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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Sep 08. 2024

비닐인간

THE VINYL MAN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한 나무꾼이 이른 아침, 도끼를 메고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는 오늘도 나무를 하러 이곳까지 왔지만, 숲 속 깊은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무꾼의 시선이 연못가에 머물렀다. 한 남자가 물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의 행동은 기묘하고, 수상해 보였다. 남자는 도기 그릇을 하나씩 물속에 담갔다가 빼내고 있었다. 잠시 멈춰서서 나무꾼은 눈살을 찌푸렸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건가?’ 나무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의문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기에는 도기 그릇이 너무 많았고, 오는 길에 강도 있는데 이 깊은 숲 속의 연못까지 도기 그릇을 가지고 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이 많은 도기 그릇을 설거지한다고? 그럴 리가...’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은 조용했고, 남자의 행동만이 그 고요함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십 개의 도기 그릇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황금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건... 황금이잖아. 도대체 저자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나무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그를 휘감았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남자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때, 남자가 연못에서 도기 그릇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릇은 물기를 뚝뚝 떨구며 빛을 반사했다. 그리고 그는 그 그릇을 황금 더미 옆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남자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게 다 뭐지? 왜 웃고 있는 걸까?’ 나무꾼의 머릿속은 수많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나무꾼은 조심스럽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남자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죽이며 풀숲 뒤에 몸을 숨겼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의 모습은 더욱 수상했다.


남자는 조용히 연못가에 서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손에 든 황금을 천천히 연못에 풀어놓았다. 물속에서 황금이 천천히 퍼져나가며 연못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다. 남자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고, 그가 하는 일에 완벽히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나무꾼은 숨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의 마음속에는 호기심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남자는 손을 물에서 빼내더니, 곧바로 도기 그릇을 하나 집어들어 연못에 담갔다. 그 동작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마치 오래전부터 해온 일처럼 능숙해 보였다.


나무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남자의 손놀림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저 도기 그릇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남자의 손이 다시 물속에서 그릇을 꺼내드는 순간, 나무꾼은 깜짝 놀랐다. 연못에 담갔을 때만 해도 평범한 도자기 재질이었던 그릇이, 물에서 나올 때는 황금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마법이지?’ 나무꾼은 충격에 말을 잃고 말았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남자는 그릇을 황금 더미 위에 놓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도기 그릇을 집어 연못에 담그기 시작했다.

나무꾼은 그 행동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며, 점점 그 진실에 다가가고 있었다. 연못에 담긴 그릇들이 연속적으로 황금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마치 꿈속의 장면 같았다. 그러나 그릇이 반쯤 황금으로 변하고 반쯤은 여전히 도자기인 상태로 남았을 때, 남자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는 다시 황금을 손에 쥐고는 조심스럽게 연못에 풀었다. 금빛이 물속에서 다시 한번 퍼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무꾼은 남자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이 연못은... 단순한 연못이 아니야. 이건... 연성의 연못이야!’ 나무꾼의 마음속에 확신이 자리 잡았다.


남자는 같은 과정을 또다시 반복했다. 도기 그릇은 완전한 황금으로 변할 때까지 연못에서 빼내어지지 않았다. 나무꾼은 이를 지켜보며 경외감마저 느꼈다. 이 남자는 마치 황금을 만들어내는 신비한 힘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나무꾼은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 연못이야말로 전설 속의 연성의 연못인 게 분명해...’ 그는 서둘러 이 정보를 마을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한 걸음씩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숲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봤을 때, 남자는 여전히 그 신비로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무꾼은 그 모습이 머릿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이 연못을 아는 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무꾼은 떨리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되뇌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무꾼은 서둘러 숲을 빠져나와 마을로 돌아왔다. 땀에 젖은 이마를 닦으며 집에 도착한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그 연성의 연못과 황금으로 변한 도기 그릇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엄청난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걸 알려야겠어. 하지만... 잠깐만.’ 그는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 얘기를 한다고?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믿지 못할 거야. 황금으로 변하는 도기 그릇이라니, 누구도 그걸 쉽게 믿지 않을 거야.’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낫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굳혔다.


