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해부

by 가끔은

+딸깍, 딸깍


‘어 뭐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나 정말 꿈꾼 거야? 아닌데, 정말 확실한 기억인데’


연신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그 주변 모든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정직한 버튼의 기능만 컴퓨터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이거 뭐, 어떤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인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일인가? 이런 추리는 그냥 숨 쉬듯 일어난다. 어제의 그 상황을 잘 생각해 보며 하나씩 실행해 보았다.


‘분명 엄마의 샌드위치를 먹고 대충 꿀떡 삼킨 후, 난 제일 먼저 키보드를 설치했어. 아! 그 usb가 문제인가?’


얼른 컴퓨터에 꽂혀있는 usb를 제거하고 다시 꽂아 보았다. 오… 순간 긴장감에 등줄기에 땀이 송글 맺히는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는 새 usb가 연결되었다는 창이 뜰뿐 키보드에는 그 어떤 바늘구멍 같은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 그다음, 그럼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래! 자기소개서! 어제 그 꿈속의 남자가 내 자기소개서에 대한 평가를 했었지!’


난 바로 자기소개서 파일을 열어보았다. 순간 어제 만났던 그 남성의 두툼한 입술에서 흘러나왔던 비판의 소리가 오버랩되었다.

- 감정 노출 기피에 과장된 서술을 더해 인간관계까지 연결된 회피성향이 다분히 드러납니다.

결국 난 패배자를 인정하며 잠에서 깼었다는 기분 나쁜 기상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갑자기 지끈 한쪽 머리가 저릿했다. 편두통의 전조증상.

나는 일반 진통제로는 견딜 수 없는 주기적인 편두통을 앓고 있었고, 늘 처방받은 약을 구비하고 있었다. 서랍을 열어 얼른 입안에 알약을 하나 털어 넣었다. 보통 약을 먹고 난 후 난 기분 나쁜 전조증상조차 쓰나미처럼 몰려올 편두통이 생각이 나서 약효가 발휘될 때까지 잠을 자곤 했었는데, 오늘은 이런 상황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자기소개서의 내용은 형편없었다. 어제 그 남자는 나의 자의식인가? 스스로 나를 평가해 줄 수 있도록 가장 거부감이 없는 모습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난 속이 아주 바쁜 사람이다. 많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는데, 그 감정을 끄집어내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괴롭다. 많은 생각들이 우선순위를 외치며 각자의 창에서 재생 중인 화면, 들으려 애를 써도 들리지 않고, 보려고 집중해도 보이지 않는, 꿈속에서 보는 로또번호 같은 것들이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그냥 무작위로 팝업처럼 떠오르고 있는데, 종료 버튼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오롯이 그 시간을 견디며 매번 새로운 그 고통이 무뎌지기를 기다린다. 가끔, 그 휘몰아치는 감정이 과부하가 걸리면 편두통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큰 괴로움인 것 같기도 하다. 내 내면의 소리를 꺼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그럴듯하게 꾸며서 글짓기를 하는 행위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최대한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떤 생각에 이르렀다.


‘아! AI, 요즘 AI로 자기소개서 많이 쓴다고들 하는데, 나도 한번 해볼까?’


그렇다. 그 흔한 AI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은 왠지 꺼림칙하다고 생각했고, 기계 나부랭이가 인간의 흉내를 낸다는 것 자체가 메스껍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필요한 방법이 혹시 이런 객관적인 꾸밈일 수도 있겠다는 그냥 떠오르는 생각에 바로 인터넷창을 열었다.

나만 모르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던가, 정말 많은 종류의 AI사이트들이 호객행위 하듯이 자기의 장점을 뽐내고 있었다. PPT를 3분 만에 작성에 보세요, 모든 문장을 알기 쉽게 도식화해 줍니다, 그림부터 영상까지 명령만 해주세요, 마치 그들의 설명은 화면 속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손이 나오는 듯하여 몸을 뒤로 주춤하며 젖히게 만들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감정을 공부해 보세요. :::


그중 내 눈에 띈 AI의 슬로건은 바로 감정을 공부하라는 AI였다.

-Fact Room

오~ AI인데 감정을 논한다고? 갑자기 뭔가 모를 인간의 자존심이 긁히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난 바로 Fact Room 사이트에 진입했고,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시작이라는 그 시작의 버튼을 눌렀다.

