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달리기, #니체, #위버멘쉬, #운동

by 비루투스

나는 어렸을 때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군것질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6학년 때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고, 내 별명에는 '돼지'란 꼬리표가 항상 붙어 다녔다. 100미터를 달리면 22초, 당연히 체육은 낙제, 체력급수는 5급이었다. 그러했던 내가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사소한 유 때문이었다.


쫄티라는 것이 유행했을 때. 옷이 들어가지 않아 입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이 계기가 되어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에는 달리기를 하고 저녁에는 팔 굽혀 펴기와 복근 운동을 했다. 처음에는 온몸에 알이 배기고, 힘들었지만 살을 빼겠다는 열망이 나를 꾸준하게 만들었다. 고3 때는 몸에 근육도 붙고 체형도 어느 정도 만들어졌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아토피가 사라지면서 외모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가오'가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운동 횟수와 강도를 줄이지 않았다. 일단 운동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그때는 하루에 3시간 이상은 운동을 했었고, 군대에 가서는 힘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체육대회에서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세 개 종목에서 1등을 하는 사람에게 포상휴가를 주는 기네스 대회가 열렸다. 나는 푸시업과 윗몸일으키기에서 1등을 했고, 그다음에 열린 대회에서는 내 기록을 내가 깨게 되었고, 중대원들에게 괴물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보고 돼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제대하고 나서는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집에다 바벨을 비롯한 운동기구들을 구비했다. 그런데 그것은 커다란 패착으로 귀결되었다. 어느 날 바벨을 한계치까지 들어 올리다가 힘이 풀려, 얼굴에 떨어뜨리게 되었고, 혼자서 끙끙거리며 아랫배에 받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을 보니 흰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치아의 끝부분이 바벨에 부딪쳐 깨진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도파민이 분비되어 무식하게도 남은 횟수를 다 채워버렸다.


운동을 마무리하고 잠을 자려는데 온몸에 열이 나고 바늘로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곧 엄습하기 시작했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아파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며칠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파스 붙이고 버티다, 통증에 용하다는 한의원에 다녔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마도 바벨을 들다가 척추도 다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 정도가

더 걸렸다.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 어깨가 항상 저렸고 무릎은 걸을 때마다 아파 보호대를 차지 않으면 통증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노량진, 그 콩나무 시루 같은 곳에 있었으니 몸이 좋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면 스트레칭을 해서 몸을 풀어줘야 했다. 그때 어떻게 내가 버티고 공부할 수 있었는지 가사의하다. 아마도 두 번 다시는 그렇게 못할 것이다. 나는 당시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폴레옹이 그러다 세인트 헬레나로 유배당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그 상황을 이 악물고 버텼고 , 그래서 지금은 치아가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일찍 시험을 접고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워 보였고, 나는 중간에 물려있어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인생에 가장 귀한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아마도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을 나처럼 몸으로 실현한 사람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날 헬스장 트레이너가 언제부터 몸이 아팠냐고 물어봐서 다친 지 몇 년 지났다고 말하니, 그 정도 시간이라면 이미 다친 근육이 다 회복되었으니 보호대 차지 않고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고 그러면 왜 통증이 계속 생기냐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트레이너의 대답은 이미 상처는 회복되었는데, 근육이 아닌 보호대에 의지하려고만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한동안 보호대를 차다가, 몸이 찌뿌둥해서 인터넷을 보고 '쟁기자세'를 따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척추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고, 걸을 때는 이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이후로는 운동의 전ㆍ후에는 항상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고 있다.


부상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가벼운 무게인데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벨을 다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던 운동을 접어야 했고 대신 맨몸 운동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야만 했다. 그래도 두 발과 두 다리로 다시 달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렸다.


달리기 전에는 스트레칭도 하지만 고관절은 확실히 풀어주어야 한다. 오랜 좌식에 몸이 경직되면 부상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근육운동을 꾸준히 주어야 달릴 때의 충격도 완화시키고 속력을 더 낼 수도 있다. 코어 근육은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하체 근육은 충격을 분산시켜 관절을 보호한다. 그리고 가슴 근육이 발달하면 속력을 더 낼 수 있다. 요즘에 러닝이 유행하고 있지만. 필요한 준비 없이 몸도 제대로 안 풀고 무작정 달렸다가는 온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 왕가위의 영화처럼 슬플 때 온몸에 수분이 빠질 때까지 달렸다가는 분명 골병이 들 것이다.


달릴 준비가 끝나면 헤드셋을 끼고 뮤직 앱에서 속도가 빠른 메탈 음악을 튼다. 처음에는 조깅 수준으로 뛰다가 다리에 탄력이 붙으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Rising force'가 울려 퍼지면 폭을 넓히고, 달리는 속도를 더 올려 버린다. 그때 는 사자후를 내지르고 내 속의 짐승은 포효하기 시작한다


러닝의 정점은 '악마의 계단'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드릴로 올라가는 것이다. 힘들다고 도중에 쉬어버리면 힘이 쑥 빠져버려 걸어가기도 힘들다. 이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이더라도 끝까지 버텨야만, 바다가 보이는 데크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목적한 곳에 도착하면 갑자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다. 그때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면, 지고 있는 석양이 회색빛 바다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백련산 입구, 나는 석양을 보기위해 여기까지 쉬지않고 뛰어왔다.


위대한 정오라는 것은, 인간과 짐승이 초인 사이를 연결하는 길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을 때이며, 저녁을 향해 가는 자신의 길을 자신의 최고의 소망으로 축하하는 때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로운 아침을 향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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