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부
박흥부는 형 박놀부의 집 앞에 다다랐다. 놀부의 집은 주변의 다른 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대문은 으리으리하게 솟아올라 있었고, 그 문을 넘어서면 넓은 마당과 고급스러운 기와집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흥부는 잠시 대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며 그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문을 두드리기 전,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이 대문을 넘어 형을 찾아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결코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다.
형 박놀부는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의자는 마치 그가 세상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음을 상징하는 듯했다. 흥부는 그 앞에서 엎드려 있었다. 차별받는 서얼의 처지에, 그는 형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생생했다. 형은 차갑게 그를 내려다보며 꾸짖었다.
"흥부야, 서얼이라 해도 네가 양반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네 행동 하나하나가 가문의 체면을 망치는구나. 가난하고 비참하다고 해서 그 비굴한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건 더 큰 치욕이란 걸 모르는 게냐?"
박흥부는 그때 형의 날카로운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마당에 엎드린 채 형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형을 찾아가는 것이 항상 두려웠다. 형의 차가운 눈빛과 냉정한 태도는 그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흥부는 자연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그 날처럼 형에게 굽실거리며 도움을 청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예전과 달랐다. 그는 오늘 반드시 쌀을 구해야 했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하고, 형에게서 냉대를 받더라도, 그는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형을 찾아야만 했다.
흥부는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형님께 또다시 꾸중을 듣게 되더라도, 오늘은 물러설 수 없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굳은 결심을 한 채 대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대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선 그는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흥부는 마음속에서 다시 한 번 결심을 다졌다. 형의 차가운 눈빛이 두렵지만, 오늘만큼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족을 위한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했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놀부의 집 하인이 그의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흥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형님을 뵈러 왔소. 형님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릴 일이 있소.”
그는 하인의 안내를 받아 천천히 형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형을 만날 준비를 하며, 그의 마음은 긴장으로 가득 찼지만, 가족을 위한 의지는 그 무엇보다도 강했다. 형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놀부의 차가운 시선이 그의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흥부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오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가족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형을 다시 한 번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자존심을 삼키고 가족을 위해 문을 두드린 흥부의 용기,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