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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젊은느티나무 Sep 26. 2016

내 삶의 향기 시리즈-1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된장





나는 얼마쯤 묵어야 그 댁 된장 만큼이나 좋은 맛을 내는 사람이 될까?


콩대로 콩을 삶아낸다는 조식의 칠보시를 벌써 수 십 여 차례나 암송해 보았다.


깊은 감정적 소양이 얼마나 쌓여야만 단 칠보 만에 저리 깊은 공감을 뭇사람들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 시를 암송할 때 나는 깊은 감정이입에 빠지곤 한다.


같은 심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행복.


많은 이들과 이 칠보시를 나누었지만 그다지 깊은 감흥을 나누진 못하였다.


그 시를 읽을 때 내가 가슴이 유난히 더워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1. 


오래 전,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선군의 예미라는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호기로움이라는 게 있었을 때 방문했던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얼마 살지 않았던 내 인생이 모범답안이나 되는 것처럼 내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곳의 여행을 마친 뒤에 며칠이나 지나서 그곳 아이들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서야 나는 내가 이때까지 내 자만심에 사로 잡혀 많은 이들에게 상처 주었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방문하겠다던 그 호기로움은 그 편지를 받고나서 일순 무너져 내렸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벌써 이십년이 다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그곳의 된장 맛 뿐.


오늘처럼 그날의 공기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라면 오래된 책을 들추어볼 때의 공팜내 나는 아련함만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이튿날, 나는 동료와 함께 어떤 두메산골을 걷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아직 치간(인분에 재를 덮어두는 재래식화장실)이 남아 있던 곳으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때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점심을 한참 지난 시각에 방문했던 그곳에는 갓 스무살이 넘었을 정도의 젊은 청년이 땀이 범벅이 되어 외양간 가득한 쇠똥을 쇠스랑을 자기고 퍼내고 있었고, 볼 일이 급하였던 나는 양해를 구하고 그곳 화장실을 이용하였는데 그 화장실이 치간이었다.


평평한 바닥에 다듬이돌 같은 모양의 돌-그보다는 높이가 높은-을 두 개 나란히 놓고 볼일을 볼 때에는 그 위에서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볼일을 본다. 고가 높지 아니하므로 돌과 돌 사이는 괭이로 어느 정도 파내고 볼 일을 본 뒤에는 문 한쪽에 쌓여 있는 나뭇재를 인분에 덮고 치간에 둔 괭이나 삽으로 퍼내어 뒤쪽에 쌓아올렸다.


서울에서 살다가 간 시골에서 만난 첫번째 문화적 충격이 그 치간이었다. 지금에야 이 방법이 훨씬 더 위생적이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는 너무 어렸다.


어쨌든 그러한 옛 기억들이 그 치간을 통해 살아나면서 그 젊은 청년의 모습이 내 어린 시절 모습에 투영되었다.


우리는 그럴 싸한 말 몇 마디로 그 젊은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소개해 주고 싶어했지만 그러나 그 청년은 도시의 문화에 물들기에는 너무나 깨끗했다.


그 날 몹시 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와 얘기를 마치고 나서 쉬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속성에 가벼운 탄식을 내뱉으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깊은 산골의 능선께 이어진 길은 뜨거운 태양빛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었고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더운 기운이 입으로부터 쏟아져 왔다.


어느 시골길이야 다들 그렇겠지만 수 백미터를 걸어야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인가들.


고갯마루쯤 올라서서야 푸른 고추밭 옆 한적한 인가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몇 번이나 '안에 누가 계시느냐'를 연발한 후에야 나오신 할머니는 허리가 구십도로 꺽인 채였다.


밥을 좀 얻어 먹을 수 있느냐는 말씀을 여러 번 드렸지만 가는 귀를 잡수셨는지 도통 말을 알아듣지 못하셨다.


답답해진 나는 다른 곳으로 가자고 동료에게 말을 했지만 나보다는 좀더 진득했던 동료는 할머니에게 다가서서 다시 한번 부탁을 드렸다.


얘기를 듣고 나신 뒤에도 별 얘기 없이 훌쩍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나는 더는 참을 수가 없어 가던 길을 나서자며 했다.


