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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Aug 10. 2024

살아난 방

연극 나라의 앨리스

문득 앨리스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크리스털 병이 미묘하게 움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크리스털 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안에 담겨 있던 액체가 한순간 출렁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그 순간, 방 안의 탁자, 의자, 액자, 그리고 벽지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했다. 그것들은 마치 사람들처럼 움직이며 연기해내는 작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탁자는 마치 기지개를 켜듯이 팔과 다리를 쭉 뻗고 일어섰다. 그 팔과 다리는 유난히 길었고, 몸통은 넓적했다. 탁자였던 그 존재는 이제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어 긴 팔다리와 길쭉한 얼굴을 가진 다른 사람이 일어섰다. 그는 방금 전까지 앨리스가 앉아 있던 의자였다. 그 역시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고, 그의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기묘했다. 그가 일어서는 순간, 앨리스는 의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피부는 나무결을 닮은 매끄러운 질감이었고, 그의 눈은 깊고 현명해 보였다.


액자를 이루던 두 사람의 팔이 분리되었다. 한 사람은 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 있었고, 다른 사람은 벽지였던 사람들의 머리 위에 누워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듯이 부드럽고 유려했다. 벽지였던 것들은 이제 꿈틀대며 팔을 붙이고 꼿꼿하게 서 있는 많은 사람들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섬세한 패턴으로 뒤덮여 있었고,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색감을 띠었다.


전신거울이었던 것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던 두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분리되었고, 거울 뒤에서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프레임 뒤에 숨어 있던 빼빼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머리는 짧게 자른 검은 머리였다. 그는 한 손에는 금색 머리카락 가발을 들고 있었다. 그 가발은 앨리스의 머리 색깔과 똑같았다. 그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가발을 들어 올렸다.


이내 방 안의 모든 것이 생명력을 얻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 속 풍경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초록빛 들판은 여러 사람들의 손가락이 되어 현실감 있게 흔들렸고,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춤을 추듯 흔들렸다. 의자였던 사람은 방 한가운데로 나아가더니, 마치 연극의 무대를 준비하는 배우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기다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벽지였던 사람들은 이제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벽에서 떨어져 나와, 위엄있게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피부는 벽지의 패턴을 닮아, 멀리서 보면 여전히 벽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들은 방 안을 돌아다니며,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용하고 부드러웠지만, 그 움직임에는 확고한 목적이 담겨 있었다.




작가의 말


그 모습은 현대무용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자유롭고 다양한 광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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