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생 아들은 매일 집에만 있습니다만,
유독 내향성을 지닌 첫째와는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우리 아이는 워낙 집돌이이고 집에서 식사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20살 아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조용했던 아이는 저와의 시간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이 났고 세계 지리에 대해 설명하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워낙 조용해서, 반 엄마가 '**이는 집에서도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고 묻기도 했었어요. 집에서 저랑 이야기할 때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지 알면 놀랄 정도로 아이는 밖에서 조용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은 적었지만 신난 아이의 눈빛을 보면 그 이야기마저 흥미가 생기기도 했어요. 물론 바쁜 일상에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관심사가 아니기도 했고요.
수능 이후에 아이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가끔 가족이랑 외식하거나 교회에 가는 것 말고는 거의 집에만 있습니다. 저랑 같이 식사하면서 관심 있는 밈을 보여주기도 하고 최근에는 우마무스라는 웹툰 이야기에 홀딱 빠져서 매일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 시간이 자신은 너무 행복하고 좋다고 합니다.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우마무스는 일본의 경마 관련된 이야기인데 아이는 말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그들의 일대기를 기억하고 스토리텔링을 매일 해줍니다. 관련한 게임은 하지 않지만 말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너무 멋지고, 그들의 좌절, 실패, 그리고 역전의 드라마가 감동이 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말들의 삶이 사람의 인생과도 닮아 있더군요.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보니, 이야기를 하는 기술도 늘어서 이젠 저도 흥미진진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2달 가까이 아이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아는 말들이 생기고 말의 안타까운 죽음에 마음이 아프기도 해요. 하루 우라라라는 작고 귀여운 말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딥 임팩트라는 명마도 알게 되었고 까불이 골드 쉽의 팬이 되었어요. 동생들은 오빠가 덕후기질이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놀립니다.
그때마다 저는 '형은 뭐든 한 번 빠지면 그걸 다 알 때까지 공부하는 집중력이 대단하고 연구자 기질이 있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일본에서 경마는 꽤나 대중적인 스포츠인가 봅니다. 축제의 한 마당이기도 하고 천왕도 와서 관람을 하기도 한다고 해요. 말들도 사연 없는 말들이 없더라고요.
언젠가 제가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거든요. 남편이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슬쩍 눈치를 좀 주면서 아이에겐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것 같다고 핀잔을 주었어요. 그 말을 듣던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아빠. 저는 엄마 이야기 듣고 싶어요. 엄마는 항상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들어주고 그게 참 고맙고 좋아서 저는 엄마 이야기도 들어주고 싶어요." 이렇게 말을 했어요.
아이랑 같이 국립중앙박물관도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신라금관, 불상, 금 귀걸이 등등 하나하나 아이의 관심사대로 따라갑니다. 사실 국중박에 간 이유는 인상파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가끔씩 가곤 합니다. 연주회에 가기도 했었고요.
서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와의 추억이 정말 많아요. 아들의 일상은 굉장히 소박합니다. 그리고 항상 여유 있게 방안에서의 충분한 휴식과 자유시간을 누립니다. 매주 1회 교회에 가서 셀 모임도 하고 빠지지 않고 참여를 해요.
올해는 카투샤에도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아이는 많은 사람들과의 단체 생활보다 소수의 그룹을 편안하게 생각하기도 하기도 하고 영어도 잘하는 편이고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혼자만의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2인 1실이란 이야기에 솔깃한 것 같기도 해요.
저는 가끔 아이랑 같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기도 합니다.
아이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가 빨리는 내향형이지만 가야만 하는 곳에 가면 또 잘 적응해 냅니다. 물론 집에 와서 긴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요. 최근에는 대학교 입학 선물로 아빠가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사려고 했는데요.
아이는 오래전부터 수능 이후에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그림이었어요.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대신 디지타이저라는 액정태블릿을 사주었어요. 그림 그리기 전용으로요. 끄적끄적 만화를 그리던 아이는 이제 조용히 방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우마무스 관련 말을 검색하며 공부를 합니다.
내향성 아이의 소박한 자기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면 참 행복해 보입니다. 이제 3월부터는 대학생이 되어 다양한 활동에 도전해 본다고 해요. 일단 복수전공도 하고 영어 시험도 본다고 합니다.
앞으로의 미지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고 인공지능으로 인해 걱정되는 면들도 있어요. 근데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답게 살아가는 아이를 보면 크게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친한 친구나 따로 만나는 친구가 없을 뿐, 동생들과도 잘 지내고요.
이 내향적 아이가 연애를 어떻게 하려나 싶지만 내향적인 우리 남편도 저를 만나서 결혼했고 저도 내향적이지만 누구와도 잘 지내고 적응력이 있다는 소리를 듣거든요. 물론 자주 만나는 건 힘들지만요. 혼자만의 시간은 필수고요.
이제는 아이를 걱정하지 않고 기대합니다.
오히려 조용한 힘을 가진 사람이 경쟁력이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소박하고 조용한 듯 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하며 잘 존재해 왔으니까요.
저에게 자신은 행복하고 만족한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면, 그럼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아이가 지닌 특별함이 참 소중합니다.
내향성은 하나의 개성이고
특별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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