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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벌이랑 Sep 09. 2024

벌침은 정말 무섭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사람들은 꿀벌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인상을 갖고 있다. 

  열심히 꽃을 다니며 꿀을 모으는 부지런하고 귀여운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 고통스러운 벌침을 마구 쏘는 두려운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꿀벌을 무서운 존재로 각인시키는 벌침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그들 공화국을 지키는 필살의 방어용 무기이다. 벌침이 있어 그들은 생존할 수 있었다. 




[사전 브리핑]

벌침

  일벌 꽁무니에 끝에 감춰져 있는 바늘처럼 가는 침. 끝에 톱니 돌기가 있어 한번 박히면 안 빠지고, 일벌은 꽁무니가 이탈되어 잠시 후 사망함. 박힌 침에 붙은 독주머니가 꿈틀 거리며 독액을 주입함. 수컷인 수벌은 벌침이 없음.

벌침의 독액(봉독) 

  여러 독성 물질과 생리활성 성분(멜리틴 등)이 들어있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지만 강력한 항균, 항염, 진통, 세포재생 작용을 함.

벌침은 살갗에서 빠지지 않고, 독주머니가 계속 독액을 주입한다.  (ⓒRDA)


벌침으로 맺은 인연


  아주 오래전, 대학교 4학년일 때 얘기다. 

  그 당시에는 우리 학교가 수원에 있어, 서울에서 일찍 1학기 종강을 한 친구 두 명이 학교로 놀러 왔다. 다행히 수업이 없었던 터라 대낮부터 근처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모처럼 만난 회포를 풀었다. 이런저런 대화 중 내가 꿀벌 얘기를 꺼냈다. 


  '수강 과목의 실험 실습용으로 캠퍼스에 벌 두 통을 갖다 놨는데, 며칠 전 조교 선배와 벌통을 같이 열어봤더니 아주 신기하더라.' '수천 마리가 일사불란하게 일하는 모습에 놀랐다. 여왕벌이 알 낳는 것도 보았고, 벌집에 있는 꿀도 맛을 보았다.'라고 말을 마치자 곧 친구들이 청했다. '오! 그래? 우리도 구경 좀 시켜줘. 꿀도 먹어보자!'


  그리하여 캠퍼스 한편에 있는 벌통을 허락도 없이 친구들 앞에서 묘기를 부리 듯 뚜껑을 열었다. 아뿔싸! 그때는 알코올 냄새가 벌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조심스럽게 벌집을 꺼내고 여왕벌을 찾느라 얼굴을 들이 댄 순간, 성난 벌 여러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 내 눈썹 주변에 대여섯 방의 벌침을 쏘았다. 다행히 떨어져 있던 두 친구는 벌에 쏘이지 않고 바로 피신했다. 

  '으악!' 세상에, 이렇게 아플 수가 있을까! 바늘에 찔려 따끔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약 덩어리가 살 속에서 순식간 동시에 터진 것 같은 격심한 통증에, 벌집을 던져 버리고 뒤돌아 정신없이 도망쳤다. 


  술 취해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난다면, 애초에 벌통 근처에 가지 말거나, 가더라도 뚜껑을 열지는 말아야 했다. 아니, 최소한 벌통을 열기 전에 미리 쑥 연기라도 뿜고, 얼굴에는 방충망(복면포)이라도 썼어야 했다. 후회가 막심했다. 

  친구들을 바로 보내고 자취방에 돌아온 직후부터 점차 눈 주변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에는 내 얼굴에 거대한 혹덩이가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랐다. 내 흉악한 얼굴에 망연자실하여 병원 갈 엄두도 못 내고. 부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느라, 꼬박 나흘동안 꼼짝없이 자취방에서만 지냈다. 


  얼굴이 가라앉아 흉하지 않을 정도로 되돌아온 다음, 교수님을 찾아가 벌통을 열어젖힌 사정을 실토했다. 그리고, 죗값으로 이제부터 제가 벌통을 책임지고 잘 키워보겠노라고 제안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나는 꿀벌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제주도 경주마가 꿀벌에 쏘여 죽다


