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2박 3일 동안 인권감수성 세미나가 있어 용인에 있는 한라 연수원에 가게 되었다. 나는 인권의 개념과 연혁 부분을 맡아 강의를 전담하고 있는데, 일 년에 4번 정도 스케줄이 잡혀있다. 이번에는 개편될 인권교재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기 위하여 참가하는 것이다.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인권은 대학에서 전공한 법학과 접점이 있는 분야였고, 교양으로 여성인권 대한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공무원 교육에 사용되는 인권교재는 교육을 받게 되는 공무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법집행대상에 대하여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민간연구소에서 용역을 맡아서인지 몰라도시각이 편향되어 있다. 그래서 인권교육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무를 담당하는 우리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를 통해 행정을 집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과 형평성이 우선이고 개별적인 사항은 그것을 검토한 후에 다루어질 문제이다. 그런데 인권은 처음부터 개별적인 사항을 집단적인 법익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마찰이 빚어지게 된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인권의 역사는 권리의 투쟁 관계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인권운동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면서 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이데올로기처럼 고착화되어, 권리만을 주장하는 상황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인권이 인권을 형해화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공무원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인권강의의 정식 명칭은 '인권감수성' 강의로 우리처럼 법집행을 담당하는 공안직 공무원이 상대방에게 가져야 할 의식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민원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인권강사과정을 이수하고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참고할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국내에서 출간된 도서들은 외국에서 번역되는 서적들보다 가치 편향적이며 논리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었고, 자료 판단에 대한 일관성에서 문제가 있었다. 그러한 까닭은 철학과 역사 그리고 합리성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필요한 부분만 붙여 넣기 하거나 그 중요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나마 객관적인 조효제 교수의 책을 중심으로 헌법과 철학에 관한 지식을 가미하여 맥락을 잡을 수 있었다.
인권의 개념은 기독교의 '천부인권' 사상 즉,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개념으로부터 나왔다. 루소는 이를 더 발전시켜 일반의지를 주장하면서 정념이 아닌 이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동선에 대한 의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민이라면 그러한 덕목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시민이라는 개념은 부르주아 집단의 입맛에 맞게 퇴색된 것에 불과하다며 이에 반발하였고 국가마저도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을 보호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여 혁명을 통해 시민사회를 극복할 것을 제안했다.
첫날 시민운동을 하는 교수님에게 인권교육을 받았는데. 그분은 이런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강의를 진행했고, 뜬금없이 마르크스 이론이 나왔다. 물론 시민이 시민답지 않으면 비판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시민 개념 자체가부인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우리는 모두가 프롤레타이아가 되어야 하는가? 또한 차별금지법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소수의 사람만이 반대하고 80%는 찬성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데, 내 관점에서 그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법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유의 영역까지 강제적인 것으로만 다루어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취지에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수혜가 되는 부분은 다른 쪽에서는 손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익과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을 법으로 규정하여버리면 더 큰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적어도 어떤 것을 비판하려면 그 대상을 충분히 숙고한 후에 발언해야 하고, 원칙적인 것을 먼저 거론한 다음에 비판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예외적인 것을 원칙적인 것으로 환원시켜버리는 논리가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의심스럽다.
어떤 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다음날 강의에서는 헌법과 인권의 관계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헌법에서 다루는 인권을 다뤘는데 방어적 민주주의를 통해 권리의 한계를 논한 후 인권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수형자 사생활 침해 문제에 관한 것을 예시로 들었는데 이른바 '신창원 CCTV'사건이다. 내가 알기로는 신창원은 강도치사를 저지른 후 8번 탈옥한 전력이 있다. 한 번의 자살기도 후 오랫동안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았는 데로 CCTV로 20년 가까이 감시하며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다.즉, 이러한 케이스도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논리이다. 그 논거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시대상이 된 케이스를 들었다. 그러나 신창원은 강도치사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양자는 유사할 사항이 아니다. 어떻게 정치범과 살인죄를 같은 법익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수단의 적합성을 따져보기로 하자. 일단 CCTV는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특별 권력관계상 수형자는 영조물 이용관계에 있어 일반시민과 다른 지위에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기본권이 제한되는 것이 법리이다. 인권의 근간이 되는 사회계약론의 이론에서는 신창원은 동료 시민의 법익을 침해하였기 때문에 계약위반을 하게 되어 법으로 처벌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형기를 마칠 때까지 사생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사생활도 중요하지만 그가 저지른 위반한 법익이 더크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자살시도 경력도 있기 때문에 그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밀착 계호의 필요성도 인정된다. 그런데 왜 인권위는 이런 논리를 펴는 것일까? 이는 극단적으로 인권만을 극단적으로 표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헌법에서는 기본권의 보장과 제한 그리고 침해라는 개념이 있고 그러한 구분이 명확하다. 그런데 인권에서는 제한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억지스러운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 균형과 조율도 그만큼 중요하다.
