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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Sep 04. 2024

사진사

PHOTOGRAPHER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전날 과음을 해서인지 지치는 오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빙글 돌았고, 심장이 쿡쿡 쑤셨다.


오전에는 몇 손님들이 왔다갔다.


젊은 부부와 갓 태어난 아기, 


엄마 손에 이끌려 사진을 찍으러 온 꼬마.


“얘, 남는건 사진이야.“


아이의 어머니는 칭얼거리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평소였다면 좀 더 친절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나는 얼른 일을 마치고 집을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좀 더 왼쪽으로, 웃고, 그렇지. 아저씨 봐야지, 찍는다?”


나는 기계적으로 말했다. 


그 이후에도


축구 유니폼을 입고 온 소년,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첫 입사지원서에 쓸 사진을 찍는지,


잔뜩 긴장해있었다.


“형 봐야지, 자, 찍는다.”


심드렁한 나의 지시에, 그는 최선을 다해보려고 했으나 왠지 그의 웃음은 어색해보였고,


이런 사진으로는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날을 잘못 고른 것이다.


“포토샵 되나요?“


청년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그럼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리고 포토샵을 해줄 생각도 없었다. 가게를 지킬 기운만 있는 나에게, 정교한 작업으로 그의 입꼬리를 올려줄 그럴 정신은 없었다.


30분 후, 그는 다시 가게로 왔고


사진을 받아들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감사합니다.”


그는 으레 손님들이 그러듯 인사를 했다.


“네네”


사진을 확인하며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사회인이 되기 위한 첫 단계를 해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조금은 뭍어 보였으나,


나는 왠지 그가 가게를 나서는 것과 동시에 사회를 향한 고달픈 첫 발을 내딘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 뿐이었다.


다음 손님은 중년의 한 남자였다.


그가 들어와서 모자를 벗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이 나와 똑같았던 것이다.


그 또한 내 모습을 보고 놀라했다.


"아니, 얼굴이 저랑 똑같으신데요?"


"제 사진사 경력 10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군요."


그는 쿡쿡 웃었다.


"이야 이거 놀라운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서진입니다."


"이런 우연이... 저도 이서진입니다."


“여기 사시는거에요?”


“네, 토박입니다.”


“이상하네요, 저도인데. 동네 주민인데 한 번도 못봤다니, 신기한 일이군요.“


그는 자켓을 벗어 테이블 위에 걸쳐두고 검은 양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았다.


”격식있게 입으셨는데, 어떤 사진으로 쓰실 거죠?“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갖고 싶다고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상하게도 오늘이 날인 듯해서, 이렇게 찍으러 왔습니다.”


나는 카메라 너머로 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자연스러운 사진이라면, 옆모습을 찍어보시는건 어떨까요?" 


"아니요, 무조건 정면이어야 합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단호함에 놀랐지만, 더 묻진 않았다. 


“사진은 증명사진 규격으로 찍으실건가요?”


“11 사이즈로 찍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사이즈는 아닌데요.”


“무조건 11 사이즈입니다.”


“집에 걸어두시려고요?”


“그렇게 되겠죠.”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는 부드럽게 미소짓기 시작했다. 집에서 준비를 많이 한 듯한 웃음이었다. 조금 지나친 면이 있어보였지만, 나는 사진기의 셔터를 눌렀다. 


'찰칵'


“몇 장 필요하십니까?”


“1장이면 됩니다.” 


'흠.. 손님이 하겠다는 대로 둘 수 밖에.' 


"그럼 30분 후에 찾으러 오세요." 


그가 가슴팍에서 봉투를 꺼냈다.


"사진 찾으실 때 지불하셔도 됩니다." 


"지금 내겠습니다." 


그가 내 손에 5만원권을 쥐어 주었다.


"수고하세요." 


"네네, 같은 동네이니 다음에 술 한 잔..." 


그는 나의 말을 듣기도 전에 가게를 나서버렸다. 


"참 이상한 손님이야." 


나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그의 사진 인화를 마치고 인화 봉투에 담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무심코 손님이 앉았던 의자를 보니 지갑이 떨어져있었다. 지갑을 주워 열어보았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주민번호까지 같잖아?' 


그의 신분증은 나의 것과 똑같았다. 의자 옆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나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오늘 검은 정장을 입고 출근했었구나.'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옷장에 바로 보이는 걸 걸친게 어렴풋이 기억났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난 나는 앞서 찍은 손님들의 사진을 펼쳐보았다. 아기, 꼬마, 유니폼을 입은 소년,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청년은 모두 과거의 나였다. 나는 아기와 함께 방문한 젊은 부부를 떠올려보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들은 나의 부모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못 알아봤어, 그렇게 젊은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 


"그렇담 오늘은 나의 일대기를 보는 날인가 보군." 


나는 생각했다. 


"30분 전에 온 남자가 지금 내 나이대로 보였으니, 조금 기다리다보면 노인이 된 나도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겠지?" 


나는 시계를 보았다. 가게 문을 닫기 20분 전이었다.


"벌써 20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0분 후에 오라고 한 남자는 왜 오지를 않는거야?"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나이를 먹은 내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추가 손님은 오지 않았다. 나는 퇴근 시간을 넘겨서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옆 가게 주인들이 하나둘 퇴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밖에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갑작스럽게 가슴 중앙에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나를 덮쳤다. 통증은 목을 타고 왼쪽 어깨와 팔, 등, 턱으로 퍼져나가며 숨이 가빠졌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오전부터 이어지던 현기증은 메스꺼움으로 바뀌었다.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입에서 처음 듣는 헐떡거리는 소리가 나오며 나는 바닥에 구토를 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의 손끝이 파래지고 있었다. 의식이 혼미해졌다. 근육에 힘이 없어지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더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상가 앞에서 한 주민이 말했다. "들었어? 어제 서진사진관 주인이 죽었대잖아."


"혼자 사는 그 총각 말하는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고, 퇴근길마다 술을 사가던데."


"그런데 이상하지. 


죽을 걸 알았던 것처럼 그 날 검은 정장을 입고


영정 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더라고.


한 손에는 노잣돈까지 쥐고 말이야."



작가의 말


사진관에서 마주한 ‘자신’과의 만남은, 어쩌면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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