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Aug 10. 2024

타블로 비방

연극 나라의 앨리스

사람들과 앨리스가 도착한 곳은 텅 빈 검은 공간이었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공간은 조용한 기대감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의 중요함을 알고 있었고, 인간 건축의 걸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먼저 갈색 옷을 입은 일군의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빠르고 조직적으로 움직여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동작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잘 조율되어 있었다. 앨리스는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 벽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겹쳐 책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은 책장의 선반과 구획을 이루었고 각자의 위치가 신중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이들은 인간의 몸으로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두꺼운 손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리허설을 하듯 그들은 자신의 손을 서로 겹쳐 책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손을 펴고 오므리며 페이지가 넘어가는 듯한 동작을 했다. 마치 책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일 것처럼 그들의 동작은 정교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단어가 되고 제스처 하나하나가 문장이 될 것만 같았다. 검은 공간은 어느덧 사람들로 채워져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의 장이 되었다.


앨리스는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매료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눈부신 색상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들은 서로 다른 형태와 구조물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나무를, 어떤 이들은 꽃을, 어떤 이들은 물결치는 바다를 표현하고 있었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동작과 제스처로 자연의 요소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한 무리는 서로 손을 잡고 액자 속 그림의 거대한 나무의 줄기를 형성했다. 그들의 몸은 나뭇가지가 되고, 손끝은 잎사귀가 되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흉내냈다. 다른 한 무리는 바닥에 누워 서로의 몸을 겹치며 꽃밭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손은 꽃잎이 되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앨리스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몸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는 물결치는 바다가 앨리스의 앞에 나타냈다.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며 바다의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하나의 큰 물고기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손끝과 발끝이 파도의 일렁임을 표현했고, 몸 전체로 바다의 깊이와 넓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앨리스는 그 장면을 보며 마치 실제 바다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풍부해졌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구조물을 만들고, 이전의 것을 해체하고, 다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며 끝없는 창작의 과정을 이어갔다. 앨리스는 그들의 창의력과 협동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랐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몸을 겹치며 거대한 서재를 쌓아 올렸다. 서재의 벽은 사람들의 몸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손과 팔은 책장의 선반이 되었다. 손을 펴고 오므리며 책을 흉내내던 사람들은 선반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인간 책들은 책장을 가득 채웠다. 앨리스는 서재의 중심에 서서 이 거대한 예술 작품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꼈다. 그녀는 큰 자부심을 느꼈다. 그녀의 심장은 벅찬 감동으로 두근거렸고, 그 감정은 온몸을 타고 흐르며 그녀를 뜨겁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숨소리와 움직임이 하나로 어우러져 서재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서재가 완성되자, 공간은 다시 한 번 조용해졌다.



작가의 말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은 인간의 창의성과 협동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개별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을 창조해 나가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