인권도 여러가지 가치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법익 균형성을 고려할수밖에 없다.
나는 인권운동가들이 공무원들이 인권감수성이 모자란다는 비판을 하기 전에, 해당 사건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고, 사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법적 감수성을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엉뚱한 논리로 법을 호도하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 될 수 없다. 적법한 업무까지도 인권침해로 매도해버리면 행정력 낭비 때문에 정작 구제되어야 할 인권이 방기 되는 결과가 생겨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을 적극 검토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행정의 적법 여부를 제대로 검토하는 것이 순서이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피집행자'들에게 까다로운 요건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권을 표방한다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법리를 따져본 후에 비판할 것을 권고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것이 인권인가? 아니면 그것을 빙자한 권력추구인가?
인권운동가들은 세계 인권선언을 근거로 어떠한 진리보다도 '인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데, 인간을 중심으로 하면 가치의 기준 자체가 모호해져 버린다. 왜냐하면 그들이 강조하는 인간은 '휴머니즘'에서 말하는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특정 대상들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에서는 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존속에 필요한 가치들을 인간 존중이라는 이념으로 묶고 있다. 헌법에서 말하는 인간은 보편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헌법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불가피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그러한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다. 그러한 이유는 모든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타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이기적이기도 하다.
그들의 기준대로 '인간'에만 방점을 찍어버리면 기존의 법률 체계가 흔들리게 되어버린다. 어쩌면 그것이 목적인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든다. 그러한 논리에 의하면 공무원은 같은 인간이라기보다 국가의 대리기관에 불과하고, 인간에 대한 침익적 행정을 담당하는 주체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공무원이 수익적 행정도 같이 담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요즘 들어 공무원들도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그럴 때도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기관에만 권리구제를 요청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리에 따르면 공무원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도 이러한 취지의 발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학문이라는 것은 종합적인 것을 먼저 파악한 후에 연결성을 염두에 두고 부분을 검토하는 것이 순서이다. 인권이라는 한 분야만을 강조하고 그 틀에다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하면 '어그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인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강자의 논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 니체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도덕은 강자의 필요성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그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랑. 동정. 연민. 이익 같은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요소들을 도덕이라고 말한다. 논리만을 강조하는 것만큼 감정만을 부각하는 것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다. 모든 악은 편향성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공권력이 합법성에만 몰두하게 되면 또다시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념은 가치판단과 균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신념이 되는 것이다.대한민국은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한 실력행사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이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법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가치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상대방과 타협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 법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기존의 체제와 충돌하고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그 가치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미가 된다.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즉, 그들의 가치관이나 이익과 부합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법은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율의 과정이 없는 일방적 선언은 강자에 대한 약자들의 질투심, '르상티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받아질 수밖에 없다.과연,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는 나라에서 철학과 예술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사회주의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요소이고 자본주의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기준이나 이념도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뒤흔들 수는 없다.우리에게는그런 식의 제로섬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포지티브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진정한 인권에의 호소만이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어떤 호소의 말들'의 저자인 최은숙 인권위원회 조사관이 강의를 맡았다. 그분의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 때문에최대한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해야 하고, 설사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호소를 들으려는 노력들이 사회를 보다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안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법은 사람들을 규율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도 '동정', `연민'같은 감정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은 최대한 보장하고 구제해주는 것이 그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법은 평균적인 의식을 가진 시민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소수자 보호에 취약한 부분이 있다. 법집행이 행정편의에 불과하거나 가혹한 것이라고 보인다면. 그때 인권은 법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철저히 비판해야 하며, 그것은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인권 주체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최은숙 조사관의 강의는 분명, 마음에 울리는 지점들이 있었고, 인권감수성이 공무원에게 왜 필요한 것인지 공감할 수 있는 강의였다.
인권은 중요하지만 그 간극을 조율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러한 딜레마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인권의식을 제고하는 것이 인권 내부강사 과정의 목표이다. 인권강사를 한다고 해서 표면적으로 크게 메리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강의를 준비하면서 관점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서의 카테고리가 인권의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글쓰기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요즘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이 책은 알려진 대로 위험한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논리가 일관성 있고 명쾌하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인권적으로 어떻게 풀어서, 강의에 적용할 수 있을지 더 고민해봐야겠다.그리고 다음 교재는 일방적인 주장보다 우리의 입장도 반영되어 상호 간에 균형을 이루는 내용들이 제대로 다루어진 것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