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일
오늘은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60년 전, 흰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같은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던 코흘리개 옛 친구들 모임이다.
아마도 이 천진난만한 58 개띠 친구들은 어쩌면 이날의 입학식이 치열한 생존경쟁 세계의 첫걸음마라는 의미도 잘 모른 채 그저 신나는 분위기에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을 것이다.
나도 당시 연년생 남동생의 부러움을 듬뿍 받으며 그저 신이 나서 학교 교정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전후세대답게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한 학년에 13반, 한 반에는 80여 명의 친구들이 그것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았다.
오늘은 내가 이 친구들을 졸업 후 54년 만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다.
얼마 전 한 친구의 딸 결혼식에서 소수의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졸업 후 처음으로 어색한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를 가장 반갑게 맞아주고 뒤풀이 맥주까지 대접해 주었던 한 친구의 동기회 모임 참석 권유로, 나는 오늘 동기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겨울비에 젖은 우산을 접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에 들어섰다.
이 모임 참석을 권유했던 헌영이가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울산에 사는 성환이도 먼저 와 있다. 얼마 전 결혼식에서 만났던 친구 중 한 사람으로,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난생처음 춤을 가르쳐 준 친구다.
건너편 테이블에도 처음 보는 여학생 아니, 여자 동기들 몇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동기들이 한 명 두 명 나타나면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다소간 서먹한 인사들을 나누기도 한다. 나도 분위기를 봐 가며 인사를 나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처럼 동기회에 처음 나타난 친구가 나를 포함 모두 3명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걸걸한 여자 동기 한 명이 우리 테이블로 나타나 친구 이름들을 부르며 근황을 묻는다.
동기 회장이라고 한다.
어떤 모임이든 회장은 역시 그 자리에 딱 맞는 인물들이 맡기 마련이다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연이어 또 한 명의 인간미가 넘치는 여자 총무가 다가와 처음 참석한 나의 어색함을 덜어주려는 듯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역시 직무에 충실한 동기회 총무란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동기들과의 어색함을 지우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술잔 몇 순배가 돌면서 어색함이 말끔히 해소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얼굴 표정이나 손짓, 몸짓에서 어린 시절의 모습이 조금씩
오버랩되는 친구도 있다.
오리고기 요리 식대를 신고턱으로 흔쾌히 쏜 한동영이 그러했다. 동영이는 한약의 부작용으로 그 어린 나이에 친구들 중 유일하게 흰머리였기에 '할배'란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찜뽕을 하면 조그만 흰 공을 우리들 중에 가장 멀리 쳐서 날렸고, 친구들 앞에서 잠자리 머리를 맛있다고 먹기도 했다.
설날 연휴가 막 지난 뒤라 회장단에서는 한자리 수의 참석자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20명의 많은 인원이 참석했기에 회장과 총무는 무척 고무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70~80명이 참석하기도 했다고 하니 놀랍기만 했는데, 총동창회에서도 우리 35회를 인정해 준다고 한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초등학교 4회 선배가 운영하는 인근 맥주집으로 이동했는데, 울산에서 온 친구들과 여자 동기 몇 사람을 제외한 친구 대부분이 참석했다. 진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녹녹지 않은 세파를 뚫고 살아오느라 육신에 상처가 하나씩 나기도 하고 큰 위기를 극복한 경우도 있지만, 초등학교 그때 그 시절의 순수한 영혼만은 모두들 간직하고 있었다.
다양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친구들의 주름진 얼굴에서는 승화된 여유로움과 다정한 배려심이 듬뿍 묻어났다.
대학 졸업 후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15년, 이후 호찌민에서 25년의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나는 살아오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구수한 정을 오늘 처음으로 진하게 느껴보았다. 그 구수함은 해운대 '거대곰탕'이나 오장동 '원조 함흥냉면'의 그 어떤 육수보다 진했다.
잠이 들면 사라질 것만 같은 오늘 그 기분 좋은 사람냄새를 좀 더 느껴보고 싶어 오늘 만났던 소중한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조용히 읊조려본다.
헌영, 성환, 성환 2, 종환, 봉영, 원삼, 영신,
성수, 귀영, 동영, 기연, 규태, 상보,
영애 회장, 태순 총무, 규태 2, 성자, 현희, 경미
동기 모임이 지친 심신의 쉼터가 되어, 일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듯, 어려움은 서로 나누고 기쁜 일은 더하는 모임으로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또한, 조만간 호찌민으로 돌아갈 나는, 친구들이 13살의 순수한 모습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늘 건강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