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UIT INSPIRED BY GODS - 단편집 미히버스 수록작
1. 난관 폐쇄증
난관 폐쇄증이라고 했다.
의사는 말했다.
”지금 기술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남편이 조용히 나를 끌어당겼다.
2. 무화과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내 안의 어떤 것이 무너진 느낌을 받았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
그건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그 바램은 결코 크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무화과가 먹고 싶어.”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마트에 가면 살 수 있으려나?”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집 앞 마트에 가서 무화과를 발견했다.
나는 그 중 한 무화과를 들고,
향을 음미했다.
풀과 나뭇잎처럼 가볍고 신선한 향에
성숙한 과일과 꿀 향이 섞여 있었다.
약간의 나무와 흙 냄새도 함께 느껴졌다.
“우리, 입양하자.”
내가 말했다.
남편의 표정이 밝아졌다.
”결정 내린거야?“
3. 입양
우리는 한 여자 아기를 입양했다.
그녀는 무럭무럭 자랐고,
특히 남편을 잘 따랐다.
나는 그게 조금 불안했다.
‘남편이 나보다 딸을 더 좋아하게 되면 어떡하지?’
4. 성장
나는 가끔 잠든 아이의 방을 열어 그녀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천진하고 고요했다.
그 천진한 얼굴 너머에 숨겨진 감정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언제나처럼 내 마음속에 둔 감정은 견고한 벽이 되어 되돌아왔다.
그래서 그녀의 잠든 모습은 내가 차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5. 딸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
왠지는 몰랐다.
나는 그녀가 나의 모든걸 빼앗아가버릴 것만 같은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애는 다소 덤벙거리는 구석이 있었다.
하루는, 그 애가 내가 아끼는 화분을 깨뜨렸다.
“엄마, 미안해요.”
“이게 몇 번째니?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화분은 어머니가 나에게 준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분을 삭혔다. 나는 뒤돌아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왔다.
그 짧은 사이에, 그 애는 심지어 뒷걸음질치다가 발을 도자기 조각에 베이고 말았다.
그녀가 아파 울먹이기 시작했다.
‘누굴 닮아 저렇게 덤벙거리는지.’
그 애가 꼴도 보기 싫어졌다.
나는 빗자루를 쓸다가 그 애한테 그걸 넘겼다.
“얘, 너가 실수한 건 너가 치워라.“
그 애는 더욱 서럽게 울어댔다.
”엄마, 엄마.“
그녀는 내게 손을 뻗고 다가왔다.
나는 그 애의 징징거림에 결국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너는 내 딸이 아니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았다.
6. 아버지
‘너는 내 딸이 아니야.‘
내가 과거에 들었던 그 차디찬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그 이야기를 했던 건 나의 아버지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귀에 맴돌았다.
내가 그 말을 입 밖에 내던 순간, 어린 그 애의 마음 속에 상처가 얼마나 깊이 박혔을지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사랑해주고 싶었으나, 분노가 더 컸다.
내가 어릴 적 그토록 받았던 외면, 그 상처를 아이에게 결국 되물림하는 것 같았다.
7. 일상의 균열
그 애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그 애는 나를 피했다.
나와 그 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다.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남편은 눈치를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그 애, 우리 둘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고,
남편 앞에서는 그저 보통의 일상을 연기했지만, 이미 균열은 너무 깊었다.
8. 암묵적인 규칙
등교 시간이 되었는데 애가 나오지를 않았다.
‘분명 또 허둥대고 있을거야.’
이건 명백한 규칙의 위반이었다.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충분한 노력을 다하는 것.
그녀는 그걸 간과한 것이다.
나는 그녀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녀는 교복을 반쯤 입은채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가 무언가를 다급히 등 뒤로 숨겼지만,
무엇이든 항상 완벽하게는 못하는 성격답게,
방 안에는 많은 것들이 보였다.
침대는 피가 묻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투명한 비닐봉지가 올려져있었으며,
그 옆에는 책이 올려져있었다.
책에는 생리에 대한 내용이 펼쳐져있는 듯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은 술을 마신 아버지가 들어올 때면, 조심스럽게 문을 잠구었던 어린 시절의 나와 닮아 있었다.
나도 모르는새 눈물이 나왔다.
규칙을 위반한 쪽은 나였다.
딸이 초경을 혼자 처리하도록 엄마인 내가 방치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 우리 딸.
벌써 이렇게 컸구나,
엄마가 너무 오래 방황했지.“
그녀는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엄마.”
그녀가 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릎을 꿇고 침대 위에 놓인 휴지를 집어들었다.
“괜찮아, 아인아, 내가 도와줄게.”
내가 말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의 감정의 벽이 흔들렸다. 아인은 눈물을 닦아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9. 아들
몇 년 후, 의학의 발전은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난관이 막힌 나에게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 기술을 통해 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나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남편의 설득에 따라 이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 도하는 내가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10. 남동생
도하는 밝고 활달했다.
아인은 처음에는 그의 존재에 무심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을 바라보는 아인의 눈빛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도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나는 그를 보며 자연스레 미소 지었다. 아들과 나 사이의 친밀함은 아인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말
삶의 복잡한 감정과 관계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얻는 것이, 진정한 축복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