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결혼식의 늦은 후기
4년 전 50살의 결혼식 날, 나는 매우 쑥스럽지만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였다.
당시 우리 결혼식은 양가 직계 가족과 절친 몇 명만을 초대한 스몰 웨딩으로 치러졌지만 드레스 만큼은 제대로 착장했다. 예식 조차도 생략할까 고민하던 우리가 호텔의 작은 연회장을 빌려 규모는 작지만 제대로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은 모두 결혼한 주위 사람들의 권고를 점차 수용하게 된 것인데 지금 생각해도 잘 한일 같다. 사실 우리 나이도 나이고 무엇보다 남편이 재혼이기에 결혼예식을 꺼렸던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남들 눈 의식하며 대충 하려고 했었는지 싶다.
특히 나는 웨딩 드레스를 입지 않고 그냥 흰색 계열의 기품있는 윈피스를 사서 입고 결혼식장에 앉아있으려고 했는데, 언니가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극구 말렸다. '이 나이든 얼굴에 웨딩 드레스가 어울리겠냐'며 한사코 고집을 피우던 나는 언니의 결정타 한마디에 항복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네가 웨딩 드레스를 안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신부의 어머니인줄 알 것이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퍼뜩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래, 나이 들어서 안입으려고 한 것인데, 나이 들었으니 꼭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전체 하객 30명도 안되는 스몰웨딩이었기에 사실 결혼 예식 준비라고 해봐야 별것은 없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웨딩 드레스 대여해주는 곳에서 그리 튀지 않는 저렴한 드레스를 대여했고, 남편은 양복 한 벌을 사서 입었으며 결혼식장 예약을 하고 꽃장식을 주문한 정도이다. 예식은 우리를 중매한 지인이 사회를 보고 신랑 신부 둘이 서로의 어머니 앞에서 서로 아끼며 잘 살 것을 어머님께 맹세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리고 각자 절친의 축하 덕담과 축송이 이어진 정도이다.
다만 우리의 중년 결혼식이 다소 색다른 것이 한가지 있다면 초대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추억을 선사하자는 것이었는데, 그런 차원에서 1박 2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우리 결혼식은 총 3부로 진행된 셈인데, 1부는 호텔 결혼예식과 식사, 2부는 밤늦게까지 이어진 노래방 뒤풀이 파티, 그리고 3부는 이튿날 전주 한옥마을 투어였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손님들을 배려해 특별 기획한 것이었는데, 하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치 2박 3일 여행을 왔다 가는 기분이라며, 모두 감사해하는 통에 준비한 우리도 좋았다.
지금도 나는 순백의 웨딩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웃고 있는 결혼식 사진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난다. 웨딩 드레스를 입고 면사포 화관을 쓰니 평소보다 훨씬 이뻐 보이고 나이도 덜 들어보인다. 중년의 결혼 예식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웨딩 드레스를 제대로 입고 소박하더라도 예식도 꼭 제대로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생각보다는 어울리며, 무엇보다 두고두고 결혼식 사진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한번밖에 없는 내 결혼식에 왜 그리 나이를 의식했는지 모르겠다. 나이 의식하지 말고 그냥 평생 하고 싶었던 것을 꼭 해보는게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