이미 입에서는 황내가 가득했다.


동료는 내 손을 잡고 다시 말했다.



"좀더 기다려 봅시다."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던가?


잠시 뒤 조그만 툇마루로 할머니가 무언가를 가져오시더니 우리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차려진 게 물 한 그릇과 차운 밥, 고추 몇 개 그리고 된장 한 종지였다.


물에 밥을 말아 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 입 물었다.


알싸한 맛이 코를 쨍하게 하였고 된장 진한 맛이 뒤를 감쌌다.


서둘러 물에 만 밥을 다시 입에 가득 털어 놓고 이번엔 된장을 수저 끝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입 안 가득 우물거리는 우리를 올려다보는 할머니의 표정은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을 주름으로 가득한 것을 보았는데 손으로 부엌을 가리키며 더 먹겠냐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귀가 안 들리고 말씀을 못하신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2.



중학시절부터 넘기 시작했던 자작고개는 자재기 고개로도 불리는 곳이었다.


꽤나 깊은 골짝으로서 면내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던 그곳은 이편에서 저리로 넘어갈 때는 따뜻한 남녙의 햇살을 받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골짝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 동편 산기슭에는 넘어가는 해가 잠시 머물러 붉은 빛 황홀한 풍경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목장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저 알리 내려다 보이는 야트막한 산 자락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정신이 말짱한 사람도 비 오는 날에는 절대 혼자 가서는 안된다는 뭐 그런 무시무시한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종종 걸었는데 어쩌다 청소 당번이라도 하는 날이면 얄궂은 친구놈들이 나만 쏙 빼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어서 몹시 난처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해가 바뀌면서 이 마음 안의 담력도 크는 탓인지 조금씩 자라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제 




이쪽은 영혼들이 잠들어 계신 곳

저쪽 골짜기엔

푸른 봄

아니 그 사이엔

분홍빛 살구나무 꽃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좀전의 여우비에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삶을 새롭게 꽃 피운다

(그러므로)

하늘의 눈물은

새로운 삶을 향한 노래

안개 되어 산자락을 감고

하늘로 돌아갈 무렵엔

나도 이 산과 저 산 사이에서

조금은 자랐다


 





하교길에는 공동묘지를 먼저 지나고 어두침침한 재를 넘어가면 그 다음은 밝은 고갯길을 가는 셈이었는데 고개 정상에 다 오르고 나서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면내는 무척 아름다웠다.


저편에서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는 때라면 힘들게 올라왔던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금세 다음 고갯길을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중학시절을 보내고, 여름 풋사과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내게도 찾아왔던 첫 사랑.


뜨거워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놓치기 싫어 꼭 잡고 있던 그해 여름.


여름을 다 보내고 겨울이 다 되도록 식지 않았던 첫사랑.


그렇게 세번 해가 바뀐 뒤에 우리는 서로에게 맞지 않았음을 조금씩, 아니 실은 그 전부터였다고 해도 좋겠지.


우리는 마침내 가슴 아픈 첫 사랑의 시련을 맛보게 되었다.


누가 붙여 주었을까?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지나가는 발검음을 붙잡을 정도로 달콤한 향기 끝에 달리는 씨앗의 맛은 너무나 쓰디쓰다.


혹독한 홍역을 치르는 동안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반 병신이 되어가며 앓아 누웠을 때 이제는 다른 이의 여자가 된 그녀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간 처소.


기도로써 사람을 고친다는 곳이었는데 내가 얼른 견디어 내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데리고 왔다 했다.


거기서 나는 내 안에 있는 증오와 분노가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걸 몰랐던 건 아니었다.


혈기...


그 무렵의 혈기는 나를 몹시 지치고 병들게 했다.


나와의 힘겨룸 끝에 지친 나는 깊이 잠이 잠깐 들었다.


한참 만에 눈을 떠보니 어린 시절 보고 지났던 고갯마루에 가을 마지막 볕이 이 안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차려졌던 소박한 밥상.


아주 짙은 밤색의 된장찌개가 보글거리며 끓고 있었다.


나는 한 술 떴다. 


끝이 달았다.


다시 한 술을 떴다.


씹지도 않고 울음과 삼키는 밥술이 어찌 그리 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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