 “그래도 결혼한 것은 잘 한것 같애” “결혼할 때의 초심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고 있어”라며 끝을 맺곤 하는 것을 보면 나이 들어 하는 결혼은 대부분에게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한다.
이처럼 내 주위에는 나처럼 여성은 초혼인데 남성은 재혼인 케이스가 여러명 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우리도 사실 신기해 하는데, 모두 결혼 전보다 삶의 만족도도 높고 행복해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내가 결혼을 하기 전에 접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들, 주위 사람들의 카더라 통신에서는 재혼남과의 결혼을 우려하는 논조들이 가득했다. 이혼남은 이혼한 이유가 분명 있어서 힘들다는 둥, 사별남은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기에 재혼한 아내에게 정을 쉽게 못붙인다는 등 잘못된 정보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특히 자식 있는 재혼남은 아이들 때문에 결코 둘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식의 글들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실제 경험자가 되어보니 재혼남과의 결혼은 우려할만한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결론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총각이 아니기에 자식이 존재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총각이 가지지 못한 좋은 면이 있기에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년을 전제했을 때 하는 말이다. 결혼생활을 해보고 자식을 키우면서 크고 작은 삶의 파고를 넘어온 연륜은 결혼생활 중 발생하는 일상적인 것들에도 잘 대처하게 하고 무엇보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시선을 맞출줄 아는 내공을 주는듯 하다. 아마도 이전의 결혼생활이 준 교훈이 그네들에게 돈 주고도 못사는 값진 지식으로 자리잡았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다만 배우자의 자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사실 자녀와 같이 살며 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특히 같이 살며 어린 나이대의 자녀를 케어해줘야 하는 엄마 역할을 갑작스럽게 부여받는다면 사실 웬만한 내공이 있는 여성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듯하다. 나도 그렇고 주위 재혼남과 결혼한 친구들도 아이들과 같이 살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해서 살거나 전처가 키우는 식이어서 경제적 서포트와 가끔의 가족회동 외에는 자주 얼굴을 보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남편의 자식들 문제로 결혼생활이 도전이 되곤 하는 면이 없지는 않다. 나도 결혼생활 초기 2번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사실 두 번 다 자녀문제였다. 그 두 번의 싸움 이후 나는 결심했다. 남편의 자녀문제는 남편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나는 그저 남편이나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만 신경쓰는 것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남편은 동시에 두 아이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깊이 수용해야 하며, 더욱이 애들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주지 못한다고 해서 불평하며 남편에게 개선을 독려해봤자 관계만 나빠질 뿐 내게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복하자고 한 결혼, 행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발상이 어렵지 않게 전환되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결혼한 여자가 진심 엄마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기에 다 큰 20대 자녀에게 엄마노릇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실 자신도 없다. 낳아준 엄마라면 거의 본능적으로 매일같이 전화하고 챙기고,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희생하겠지만, 순전히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된 나같은 경우는 사실 저절로 챙기는 것보다 애써서 챙기고 신경써야 그 몇십분의 일이라도 해줄 수가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때론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가 우리 부부관계에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듯한 느낌이 아주 가끔 드는 것도 재혼 부부의 어쩔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는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는 재혼남과 결혼생활에 대해 결혼 초기 고민도 있었지만 그 고민의 시간을 오래 갖지는 않았다. 남편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아이들의 문제는 남편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일단락지은 후 나는 남편과의 행복에만 집중하며 살고 있다. 그 이후 애들과의 관계는 마치 사이좋은 친척 정도의 느낌인듯하다. 가족 단톡방을 통해 소통을 하며 서로의 생활에 응원은 하되 어느 정도의 심리적 경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끔씩 만나 서로의 간격을 조금씩 좁히며 천천히 가족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재혼남과의 결혼생활은 초혼남과 결혼했으면 없을 자녀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애로사항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자애롭고 넉넉한 품으로 초혼인 나를 감싸주기에 자녀가 있다는 단점은 아주 작은 단점이 될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수용하는, 성숙한 중년이라면 나는 재혼남과의 결혼도 좋은 대안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은 쌍으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고려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