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에는 공항에는 승객들로 미어터졌고, 근무가 끝나고 나면 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공항철도 타고 서울 쪽으로 갈 때는 좋았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만큼 각오를 해야 했다. 서울은 가는 곳마다 사람으로 가득 찼고, 독서모임에서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는당연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당연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가깝기 때문에 만날 수 없었고, 우리가 원했던 여유와 공간은 거리두기와 자가격리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직업상 너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사람이 한적한 거리를 걷거나, 조용한 장소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자유가 구속처럼 덧씌어졌을때, 형벌처럼 받아들여졌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않는 구멍을 만들었고, 유명한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그 구멍을 들어다 보면서 의미를 끌어내려고 노력해봤지만. 그럴수록 그 공백 속에 메아리는 공허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팬데믹은 마치 도슨트 없이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형태가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함. 관람객에 대한 배려 없이 '무제'라고 붙여놓은 작가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들이 난무하는 전시회에 온 것 같았다.
태풍으로 누더기가 되어버린 설치미술
주어진 공백 속에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곳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보는 사람을 텅 비게 만드는 것 같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동안 속절없는 시간은 그냥 지나가버리고, 나는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듯하다.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어떤 교훈과 의미를 끌어내기보다, 박물관에서 화석 속의 생명의 흔적을 찾는 것처럼 죽어버린 활자들을 훑는 기분이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공백의 크기는 커져갔다. 점점 더 바라던 것이 멀어져 가고, 피하고 싶은 것들이 그 가깝게 느껴지는 이 생각과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니체는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고, 영원회귀를 스스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 같은 속인이 그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음이 심란해져서목적지도 정하지도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넘쳐흘렀던 번화가들은 유령도시처럼 비어있었고 텅 빈 공간의 크기만큼 내 기분도 같이 우울해졌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다 네이버에서 하고 있는 블로그 캠페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일기를 쓰면 '갓생'이 된다는 것이다.
'갓생'이라! 그 단어를 보았을 때, 이 공백의 공간들에 아직까지 내 안에 남아있는 기억과 감정들을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글들을 위주로 적어왔기 때문에, 글을 쓸 때는 클래식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의 조용한 공간을 필요로 했지만, 그러한 고요함은 오히려 적막감으로 느껴져 잡스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들을 찾아가 보고 싶어졌다.
읽었던 책을 매개로 삼아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여정 속에서 느껴졌던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지하철에서 책 읽는 남자(지책남)'라는 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신에게 있어 공백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소음 가운데서도 의외로 글 쓸 때 몰입이 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적는 글이라 그런지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과몰입하여 목적지를 지나치기가 일쑤였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곳이 아닌 곳에서 한번 차를 한번 놓치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또 몰입하는 경우 또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쓰인 글들을 편집하면서, 글을 묘사하기에 필력이 딸린다고 생각하거나, 문장을 부각하고 싶을 때는 사진을 삽입하여 부연설명을 달았다. 사진이 나타내는 의미는 그 사물의 본래 의 뜻과 다른 것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의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토대 위에 주관적인 해석을 덧씌운 것이기 때문이다
'지책남'을 쓰면서 갔다 온 곳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를 말해보라면 망설임 없이 종로구라고 말할 것이다. 이곳은 아직까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는 곳이라, 구시가지의 모습이 남아있고, 그 위에 현대적인 모습도 어울려져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골목 사이에 숨어있는 미술관과 핫플을 찾아다니는 것은 쏠쏠한 재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종로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곳은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이었고, 이곳의 특징은 대조적인 시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석파정은 원래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으나, 일제강점기 후 쓰레기장으로 버려져있던 곳을 안병권 회장이 매입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한 후 서울미술관 건물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덕수궁이나 경복궁 근처에도 미술관이 있긴 하지만, 석파정처럼 현대미술과 고풍의 정원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는 곳은 드물 것이다.
석파정은 그렇게 공백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나도 그렇게 여러 가지 의미들이 이질적이면서도 함께 어우러지는 글들을 쓰고 싶어졌다.
석파정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의미들의 조화이다.
석파정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석파정과 같이 위치하고 있는 서울미술관에 있는 미술품들을 먼저 감상하고 나서 정원을 거닐 것을 적극 권유하는 바이다. 필자가 석파정에 처음 갔을 때는 가을 단풍이 울긋불긋 빨갛게 물들어져 있었고, 흥선대원군의 별장 옆에 있는 붉은 소나무와 잘 어울려졌다. 완만한 경사길을 천천히 걸으며 머릿속으로 전시회에서 받았던 감상들을 하나씩 곱씹다 보니, 뭔가 구체적인 것은 아니지만, 글에 대한 맥락들이 조금씩 큰 틀에서 정리되어갔다.
글을 쓰다가 보니, 책을 출판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직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 글들이 책으로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나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에게, 그동안 고민했던 공백의 의미였다고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