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아ㅓ레매ㅑㄴㅇㄱ;ㅣㅏㅓㅂㅈ>
“으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잠꼬대였다. 분명 특별하지 않은 그냥 평범한 꿈을 꾸고 있던 것 같은데, 현실의 나의 짜증이 나를 깨운 것 같다.
또 시작인가, 서둘러 달력을 챙겨본다. 생리주기상 지금은 짜증 날 때가 아닌데 말이지, 이 마음속에서 들끓는 무엇인가는 왜 늘 더 답답하게만 만드는 걸까?
“무슨 일 있니?”
“아니야~ 나 잠깐 졸았나 봐, 잠꼬대 한 거 같아.”
“나와서 밥 먹어~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재취업 준비생으로 지낸 지 벌써 3년째이다. 20대때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고 벌어 놓은 돈이 지금 거의 바닥을 보이는 상태이다. 엄마는 짜증이 날 만도 한데 나에게 절대로 티를 내려 하지 않는 그 노력이 더 나를 짜증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시간은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고 난 아직도 누워서 짜증을 내며 뒹굴거리고 있는데, 한마디 잔소리 없이 자리를 비켜주며 밥을 권하는 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엄마의 잔소리가 없는 세상이 존재하기는 하는거냐고 묻는 이들이 많겠지만, 막상 잔소리를 꾸역꾸역 삼키는 엄마가 느껴지는 나는 퍼붓는 잔소리가 더 나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실컷 잔 것 같은데도 몸이 찌뿌둥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나는 커튼을 걷어 밖을 슬쩍 내다 본다. 창문을 열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꽃가루가 날리는 봄. 하필 내방 창문 바로 앞에 송화가루로 잔뜩 성이 난 소나무가 나를 향해 실실거리는 것 같아서 다시 커튼을 쳤다.
잔소리를 잔뜩 삼키고 어디론가 외출한 엄마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본다.
“아,, 어제 컴퓨터 안껐네..”
하긴 분명히 어제 밤에도 실컷 놀다가 자기소개서나 좀더 보완해 볼까 하고 컴퓨터에 앉았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맞이한 시간은 지금이다. 어떻게 침대에 가서 누운걸까? 뭐, 매번 있던 일이라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내 두 발로 걸어가서 착 누웠겠지.
자기소개서를 분명 다시 써보겠다고 하고 열심히 썼던 것 같은데 무슨 외계어처럼 글씨가 적혀있다. 그제서야 어젯밤 내가 왜 중간에 침대에 누웠는지의 장면이 차르르륵 지나갔다. 분명 난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쓰려고 했으나, 이 키보드, 망할놈의 키보드가 또 말썽이었다. 벌써 몇번째인가 모르겠다. 물론 게임도 하고, 괜히 주지도 않는 눈치보느랴고 Alt+Tab 버튼을 수시로 눌러대거나, 컴퓨터 앞에서 괜히 몰려오는 짜증은 이 키보드를 쾅쾅 내려치는 것으로 해소하곤 했었으니까, 용도를 잘못 사용한 탓도 있을게다.
새로 사야할 때가 온 것 같긴 하다. 가방을 뒤적거려본다. 분명 현금이 얼마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엊그제 찾아놓은 현금이 만원짜리 두장과 천원짜리 서너장이 잡힌다. 자~ 연장탓을 할 순 없지만, 키보드 없이 그 어떤 작업도 할 수 없기에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와중에 저렴한 금액의 키보드라고 할지라도 내 눈에 들지 않으면 사용하기 싫을 것 같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 아직 난 배가 부른가보다.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키보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금액, 색깔, 뭐 그렇게 까다롭게 보는지,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까탈스럽다고 느끼는 그 때. 무료나눔이 눈에 들어왔다. 올린 시각 2분전. 디자인 색깔 엄청 따지면서 고르던 내가 가장 본능적으로 챙겨야 하는건 바로 금액이었나보다.
-저 키보드 무료나눔 받고싶어요
-네, 혹시 이 브랜드 키보드 사용해 보셨나요?
-아 네, 처음인데요~ 다른 사용 방법이 있을까요?
-음, 전용 드라이버를 다운받아 사용하셔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다른 건 다 만족하실 거에요~ 제가 usb로 파일 함께 드릴게요~
요즘에도 전용 드라이버를 다운받아야 하는게 있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뭐에 홀린건지 아니 무료이기 때문에 난 그냥 바로 수긍하고 약속을 정했다.
막상 집에와서 드라이버를 다시 설치하려고 봤더니 너무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나눔하신 분의 말대로 모양도, 키보드의 터치감도, 묘하게 사용감이 있는 듯 없는 듯한 흔적도 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인 지금이 합법적인 휴식시간인 듯 느껴져서 좀더 이 시간을 만끽해 보기로 했다.
잠시 후 엄마가 돌아왔다.
오자마자 주방에서 뚝딱뚝딱 소리가 나더니 뒤이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밥 안먹었지? 나와서 샌드위치 먹어~”
엄마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는 맛이있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하다기 보다는 맛있는 재료를 다 넣어서 만들어서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깝겠다. 의도치 않은 오픈 샌드위치인데 한 손으로는 절대 먹을 수 없는 두께이다. 한 손에 늘 들고 있는 핸드폰을 자연스레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양손으로 큰 틀을 잡아 한쪽으로 재료가 쏠려 빠져나가지 않게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막아야만 이 모든 재료를 한입에 넣을 수가 있다. 기꺼이 그 수고를 하면서 먹어도 높은 만족도를 유지한다.
“근데 지난번부터 생각한 건데 이 샌드위치 먹을 때 한 손으로 못 먹으니까 핸드폰 안보고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지 않아? 그래서 더 맛있는 것 같아!”
엄마는 오늘도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분명히 뭔가 연결되어 있나 보다. 단 엄마 쪽에서만 날 볼 수 있게 말이다. 엄마의 마음은 아무리 읽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데 엄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듯이 휘휘 돌려서 해맑게 이야기 한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맞아. 그래서 더 맛있는 건가? 이 샌드위치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해.”
“넌 그런 이야기를 무표정으로 잘도 한다. 하하하”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했으나 엄마의 눈에는 그 “척”이 보이는 듯 하다.
뭔가 무기력한 나를 바라보는 엄마는 더욱더 속터지는 상황의 연속일텐데, 되려 나의 체면치레를 인지하고 유쾌하게 넘어가 주시니 이 또한 더 불편할 따름이다.
얼른 입에남은 샌드위치를 우유의 힘을 빌어 꾸역꾸역 넘기고서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듯 하다. 얼른 컴퓨터를 켰다.
아. 키보드,
아까 받은 usb를 컴퓨터에 꽂고 드라이버 파일을 설치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크게 귀찮은 작업도 아니었다. 뭐 항상 그렇듯이 귀찮은 일들은 별거 아닌 일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 이슈였다. 그렇게 도망치듯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새로운 키보드로 자기소개서를 조금씩 수정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