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사드리러 가는 날 긴장이 되었다. 어디 성인지 물어보실까 싶어서 몇 대손인지 등등 외워서 준비해 갔다. 엄마, 아빠 연세도 한 번씩 준비하고 너무 어린 철부지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옷도 얌전하게 입었다.
첫날 잘하려다 보니 실수가 있었다. 일단 아버님이 어색해하시고 조금 거리를 두고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혼자 신나서 밝게 친한 척을 좀 했고... 아버님께서 우리 아버지 연세를 물으시는데...
머릿속에서 아빠 대신 아버지. 연세니까 오십오 살 말고 쉰다섯으로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나간 말이....
"아버지는 연세가 올해 쉰 오..... 살(?)이십니다."
또 결혼 후 처음 인사를 간 날
어설픈 며느리였던 나는 설거지를 하다가 시어머님과 엉덩이가 부딪혀 어머님이 나뒹굴게 되셨다.
놀라 황급히 쓰러진 어머님을 일으키고 설거지를 급히 하는데 그릇도 하나 떨어뜨려 금을 냈다.
첫 명절에는 생선 머리를 뒤집다가 (내가 힘이 셌는지) 머리만 댕강 들어 올려서 머리 없는 생선으로 올려야 했다. 그렇게 실수 많던 며느리.. 그래도 머리 굴리지 않아 밉상은 아닌 어설픈 며느리였다.
언제나 처음부터 솔직한 답변을 하는 나를 보시며 처음엔.. 시부모님도 어이없어하시고
쟤 뭔가 싶으셨을 거다.
차츰 이런 나를... 두 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셨고 오히려 큰 기대가 없다 보니
좋은 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수하고 어설픈 며느리인데 가만히 보니 볼수록 인간미가 보이고 밝다..
약간 이런 식)
시아버님은 예의를 중시하신다. 시댁 어른들.. 친지분들과의 약속이 잡힌 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만원이 된 거다. 아버님은 내리시면서 우리 부부 보고 그냥 너희는 먼저 가라고 말씀하셨다. 난 예의상인 걸 몰랐다. 나랑 남편은 내리려다가 정말 아버님 말씀에 따라 그냥 타고 내려갔다. 아버님은 꽤나 당황하셨나 보다.
정말 예의상이셨던 거였다. 갈 줄 모르셨던 거다.
난 솔직하다 보니 아버님, 어머님이 예의상 말씀을 하시거나 돌려 말씀하셔도 그냥 그 질문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첫 손주를 데리고 가면 아이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걱정이 많으셨고 조금 돌려서 (지금 생각하면) 지적을 하신 건데 난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웃고 칭찬으로 알아듣곤 했었다.
(예를 들면 아기가 운다. 누굴 닮아 그런지.. 이렇게 물으시면.. 나는 저를 닮았나 봐요. 히히~
우는 것도 자식이라 귀여워요. 그래도 잘 자서 키우기 편해요. 책보니까 우는 게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분 나쁘게 말하지 않기!
어느 순간 두 분은 얘는 원래 속이 꿍하지 않고 단순하고 숨은 의도는 없는 순진한 아이(?)라고 생각하시고.. 일정 부분 포기하신 부분도 있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다. 시댁 가면 항상 웃으며 들어가서 두 분을 웃겨드리고 온다. 아이들 실수담과 애들의 특성들을 MSG 가미해서 재밌는 이야기로 들려드린다. 조용했던 시댁에 내가 들어간 이후론 웃음이 많아지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남편 생각)
또 시댁 가서 초반에 했던 건데.. 우리 엄마, 아빠는 원래 칭찬을 잘하시는 편이라 우리 남편 칭찬을 자주
하셨었다. 난 그 이야기를 그대로 시댁에 가서 남편의 좋은 점을 줄줄이 나열했다.
두 분은 며느리의 아들 칭찬에 처음엔 좋아만 하시다가 나중에 너무 잦으니 민망해하시고 뭐라 말씀도
못하셨다. (내가 칭찬을 하니 오히려 며느리에게 아들 흉도 보시더라.)
정리하면...
1. 내 있는 그대로를 그냥 보여드리자. 어차피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장기로 봐야 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지속할 수 있는 것만 하자.)
2. 초반엔 특히 남편의 좋은 점들을 가서 말하자. (단점도 있겠지만 그건 5년 지나서 조금씩 풀어놓자.)
3. 시부모님의 기분 나쁜 말이나 지적 같은 것에 웃으며 반응하자. (나 같은 경우는 좀 물어본다. 어머님.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어떤 점에서 그렇게 느끼셨어요? 전... 한 마음이었어요.) + 나의 잘못은 바로 인정하고 사과를 드린다.
(빠른 사과는 화난 시부모님의 마음을 누그러 뜨리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4. 시댁 갈 때 아이들과 관련된 혹은 남편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한 두 가지 생각해가자.
(뚱하게 가만히 있는 며느리보다는 시댁 가서 밝게 있으면 덜 꼬투리가 잡힌다. 단 너무 말이 많은 건
푼수 같아 보이니 적당히!)
5. 꿍하지 않기
나 같은 경우는 불만이 있으면 남편을 통해 전하지 않고 어지간한 건 넘어가 드리고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 것만 I 메시지로 "이렇게 느꼈어요." 감정을 표현하는 편이다. (자칫 내 주장으로 표현하면 따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에 약간 상처가 되었다는 감정을 한두 마디로 드러내는 게 더 효과적이다.=> 감정 단어 사용)
6. 처음부터 솔직하게 표현하자. (밥 먹고 왔냐고 물으면 안 먹고 왔다고 말하고... 가리는 거 있냐 하면
전 이건 못 먹어요라고 말하는 게 낫다. 가리는 게 많냐고 말씀하시면... 제가 좀 그래요.
근데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요.)
7. 시부모님과 적절한 선이 있어야 한다. 시부모님을 존중하지만 난 딸은 아니다. 우리 시부모님은
그 부분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나는 시부모님의 그런 부분이 좋고 직접 표현하며 칭찬을 해드리는 편이다.
8. 전화는 억지로 드리지 않기. (난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잘 드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번 드릴 땐 진심을
다해서 드린다. 형식적인 것보다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편이다.) -> 근데 지금은 조금 더 드리려고
노력 중인데 관심의 표현으로 느끼실 것 같고 연세가 드시니... ㅠㅠ 다른 건 못해도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난 시부모님이 지금도 편하거나 부모님처럼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가깝게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