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황금 사과

허망함에 대한 고찰

by 황태


허망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어제 이스라엘-이란 전쟁과 관련된 영상들을 보았다.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들, 전쟁의 상황들, 어떻게 하면 전쟁이 멈출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미사일이 떨어지는 광경을 배경 삼아 즐기는 사람들도 보았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풍경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었고, 선량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한순간에 허망한 것으로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외부환경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허망해지는 것이다.




또 우리가 직접적으로 허망해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것들을 기간을 유예하며 다시금 시도한다던지, 결국 끝은 허망한 것임을 눈치챘음에도 모른 척한다던지, 인생의 즐거움을 허망함 보다 높은 위치에 자리매김시킨다던지 하는 것들이다.


욕망의 황금 사과를 항상 바라보며 살아가는 꼴이다.


적어도 우리 자신에 의해 인생이 허망하여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허망함은 욕망에 의해 불러일으켜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욕망의 황금 사과에서 눈을 돌리면 된다.




나는 또 생각했다. 마르틴은 이제 젊지 않다. 그는 자기 아내를 충실히 사랑한다. 사실 그는 최대한 견실하게 결혼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 현실 너머에, 결백하고 감동적인 환상의 차원에서, 마르틴의 젊음이 지속된다.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방탕한 젊음, 단순한 게임으로 축소된 젊음, 자기 영토의 경계선을 넘어 삶에 가 닿고 현실이 되는 법이 없는 그런 젊음. 그리고 마르틴은 절대적 필요성을 따르는 눈먼 기사이기에,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의 모험들을 결백한 게임으로 변환한다. 그는 계속해서 거기에 자신의 불타는 영혼을 다 바친다. 밀란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영원한 욕망의 황금 사과


마르틴은 여자들을 유혹하고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까지를 결백함의 경계로 삼아 이를 모험과 게임으로 치부한다. 허망한 것에 자신의 영혼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허망함을 자처하는 이유는 마르틴이 결백한 게임을 통해 자신의 젊음을 찾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이미 사랑하는 가정이 있음에도 젊음을 찾고 싶은 욕망이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음은 허망한 것이다.


허망한 것에 대한 욕망으로 스스로 허망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전쟁도 배경과 정세 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허망한 것에 대한 욕망에서 기인된 것이고 허망함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전쟁 끝에 허망한 상처만을 껴안고 강제적으로 화해한 것처럼 말이다. 마르틴의 젊음에 대한 욕망도 10년 뒤면 바라보지도 못할 허망한 것이 되고 말 테다. 그는 그 욕망을 위해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허망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는가.

나의 욕망의 황금 사과는 무엇인가.

적어도 당신의 욕망의 황금 사과의 실체를 발견했다면

그대 당장 멈춰 서서 눈을 돌리고

허망함에 더 이상 빠지지 않기를.

굳건한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눈을 돌릴 수 있길.

적어도 스스로의 인생을

허망함의 구렁텅이에 빠트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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