며칠 후, 나무꾼은 마을의 상인들을 찾아가 막대한 양의 황금과 은을 사들였다. 그의 평소 행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물었다.


“이 많은 황금과 은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가?” 상인들이나 이웃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들의 눈에는 나무꾼의 행동이 무척이나 기이하게 보였다.


나무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금과 은으로 하려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는 얼버무리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계획이 있었다. 연못의 비밀을 활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명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곧 그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무꾼의 마음은 이미 숲 속 연못에 가 있었다. ‘곧 모두가 알게 될 거야. 내가 황금을 어떻게 얻었는지, 그리고 그 연못의 진실을.’ 그는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에 끙끙대며 황금과 은을 실으며,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나무꾼은 마차에 가득 실은 황금과 은을 가지고 숲속 연못으로 다시 돌아왔다. 마차가 연못 근처에 멈추자, 그는 조용히 내려서 주변을 살폈다. 숲은 여전히 고요했고, 마치 그에게만 허락된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고, 연못가에 다가갔다. 연못은 여전히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그는 스스로를 다잡으며, 마차에 실린 황금과 은 덩어리를 연못에 담갔다.


'풍덩, 풍덩'


황금과 은이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긴장과 기대감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연못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게 가능한 걸까...?’ 그의 마음속에는 의심과 두려움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그는 결심을 굳혔다.


그는 마차 옆에 옷가지를 하나씩 개어놓았다. 마지막으로 속옷을 벗어 차곡차곡 접어 두었다.


“자, 이제 가보는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천천히 연못에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그의 피부를 감싸며, 몸이 조금씩 물속으로 잠겨갔다. 물의 냉기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연못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서, 그는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려 애썼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가자, 나무꾼은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가벼운 전율처럼 느껴졌던 것이, 이내 몸의 일부가 가벼워지는 듯한 묘한 감각으로 바뀌었다. 그는 계속해서 물속으로 내려갔다. 머리까지 잠기자, 그 순간 세상이 형형색색의 빛깔로 물드는 듯한 환각이 그를 휘감았다.


잠시 후, 나무꾼은 천천히 물 밖으로 나왔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그는 서서히 눈을 떴다. 그러나 자신을 본 순간,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게...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다시 한번 연못을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는 손을 덜덜 떨며, 자신의 새로워진 모습을 확인했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숲속 연못에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연못 근처에서 희미한 속삭임과 함께 신비로운 형체가 떠다닌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도 그 연못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곳을 저주받은 장소로 여겼다.


그러나 그 연못가에서 홀로 방황하는 존재가 있었다. 투명한 비닐처럼 가벼운 몸을 가진 나무꾼,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나무꾼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연못가를 떠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룬 끔찍한 실수를 깨닫고 절망에 빠져 있었다.


투명한 비닐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비로소 자신이 탐욕의 대가를 치렀음을 깨달았다.


연못의 신비로운 힘을 잘못 이용한 결과,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다시 뭍으로 나왔을 때


그의 몸은 투명한 비닐이 되어 있었다.


그는 황금과 은의 비닐 포장을 뜯지 않고 담갔던 것이다.


‘아뿔사... 내가 그때 황금과 은의 비닐 포장을 뜯지 않고 연못에 담갔기 때문이구나...’ 그는 머리를 감싸며 후회에 찼다.


그렇게 연못가에는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더욱 퍼져갔고, 사람들은 그곳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유령이 과거의 나무꾼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탐욕의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는 진실을.



작가의 말


연못의 마법 같은 힘은 그에게 잠시 동안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 기회는 나무꾼의 내면 욕심에 의해 왜곡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과연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요? 

아니면, 탐욕이 개입하는 순간부터, 그 기회는 이미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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