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

#존재

by 비루투스

어떤 이들은 보는 것으로

보이기 위한 삶을 선택하고,

어떤 이들은 듣는 것으로

들리기 위한 삶을 선택한다.


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그의 뜻


듣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 그의 뜻


사람은 변하는 것으로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려 하고,

그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변해버린 이들에게 보게하신다.



—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듣고 있는가


「섭리」는 짧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인간의 인식 방식과 존재의 본질,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초월적 의지를 탐구하는 이 작품은, 마치 고요한 물 위에 던져진 돌처럼 독자의 내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시인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이라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삶을 분류하고, 그 감각을 초월하는 ‘그의 뜻’을 통해 진리를 드러낸다.

첫 연에서 시인은 인간이 ‘보이기 위한 삶’과 ‘들리기 위한 삶’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감각의 사용을 넘어, 인간이 타인에게 인식되기를 바라는 존재 방식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실은 종종 왜곡되거나 감춰진다. 시인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넘어, ‘그’—즉 신적 존재 혹은 섭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의 감각을 초월한 계시의 순간이며, 진리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방식이다.

이 시의 핵심은 ‘그의 뜻’이라는 표현에 있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지만, 그 감각은 불완전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그의 뜻’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의지를 상징한다. 이는 신의 개입, 혹은 우주의 질서가 인간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시인은 이 과정을 매우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직접적인 설명보다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변화와 진리의 불변성이 대비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한다. 시간에 따라, 경험에 따라, 감정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그러나 그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하려 한다. 이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이다. 반면, ‘그’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변해버린 인간에게 그것을 보게 한다. 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깨달음의 순간이며, 섭리의 개입이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 보여주며, 설명하지 않고 느끼게 한다. 그 절제된 언어 속에서 독자는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나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 너머의 진리를 향해 나는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


「섭리」는 단순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철학이며, 하나의 믿음이며, 하나의 길이다. ‘섭리’란 제목은 이 모든 흐름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섭리는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질서이며,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초월적 의지다. 시는 인간의 감각과 인식, 변화와 진리, 그리고 그 너머의 섭리를 조화롭게 엮어내며,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결국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감각 너머에 있는 진리를 향해, 우리는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 섭리는 우리를 인도하지만, 그 길은 감각이 아닌 깨달음으로 열리는 법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