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시네마는 '글'로부터 시작된다.
영화제작자가 죽으면 먼저 가 있던 책들이 마중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얘기를 좋아한다.
물론, 영화제작자 얘기는 내가 지어낸 얘기다.
‘먼저 가 있던 책’이란,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 시나리오를 말한다.
영화제작자들의 서랍 속에는 만들어지지 못한 책들이 고이 잠들어 있다.
코로나로 영화 시장이 어려워지고 OTT가 뜨자,
영화 제작자들도 드라마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이 흐름에 편승하여 드라마를 개발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맞추는 형식이라,
16시간씩 끊임없이 이야기가 계속되는 형식인 드라마와는 사실 다른 점이 많았다.
처음 드라마 개발을 하다보니 전형적인 드라마타이즈 형식이 아니라 익숙한 형식으로 개발을 하게 되어,
하나의 주제로 6개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이 되었다.
마치 각각의 단편 영화 6개를 합쳐 놓은 것처럼
20분 분량 6개 에피소드가 합쳐지면 영화 한 편이 나오는 형태였다.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
내용은 섹스 전 여러가지 이유로 일을 치루지 못하는 커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주 배역에 딱맞는 유명 배우까지 캐스팅이 되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OTT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체류 시간이 중요한 OTT 생리상 다음 편으로의 연결 포인트가 약한 옴니버스 형식이라는 점과
20분물 미드폼이라는 애매한 길이, 그리고 유튜브 웹 드라마와의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잠깐! 웹드라마와 차별화가 안된다고? 그럼, 그냥 웹콘텐츠로 만들지 뭐.
마침 숏폼이 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서랍 속에서 긴 동면에 들어갈 뻔한 대본을 다시 깨웠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기획으로 생각하다면, 영화든 웹콘텐츠든 가장 기본은 결국 글이다.
숏폼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영상화하고 싶었던 글이 있었기 때문.
자 이제, '숏폼으로 영화 만들기'를 시작하지.
영화와 드라마가 다른 형식인 것과 같이, 숏폼은 또 다른 형식이었다.
숏폼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 바로, "1분에서 1분 30초 내외의 길이"와 "세로"였다.
이 두 가지 특징에 맞추어 글을 각색했다.
1) 짧은 길이
- 기존의 글이 20분물 옴니버스 형식의 시리즈였다는 점에서 유리
- 시리즈 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한 편을 선정
- 20분물 한 편을 다시 열 개의 에피소드로 쪼갬.
*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컷들 제외
2) 세로
- 세로 화면의 특성 상 인물에 집중되는 것이 이야기 전달에 유리
- 첫 에피소드를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독백 에피소드로 각색
- 대화 형식(티키타카) 위주로의 각색
시작이 반인데, 글이 시작이니 이제 '숏폼으로 영화 만들기'의 반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