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부
박흥부가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맞이한 것은 형수가 아닌 차가운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곧 심술궂은 형수의 목소리로 깨어졌다. 형수는 흥부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흥부, 이른 아침부터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온 게냐?” 형수는 말투에 불쾌함을 담아 물었다. 그녀의 눈은 냉소적으로 빛났다.
“형님을 뵈러 왔소, 형수님. 조금 도와주실 일이 있어서…” 흥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수는 그의 말을 끊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형님은 아침 일찍부터 일하러 나갔다. 네가 아는 대로, 형님은 바쁜 사람이거늘. 너처럼 나태하게 웃음을 팔고 다닐 시간이 없는 분이지.”
그 말에 흥부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수님, 사람들이 지쳐 있어요. 세상살이가 다들 힘들잖아요. 그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나눠주고, 신나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형수는 그의 말을 듣고는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정말 우스운 소리군. 네가 웃음을 나눠준다고 해서, 그들이 배부를 줄 아느냐? 네가 웃고 떠들 때, 이 집은 얼마나 많은 일로 바쁜지 모르고 하는 소리구나.”
흥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형수의 날카로운 시선과 비웃음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형수의 말에 하인들이 움찔거리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형수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몸을 사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형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짓눌러놓고 있었다.
형수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눈을 좁혔다. 그녀는 이 순간, 하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집에서 일을 하지 않는 자, 자신의 빈곤함을 무기로 삼는 자, 게으름을 삶의 철학으로 삼는 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느냐?’ 그녀의 마음속에서 냉혹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형수는 하인의 손에 들려있던 주걱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주걱이 번쩍 들어 올려졌다. 흥부는 그 순간, 형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뒤로 물러섰지만, 형수는 이미 결심한 듯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웃음을 팔고 다닌다지만, 이 집에서는 그런 웃음 따위는 필요 없다. 네가 배고프다 해도, 네가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하게 사는 한 이 집에서 받아갈 건 없다.”
형수의 눈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녀는 주걱을 높이 들고 흥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하인들은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형수를 향한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형수의 한마디에 그들은 꼼짝없이 순종해야 했고, 그녀의 분노가 그들 모두에게 미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네가 빈곤함을 무기로 삼고 이 집에 와서 동정을 구한다면, 이 주걱이 네게 줄 유일한 답이다.” 형수는 냉혹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손에 쥔 주걱은 무거운 긴장감을 자아냈다.
박흥부는 그 순간 형수의 분노를 마주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비록 형수의 말과 행동이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오늘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그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야만 했다. 흥부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결심을 다졌다. 형수의 차가운 눈빛과 주걱이 무섭긴 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말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나아가는 이들에게,
그 길 끝에는 반드시 따뜻한 보람과 결실이 기다리고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