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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Oct 23. 2024

나의 황금 월계관

MY GOLDEN LAUREL WREATH - 단편집 미히버스 수록작

어느 새벽,


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


거리에 사람들은 없었다.


맨홀뚜껑 위에 새의 깃털이 떨어져있는것이 보였다.


나는 이상한 마음이 들어 그 깃털을 들어올려보았다.


들어올린 그 것은 무척 길고 두터웠다.


‘이렇게 큰 새의 깃털이 있었다니?’


나는 생각했다.


“인간.”


그 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 앞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어 도로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 사람은 없었다.


“내가 너를 불렀다.”


그 새가 검은 눈을 빛내며, 부리를 열어 사람의 소리를 냈다.


“깜짝이야, 말하는 까마귀잖아.”


내가 말했다.


그 새가 내게 점점 다가왔다.


”그 깃털, 나에게 줄 수 있을까?“


그가 말했다.


“이 깃털?“


나는 물끄러미 그 새와 깃털을 번갈아보았다.


”주는건 어렵지 않지, 사진만 찍고 말이야. 이런 깃털은 처음 보았거든.“


나는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그 손에 든 깃털을 찍었다. 사진 가장자리에 그 새의 검은 눈이 함께 찍혔다.


”그런데 이 깃털을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한데?“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깃털은 세계의 곳곳에 있어,


한라산 정상에도,


백두산 정상에도,


넓은 바다의 수면 위에도,


호수 위에도,


한강 위에도,“


그가 말을 이었다.


”어떤 나뭇가지 위에 있기도,


때론 맨홀뚜껑 위에 올려져있기도 하지,“


그가 내 손에 들린 깃털을 쳐다보았다.


”그건 한 새가 날면서 떨어뜨린 깃털이야.


나는 그걸 모으고 있지.”


그가 말했다.


”이 깃털의 주인은 크기가 무척 큰 새겠구나.“


내가 깃털의 크기를 가늠해보며 말했다.


”그래, 그건 세계 각지에서 발견돼. 


하지만, 무척 귀하지. 


나는 쉬지 않고 세계를 다니며, 그 깃털을 찾고 있지만,


어쩔 때는 몇 해동안 구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


그가 답했다.


“그런 거라면, 이 깃털을 맞바꾸는게 어떨까?”


내가 제안했다.


“무척 귀한 깃털이라면, 그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두운 하늘 너머로 사라진 그는,


곧 입에 나뭇가지를 하나 물고 돌아왔다.


그가 내게 잎이 주렁주렁 달린 그 가지를 내밀었다.


“올리브 가지야.”


그 새가 말했다.


“이 올리브 잎들이랑 깃털을 맞바꾸자고?”


내가 물었다.


“올리브 잎은 우리 세계의 통화로 쓰여.“


그가 말했다.


”인간 세계에서 올리브 잎은 그저 나무에서 따다 쓰면 되는 거야.“


내가 말했다.


“너희 인간들이 주인 있는 이파리를 뜯어가기도 하지. 하지만 그건 올리브 나무가 상관하는 일이야.


우리가 맡긴 올리브 잎의 양은 올리브 나무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올리브 나무가 있는 어느 곳에 가서든지 나뭇잎을 인출할 수 있지,“


그가 덧붙였다.


“그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이파리야.”


”그러니까 너희 새들은 올리브 나무를 계좌로 쓰고 있다는거네.


그럼 이 정도면 가치가 어느정도 되는데?”


내가 물었다.


“이 동네 전체 구역을 가질 수 있는 정도지.”


그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어, 너가 이 동네 전체를 준다고 하더라도, 새가 준 권리를 국세청에 신고할 수 없어.


이미 이 동네에는 땅 주인들이 정해져있단 말이지.


이 것보다는 황금이나, 보석같은 거 있잖아.


그런 걸 원해.”


나는 말했다.


”말했다시피, 그 잎사귀들은 지금 내 전재산이야.“


그가 말했다.


그는 내 어깨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내 손에 놓인 올리브 가지를 부리로 잡고 동그랗게 말기 시작했다.


가지의 끝과 끝이 만나자, 그 접합부위를 두 발로 붙잡고는, 부리를 이용해 가지를 꼬기 시작했다.


“월계관이네.”


내가 말했다.


“가지를 꼬는 건, 우리 세계에서 약속의 증표에 해당돼.


그걸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하나의 소원을 이룬 뒤에,


그 가치에 맞는 황금 면류관으로 바꾸어주겠다.“


그가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그 새가 만들어준 면류관을 찍었다.


이번에도 그 새의 검은 눈동자와와 몸 한쪽 면이 같이 찍혔다.


그러곤, 나는 그에게 깃털을 내밀었다.


그가 만든 면류관이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깃털을 꽁지깃에 꽂았다.


그의 몸보다 훨씬 긴 깃털이 살랑살랑였다.


그가 날아오를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을게, 깃털을 모으는 이유가 뭐야?“


그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내 앞에서 정지 비행을 한 상태로 말했다.


“이 깃털은 봉황의 깃털이란다.


이 길고 커다랗고 가벼운 깃털로 내 몸을 감쌀거야.


봉황은 그렇게 만들어지는거란다.


그러고 나면 이 세상 위로 날아오르겠지,


일반 새의 날개로는 날아오를 수 없는 높은 곳으로.”


그가 하늘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그 곳에는 너가 말한 황금, 보석으로 가득찬 세상도 있다고 해.


고맙다, 인간.“


그가 말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크게 소리쳤다.


“정말 끝으로 하나만 더, 지금까지 그 깃털을 얼마나 모은 거야?”


그도 쩌렁쩌렁하게 답해주었다.


“거의 다 모아가,


지금까지 모아둔 것은 은행나무에 맡겨놨단다.“


그의 말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내 귀에 새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나는 조금 더 걸어 이전에 본 적 있던, 길가의 화단에 심겨진 올리브 나무로 다가갔다.


한쪽 가지가 꺾여있는 모습이, 그 새가 다녀온 나무로 보였다.


나는 그 식물의 남은 가지 부위에 내 월계관을 걸어두면서 말했다.


“자, 올리브야. 내가 월계관 맡긴 거야.“


그 후로 며칠동안 퇴근길에 그 거리를 지나갈 때,


월계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햇빛이 월계관을 비추어 황금색으로 보였고,


나는 그 때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어느 날, 바람에 날라간 것인지, 동네 아이가 가져간 것인지, 그 월계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미소 지었다.


올리브 나무가 내가 월계관을 맡긴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새가 황금빛 월계관을 물고,


언젠가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그 올리브 나무를 쓰다듬었다.



작가의 말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들이 있고, 그 약속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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