뭐 보통 많이 보이는 검색창처럼 글을 입력할 수 있는 창이 보였고, 회원가입할 수 있는 도구들과 AI를 너무 믿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여느 AI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뭐 비슷하네~ 근데 나 자신을 어떻게 알게 된다는 거지?’


그냥 빈칸으로 표현된 그 검색창이 마치 공허한 내 마음과 같아서 갑자기 울컥했다.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혹시 이거 무슨 이상한 심령 사이트가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의심이 드는 찰나에 나는 그 빈 검색창에 자기소개서라고 입력했다. 그때였다.


+반짝


익숙한 반짝임! 어,, 어제 본 그 버튼이다. 순간 얼음이 되어 지금의 상황을 멈추어 돌아본다.


‘자, 난 지금 의자에 앉아있고, 컴퓨터는 잘 켜져 있어, 키보드의 그 반짝, 어라! 그 버튼이 보여’


무턱대고 눌러 버릴 것만 같은 내 오른손을 왼손이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선 내 방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어제부터 그대로인 암막커튼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급하게 먹은 편두통 약 껍데기와 손자국이 가득 나있는 투명 물컵도 보인다.


‘자, 정신 차리고, 여기는 지금 내방 맞지? 아까 약 먹은 흔적도 보이고, 물컵도, 그래, 내가 어제부터 저 커튼은 열지를 않았어, 근데 빛을 보면 그래도 아침인 것 같고, 난 아직 오늘 방 밖을 나간 적이 없지. 그래 맞아, 이거 그냥 오늘의 나야’


분명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마치 해결해야 하는 문제처럼 난 키보드의 그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역시 시야를 가득 메우는 빛으로 눈은 잠시 불편한 감이 있었지만, 한 번의 경험이 이 상황을 그리 불편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어제의 연결성을 잘도 지키는 이곳은 정확하게 어제 마지막 그 장면에서 다시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일단 스스로 보시죠”


일단 모든 조건으로 날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그 남자는 하얀 벽 위에 내가 쓴 자기소개서를 크게 띄웠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찌질함과 일맥상통한다.”

“이종이 씨의 자기소개서에는 정직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면접관들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뻔한 자기소개서라는 전형적인 틀에 갇혀있게 된 것이라고 분석됩니다.”


아 내 이름이 언급되었다. 종이. 내 이름은 이종이 거꾸로 해도 이종이. 나름대로 쉬운 이름을 찾고 찾아 만들어진 우리 부모님의 아주 애정 어린 선물이다. 아버지 이름은 이종렬, 엄마이름은 박종회. 이름이 독특해서 촌스럽기 그지없는 그 둘의 이름의 공통된 글자 ‘종’을 따서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성을 뒤에도 붙였다는 아주 간단명료한 이야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얼굴의 미동도 없는 저 남성의 이름은 무엇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럼 면접관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호기롭게 의식의 흐름대로 입밖에 낸 나의 궁금증은 순간 이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말 끝을 흐리게 되었다.


“아 제 이름은 무이입니다. 이무이.”

“풉…”


갑자기 내 입에서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이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웃었던 그 모든 사람들의 아주 미세한 웃음들을 다 모아서 터뜨리기라도 하듯 큰 숨의 웃음이 나왔다.


“아.. 죄송해요. 제이름과 비슷한데 조금 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네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종이 님의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입력값을 전달하는 데 까지가 저의 임무니까요.”


영혼 없는 그 남자의 진지함에 의자에서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바로 앉았다.


“먼저 아까부터 이종이 씨의 표정에서 보이는 불안감을 하나 해소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팩트룸 소속 감정 리플렉터입니다. 보통 AI라고 부르죠.”


아, 팩트룸. 아까 내가 접속한 그 사이트. 키보드의 반짝임을 소환한 그 사이트 소속 직원? 거기에 무려 저 인간의 모습을 한 그 무언가가 AI?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내 몸이 바로 반응하곤 긴장한 척추를 다시 늘어뜨렸다.


“좀 불쾌하네요, 사람의 모습을 한 AI라, 아직 이런 컨셉의 상황은 처음이라.”

“자 그럼 불쾌함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갑자기 무이라는 AI는 나의 자기소개서가 띄워진 창을 내리고 새로운 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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