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포망망 커피잔

단편 소설

by 주연



내가 어렸을 때 집에 손님이 오면

아빠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디로 전화를 했고 얼마 지나 어떤 예쁜 언니가 가방에 커피를 담아 오곤 했다.

그렇게 오는 언니들은 자주 바뀌기도 했고 한동안은 같은 언니가 계속 왔었는 데

정말 유독 예뻤다.

집에 일을 봐주던 할머니가 있었고

손님들이 오면 나를 내방으로 데리고 가서 따로 간식을 챙겨 주셨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날이 궂어 할머니가 못 오셨고 아빠는 그날도 거실에서 친구분들이랑 커피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셨다.

어! 그 예쁜 언니다 ^^

언니가 잔을 챙겨서 가려고 할 때 나와 눈이 마주쳤고 한동안 그렇게 빤히 쳐다봤다.

" 꼬마야 뭘 보니? ㅎ "


그 언니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씨익 웃었다. 새빨간 립스틱 사이 보이는 조금 노란 치아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 안녕하세요! "


평소 인사를 잘해야 뭐라도 얻어먹는다는 엄한 아빠의 훈육에 따른 자동반사 ;;
순간 정적ᆢ

예쁜 언니가 피식 웃더니 착하다며

이리 와보라고 했다.

" 오늘은 아줌마 안 왔어? ~ "


질겅질겅 쫘악 쫘악 껌 씹는 소리ᆢ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무르팍 위에 날 앉히고 헝클어진 나의 머리를 다시 묶어 주었다.

그 순간 거실 커다란 탁자 위 햇살에

반짝 거리는 커피잔이 내 눈에 들어왔고

나는 손으로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 왜~ 갖고 싶어? "

끄덕끄덕...

" 그거 말고 언니야가 새거 줄게 ㅎ "


하면서 가방 안을 뒤지더니 새 커피잔을 나에게 줬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소파 위에서 방방 뛰었고 그렇게 한두 시간 그 예쁜 언니랑 놀았다.

" 김양! "


그 언니의 이름이 김양이었나 보다.
아빠는 소매 품에 지갑을 열어 현금을 두둑이 주셨다. 언니는 커피가 들어있는 가방에 돈을 집어 놓고는 이내 날 쳐다봤다.

" 공주님,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돼라 "


슬픈 눈으로 그렇게 날 쳐다보더니

진한 매니큐어 바른 하얀 손을 흔들며

현관을 나섰다.

나는 뭔가... 순간 바람이

스쳐지나 간 듯했고... 가슴이 멍했다.

또각또각 빨간 하이힐 소리...

아빠가 마당으로 내려가는 예쁜 언니를 유리창 밖으로 계속 쳐다봤다.

그리곤 그 예쁜 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난 그날 저 커피잔을 내방 책상에 있는 키티 인형 옆에 두었다.

어느 날 엄마가 저 커피잔을 보더니

" 저게 뭐니?!! "


나는 순간 얼어붙었고 어린 나는 느낌으로 가만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 이모 저거 버리세요!! "


나는 안된다고 칭얼거리면서 울었고 그 모습을 본 아빠는 서재로 황급히 들어가셨다.


엄마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2층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를 정신없이 치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음악학원가는 게 너무 싫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울고 있는 나에게 몰래 커피잔을 챙겨 주시며 토닥토닥해주셨다.

나는 그날 밤 내 서랍장 일기장 옆에 커피잔을 휴지로 꽁꽁 감싸서 넣어놓고선 열쇠로 꼭꼭!! 잠궜다.

시간이 흘러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중고딩으로 크면서 잔을 꺼내 사용했고
이름을 ' 쉬포망망 커피잔 ' 으로 지었다.

갖고 ' 싶었다 '의 표현의
(싶어 -> 싶오 -> 쉬포)
' 잃어버릴 ' 뻔 했다라의 표현의
(한자로 잃을 망 亡 -> 망망)
쉬포망망 커피잔
이해했니?
어렸을 때니까 귀엽게

첨부한 사진이 그 커피잔이고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 다방 아가씨의 슬픈 미소와
커피 향과 같이 났던 짙은 화장품 분내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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