  제주도에서 경주마로 사육하던 말이 꿀벌에게 공격당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2002년도 현지에서 전해 들었다. 경주용 말이 꿀벌의 벌침 공격으로 사망한 것은 전례 없는 보기 드문 사건이었다. 수사기관은 말이 꿀벌에 의해 여러 차례 벌침에 쏘였고, 이로 인해 심한 알레르기 반응 또는 과민성 쇼크(아나필락시스)를 일으켜 죽은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제주도에서 양봉을 하는 지인의 설명은 이렇다. '날아다니던 벌들이 무작정 공격할 리는 만무하고, 조련 중이던 말이 울타리를 벗어나 인근을 배회하다가 나무 밑에 있는 벌통을 잘못 건드려, 사나워진 벌에 집중 공격당했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일벌이 벌침을 쏘면 벌침이 박힌 자리의 독액에서 공격을 유도하는 냄새(경보 페로몬)가 풍겨 근처 동료 일벌들이 마구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죽은 말은 꿀벌이 처음 공격했을 때 바로 피신하거나 조용히 있지 못하고, 극심한 통증에 그 자리에서 펄펄 뛰며 벌을 더욱 자극해서 결국 사망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들쥐, 청설모, 멧돼지, 곰 같은 야생 포유동물은 벌통을 건드리면 공격을 당하기 때문에, 벌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을 빼고는 좀처럼 벌통 근처로 가지 않는다. 보통은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에도 겁을 먹는다. 그런데 죽은  말은 야생의 경험 없이 인위적인 환경에 길들여 있다가, 사육장의 울타리를 벗어나며 흥분 상태로 마구 헤집고 다니며 벌통을 건드려서 사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꿀벌은 한번 쏘면 자기도 죽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거나 모여사는 서식지를 해코지하지만 않으면, 아무 이유 없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대장금이 미각을 되찾다


  2000년대 초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각광을 받던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혀의 감각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실의에 잠겼을 때, 한의사가 벌침 치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궁중 요리사 장금이로서는 자기 목숨과도 같은 미각을 잃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의사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장금이 혀 감각을 잃은 원인은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 마비 증세였고, 한의사들은 이런 신경성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벌침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에서 의관이 장금의 혀와 주변 신경에 벌침을 놓아 마침내 미각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 장면은 장금이 다시 정상을 회복하여 의녀의 길을 계속 이어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아마 이 드라마의 절정  부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벌침 요법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이며, 신경을 자극하고 치료하는 효과가 있어, 한의학에서 널리 쓰인다. 미국에서는 벌침의 독액을 주사용 의약품으로 허가하여 시판하고 있다. 


꿀벌이 생명의 은인


  전남 신안군에는 6년 전부터 신안 앞바다의 큰 섬에 각기 특색 있는 꽃을 가꾸어,  꽃을 테마로 하는 축제를 여는 관광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이후로 매년 섬에 따라 튤립, 수선화, 애기동백, 라벤더 등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던 초창기에 신안 군에서 꽃이 만발하는 섬에 꿀벌 벌통을 보급하고, 꿀벌을 관리하기 위한 양봉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여 내게 연락이 왔다. 그래서 암태도라는 섬에 내려가 섬 주민과 신안군의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 모여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몇 사람이 질문을 하고 간 후에,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가 잠시 할 얘기가 있다며 옆자리에 앉았다.


  "벌이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택시 운전을 하던 이분은 당시로부터 십 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하반신이 마비되어 거동도 못하는 암울한 시기에 부인마저 잃었고, 온갖 치료도 별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친지 중에 양봉을 하는 분이 권하여 몇 차례 벌침을 맞았다. 마비된 하체에  조금씩 반응이 느껴져 벌 한통을 직접 집 마당에서 키우면서, 매일 벌을 잡아 본인이 직접 벌침 시술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보고 침을 맞는 혈 위치를 찾아서 벌침을 거의 일 년 동안 맞고 나니, 하반신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현재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점차 회복되자 벌을 본격적으로 키워서 벌통을 백 통 정도로 늘렸다. '이제는 꿀을 제법 떠서 팔고, 벌통도 조금씩 팔고 해서 자식들 신세를 안 지면서 잘 살고 있는데, 이게 다 꿀벌 덕분입니다'며 껄껄 웃으며 다시 악수를 청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분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봐서는 꾸며낸 말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강사인 나에게 구태여 과장해서 장황하게 얘기할 이유도 없었다. 멀리에서 내려온 나에게 그저 고마움의 인사차, 자신의 진솔한 사연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꿀벌은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치유의 헤택을 선사한다. 벌이 제공하는 꿀, 로열제리, 프로폴리스 같은 생산물과 그리고 이분이 경험한 벌침의 효능 이외에도, 벌을 키우며 얻는 정신적 정서적 치유 효과도 상당하다.




 ※ 주의 사항

  - 여름이나 가을에 등산을 하거나 벌초를 할 때, 숲 속이나 땅속의 야생벌에 쏘여 생명을 잃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꿀벌을 키우는 벌통을 함부로 다루거나, 자극하면 집단 공격을 당할 수 있다. 특히, 선천적으로 벌침 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체질을 가진 분들과민성 쇼크를 일으킬 있어, 벌에 한 번만 쏘여도 생명이 위험하다. 

  - 벌침을 이용한 봉독 치료는 의료행위로써,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벌침 시술을 행하면, 불법 의료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이를 위반한 경우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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