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야간근무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스케줄이 바뀌어서인지 몰라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새벽 근무를 마치긴 했지만 영 몸이 찌뿌둥했다. 집에 도착하면 아침에 푹 자고 점심때 책을 읽으려 했지만. 선잠에 뒤척이다가 축 처져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만 싶었다. 그렇게 퍼져있을 때마다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이러다 보면 유튜브를 보게 되고, 보통 하루를 망친다. 오늘 같은 날은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나가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도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조양방직' 카페를 언급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그곳은 강화도에 있었다. 강화도라! 생각나는 게 고인돌과 화문석밖에 없는 곳이었는데, 놀랍게도 인천 관할이다. 공항철도 타고 버스로 갈아타면 도착하는데 2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미지의 도시로 떠나는 데에 왕복 4시간이면 나쁘지 않은 거리라고 생각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된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지하철과 달리 버스에서의 독서는 집중하기 어렵고 눈에 피로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는 귀에 너무 거슬리고, 어렵게라도 집중하다 보면 목적지를 지나가기 일쑤다. 지하철은 반대편에서 기다리면 다음 열차가 금방 오지만, 버스는 한번 놓치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타는 것을 꺼리는 편이며, 만약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된다면 '마이카'를 구입할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일단 자리에 앉게 되면 습관적으로 책을 꺼내보게 되는데, 제목이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로 알려진 에릭 와이너이다.
이 책은 종교를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라도 의탁하고 싶은 마음에 종교별로 순례를 다니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나도 그러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제목에 흥미가 생겼다. 저자처럼 외관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말 못 할 고민들이 있고(저자는 신경증과 우울증으로 고민하고 있다.) 마음을 터놓을 데가 없어 기껏해야 정신과에 상담을 할 뿐, 혼자서 고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이 산업화되고 규격화되어가면서 예전보다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것들이 점점 걷혀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이 가지고 있던 신비함은 퇴색되어갔고, 신에 대한 경외감 또한 옅어져 버렸다. 그럼으로써 무겁게 다가왔던 구속들은 사라졌으나 동시에 중심을 잃게 되었고, 인간은 스스로를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시작된 저자의 시도는 기행이 아니라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간절함으로 다가온다.그는 자신의 영혼을 '드라이브'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오늘처럼 컨디션이 별로인 날은 복잡해진 마음을 풀어내고 몸을 가볍게 해 줄 무언가가 내게 필요하다. 한동안 종교에 의탁하였고 교회란 곳을 다니기도 했으나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정치적으로 되어버린 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환멸뿐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종교의 필요성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장점은 마음을 비우고 몸을 가볍게 만들어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사실 어떤 행위든 자신을 잃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은 우리가 행복한 상태일 때 느끼는 그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그러한 기분을 만들어줄 리추얼로서 한 번씩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장소에서는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몰입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도착한 곳은 예전에 조양 방직이라고 불렸던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베이커리 카페이다. 힙한 카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은 앤티크 한 소품들과 폐품 또는 고물로 불릴만한 것들을 적절히 변형하고, 배치하여 폐건물을 장식했다. 초록색 식물들은 드라이한 건물 외관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조명들은 운치를 더해주며,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300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세워진 오래된 건물에서, 나는 철없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이곳저곳을 탐사하고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배치는 필자에게 신선한 감각을 자아내게 했다.
지금 내가 카페에서 다루고 있는 책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하루키 단편집이다. 이 책은 얼마 전에 영화화된 '드라이브 마이카'라는 단편소설로 시작된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가후쿠라는 한 중년 배우가 자신의 차를 몰아줄 운전자로 미사키라는 여성을 뽑았고, 그녀의 운전실력과 인간됨을 인정하게 되면서 와이프의 외도 사실을 터놓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미사키를 통해 상처를 회복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이 짧은 단편을 영화화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는 단편들을 별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각각 개연성 있는 단서로서 하나의 작품 속에 녹여냈다고 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러한 관점 속에서 작품들을 파악하기 위해 일단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맥락으로 잡고 나머지 작품을 그 안에 대입해보았다.
<예스터데이>에서는 삼각관계를 추출하였다. 이러한 플롯은 <상실의 시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각구도는 완전성을 상징하지만 한 축이 붕괴되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 주인공의 친구 기타루는 기발한 생각과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로서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온 소꿉친구가 있다. 그는 연이은 수험 실패로 위축되게 되면서, 자신의 소중한 여자 친구를 친구에게 맡기려 하는 소심한 성향까지도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기타루와 달리 적극적이고 남성적인 동아리 선배와 사귀게 되고 이를 알게 된 기타루는 그녀를 떠난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가후쿠에게서 기타루의 소심함이, 상간남인 다카 스키에게서 가후쿠에게 없는 적극성이 느껴지며, 실제 영화에서 다카스키는 굉장히 매력이 넘치며, 남성성 끝판왕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후쿠가 다카스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와이프는 죽음으로 그의 곁을 떠난 상태였다.
<독립기관>이라는 작품에서는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생각건대 그 여자가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과 유사하게, 가후쿠 또한 진심을 다해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내는 죽기 전까지 그를 기만했다. <세에라자드>라는 단편에는 '천일야화'라는 콘셉트를 빌려 주인공과 섹스할 때마다 흥미롭고 신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니체는 "사람들은 입으로 거짓말을 잘도 한다. 그러나 이때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입으로 진실을 말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가후쿠의 아내는 가후쿠에게는 거짓을 늘어놓지만, 다카스키에게는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래서 가후쿠는 다카스키의 입에서 일말의 진실을 듣기 위하여 친근한 척하며 그에게 다가가게 된다.
< 기노>를 통해서는 아내를 잃고 난 후의 가후쿠의 마음 상태를 유추할 수 있다. 기노는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정작 아내는 그의 직장동료와 바람이 났다. 기노는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에 맞서는 것을 회피하였지만, 결국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고 쓸쓸히 죽어간다. <사랑하는 잠자>에서는 카프카의 '변신'을 약간 틀어 독충 대신 꼽추 소녀를 대입하였고, 그레고리 잠자가 그녀의 외관보다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묘사는 미사키의 특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서는 상간녀의 남편이 주인공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려주는 내용이 나온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는 가후쿠는 조의를 표하려고 온 다카스키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아내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게 되면서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면서 연적인 다카스키에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듣게 된다.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나 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늘 그렇듯 일반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제목처럼 모두가 상대방의 부재 속에서 방황하거나 그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류스케 감독은 각각의 단편에서 상징과 이미지를 추출하여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경을 다각도에서 재해석하여 마치 큐비즘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특히 현실을 혼자서 감당하거나 또는 회피해버리는 내용이 아니라, 동반자와 교감함으로써, 이미 주어진 현실을 새롭게 재해석하며 함께 해소해나가는 결말에 가슴 한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류스케 감독은 아마도 이런 시점에서 작품을 해석한 것이 아닐까?
관사로 출발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이미 어두컴컴해졌다. 낮에 이곳에 왔을 때도 너무 맘에 들었지만, 밤에 보는 야경 또한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오늘처럼 컨디션이 별로인 날을 극복하고 프레시한 기운을 받아가기에는 카페 '조양방직'이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이렇게 특별한 장소에서 쓰인 글들이 그 느낌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별한 장소에서 쓰는 글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좀 자야겠다고 가후쿠는 생각했다. 한숨 푹 자고 눈을 뜬다. 십 분이나 십오 분, 그쯤이다.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 조명을 받고 주어진 대사를 한다. 박수를 받고 막이 내려진다. 일단 나를 벗어났다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곳은 정확하게 이전과 똑같은 장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