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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Oct 23. 2024

베터리

BETTERY - 단편집 미히버스(MIHIVERSE) 수록작

1. 배터리 측정 기계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사람이 있다.


배가 차도 먹기도 한다.


누군가는 정신적 허기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배고파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먹는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측정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기술은 그런 가운데 나왔다.


몸에 착용하는 작은 액세서리.


그 것은 팔찌일 수도, 반지일 수도, 렌즈일 수도 있다.


모두 배터리 측정 기계였다.


그 안에 작은 칩은 생체의 정보를 취합하여


스마트폰으로 그 정보를 전송한다.


스마트폰으로 ‘베터리’ 앱을 켜면,


수집된 다양한 내 몸에 대한 정보가 표시된다.


몸무게, 키, 호르몬, 영양분 균형 상태.


엡에 내장된 인공지능은 생활상을 추천해준다.


화면을 옆으로 스와이프하면, 여러 생활상에 대한 추천 정보가 표시된다.


운동을 더 하세요,


음식을 더 먹으세요,


잠을 더 자세요, 라고.


각 화면의 상단에는 배터리가 표시되어 있다.


스마트폰의 남은 전력량을 표시하는 배터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생체 활력 징후를 배터리 형태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 어느 날


어느 날,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곧바로 영양소 화면을 확인한다.


아침에 보이는 배터리 형태는 55%,


우유 한 잔을 먹으니 배터리가 조금 더 차기 시작한다.


60%,


이 정도면 오늘 하루 종일도 버틸 수 있다.


나는 보호자 기능으로 공유된 할아버지의 생체 징후 배터리를 확인한다.


3%이다.


마침, 할아버지가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마실 가기 전에 아침 먹고 가시라고 얘기했잖아요.”


내가 잔소리를 한다.


“예전처럼 배터리 성능이 좋지 않으시다니까요,


저랑 똑같이 저녁을 먹어도


저는 아침에 50%가 차있지만,


할아버지는 10%밖에 남지 않는단 말이에요.”


나는 말을 쏟아냈다.


“옆집 문방구 아저씨 기억나시죠?


사우나 좋아하시던 분이요.


체격도 좋고, 체력도 좋으시던 분이요.


아침에 사우나 하시다가 돌아가셨잖아요.


나중에 배터리 히스토리를 확인해보니,


다른건 배터리가 높았는데


영양소 배터리만 0%였단 말이에요.”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말한다.


“응, 뭐라고? 잘 안들렸다.”


나는 화면을 넘겨 할아버지의 청력 배터리를 확인해보았다.


’12%’


어제보다 5% 더 줄었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여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영양소 배터리가 3%에요. 


제가 아침 먹고 다니시라고 했잖아요.


이걸 좀 잘 확인하셔야 해요.”


나는 할아버지 앞에 휴대폰 화면을 흔들었다.


할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응? 아침 먹었어.”


나는 할아버지의 영양소 배터리를 다시 확인했다.


‘2%’


아까 전보다 1% 더 줄어든 수치이다.


“일단 이것부터 드세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우유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그걸 꿀꺽꿀꺽 삼킨다.


나는 얼른 영양소 배터리를 다시 확인했다.


‘2%’


배터리 수치는 그대로였다.


그제서야, 나는 다급해졌다.


“할아버지, 얼른 병원 가야해요.


배터리가 방전되고 있어요.”



3. 병원


나는 할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응급실에 들어갔다.


나는 의사를 만났다.


“할아버지 영양소 배터리가 2%에요.”


나는 앱 화면을 확인했다.


“아니, 지금은 -1%네요?”


나는 당황했다.


책상 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던 의사가 말했다.


“신속 스캔이 모두 끝났습니다.


결과가 도착했네요.


오늘 아침 할아버님의 배터리는 8%까지 떨어졌어요.


우선 100% 링거를 좀 놓아드리고 있으니, 곧 배터리가 차실 거에요.”


나는 서둘러 SNS에 들어갔다.


‘오늘 아침에 우리 강아지 영양소 배터리가 마이너스로 나왔는데, 좀비 되는거냐?’


‘이것 때문에 아침부터 난리였다.’ 


‘앱 업데이트 후 오류가 있었다고 하네요.’ 


그 때 공지사항 알림이 표시되었다.


‘2026년 오전 5시부터,


치명적인 시스템 오류가 발견되어 긴급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당 오류는 영양소 배터리 잔량이 10% 낮게 측정되는 문제로,


자사 제품의 구형 모델에서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복구가 완료되면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사용에 불편함을 드려 죄송합니다.


베터리 주식회사.’


나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휴, 오류가 있었다고 하네요.’


의사는 내게 말했다.


‘아침부터 심장이 철렁하셨겠어요.’


의사는 앞에 놓인 브로셔를 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베터리 사에서 새로 나온 배터리 측정 모델인데 이번 기회에 업그레이드 해보세요.


저희 병원과 제휴를 맺어서,


50% 저렴하게 구입 가능하세요.


그리고 검사 결과 청력이랑 시력도 많이 떨어지셨던데, 


이번에 새로나온 Ear 2.0과 Eye 2.0 모델로 바꾸시는게 어떨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부되나요?”



작가의 말


데이터에 의존하는 삶에서, 결국 사람 자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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