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람이 참 많다. 굳이 타인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뭔데 이해를 하고 말고 하겠는가. 다만 긴 시간을 노력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내게 있어 대표적인 예는 아버지이다.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길게 할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 조금씩 타협을 보는 중이고, 일상도 비교적 열심히 살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혼자일 때는 있었지만. 어쨌든 온전히 혼자가 되어 과거에 얽매어 가라앉을 때 어떻게든, 누군가에 의해 혹은 어떤 사건에 의해 뭍으로 건져 올려졌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는 그렇게 사람에게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늘 진심인 편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잘 믿지 못하고 거리를 쉽게 좁히지 않는다. 곁을 주려면 얼마만큼의 노력과 결심이 필요한 지 잘 알고 있고, 나에게는 거기에 쏟을 에너지가 많지 않아서이다.
모순적이게도 내 질문의 답은 대게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견되곤 한다. 내게 사람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난제이다. 그중 최고로 어려운 문제는 나 자신이다. 나는 아아 중독이지만 매번 뜨아를 시킬까 하고 한 번은 고민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정의하려면 사람들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꽤 괜찮은 방법으로 보이기도 했다.
살면서 생긴 여러 의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 단서를 준 이들을 떠올렸다. 처음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내 주변이 이렇게 멋진 사람들 투성이라고? 물론 아픈 인연도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상대에게 그리 좋은 인간이 아니었을 테니. 목차를 써 내려가고 한 편 한 편 글을 올리다 어느 순간 가슴 한편이 묵직한 돌덩이로 눌린 느낌이 들더니 점점 무거워져 내 의지로는 치울 수 없는 바위가 되어버렸다.
처음 얼개를 짤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연재의 마지막이었다. 몇 개의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떠올려 보는 것으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이해는 안 되더라도 조금은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정 용서가 안 된다면 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라도 해서 스스로가 어린 시절 오줌싸개에게 안전하고 다정한 보호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태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남아 폭력과 가난, 장애 같은 애초에 선택권이 없는 쓸데없는 옵션을 달고 삶에 던져졌을 뿐이라고. 그 어디에도 내 잘못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깊은 방 안에 꽁꽁 숨겼던 형편없는 비밀이 갑자기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또 다른 피해자인 엄마 가슴에 영원히 뽑히지 않을 칼 같은 말을 던지는 가해자였다. 왕따를 당한 피해자였지만 또 다른 왕따에게 말을 몇 마디 걸고는 마치 성인군자라도 된 양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우월감을 가지는 오만한 인간이었으며, 신체적 불편함에 무관심한 주변인에게 상처받다가도 누군가 내미는 배려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는 이기주의자였다. 솔직하다는 착각으로 포장한 무례하고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말을 뱉었다. 그런 행동과 말로 얼마나 많은 이들을 피해자로 만들었을까. 이보다 형편없는 인간이 있을까.
까놓고 보니 세상 지질한 내 주제에 누구를 용서할 자격이 없어 보였고,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아직 내 인생은 완성되지 않았을뿐더러 십 년 후의 내가 괜찮은 인간일지도 알 수 없는데 뭘 잘났다고 사람이니 뭐니 같잖은 고상을 떨고 있나 싶었다. 결국 준비된 글들을 다 지웠다. 연재를 위해 남겨진 마지막 목차 3개는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였지만 결국 첫 문장조차 쓰지 못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글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다.
아직은 보내줄 때가 아니다. 나는 아직 멀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 비밀을 끌어안고 살겠지.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글쓰기를 가르쳐 준 작가님이 심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은 글을 쓰면 글도 끝내기 힘들다는 취지의 조언을 하셨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첫 번째 연재 도전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다. 맥락도 없고, 알맹이도 없는 채로 무책임하게 마무리한다.
열심히 읽고 쓰며 때를 보아 단단한 나로 서게 되는 날을 준비하자. 그땐 진심과 진실을 꿰뚫는 진짜 멋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하여 수많은 질문에 답을 찾게 되기를 바라며
일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